[기자의 눈/임우선]중견기업 “자금보다 사람 가뭄”…현실적 지원책을

  • 동아일보

“요즘 해외영업요? 인터넷이 있어서 쉽다고 하죠. 하지만 중소기업이 영어 e메일을 쓸 수 있는 인재를 구하기가 쉽지 않아요. 사업 e메일에 고급 단어는커녕 답장에 엉뚱한 내용을 적으니 우리를 믿겠습니까. 될 일도 안 됩디다.”

“중소기업이지만 우리 매출 괜찮습니다. 연구개발(R&D)에 투자할 돈도 있어요. 그래서 건물까지 세웠는데 정작 인력은 7명밖에 못 구했습니다. 그나마 절반은 고졸 출신입니다.”

최근 정부가 마련하는 중견기업 육성책에 세금감면, 대출지원 등 중견기업의 경제적 부담을 덜어 줄 방안들이 포함된다는 소식이 들린다. 반가운 일이다. 그간 중소기업 지원 혜택을 잃게 될 것이 두려워 스스로 성장을 억제한 중소기업이 적잖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최근 중소·중견기업 현장을 취재하며 느낀 것은 중견기업 육성에 필요한 것이 비단 자금 지원만이 아니라는 점이었다. 현장에서 만난 유망 중소기업 대표들은 하나같이 그들이 성장하는 데 가장 큰 문제가 ‘사람 구하기’라고 입을 모았다. 특히 ‘해외시장 개척’과 ‘기술연구’ 분야에서 인재 지원이 절실하다고 했다. 제품으로는 해외에 나가도 지지 않을 자신이 있는데, 해외시장을 뚫을 어학·영업 실력을 갖춘 인재를 구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중소기업의 이런 ‘인재 가뭄’은 R&D분야에서도 마찬가지였다.

한국의 젊은 인재들이 중소기업에 가지 않는 이유는 단순히 연봉 때문만이 아니다. 대학 입시 때와 마찬가지로 직장도 ‘이름’에 집착하는 과시적 문화, ‘중소기업은 불안정하다’고 보는 편견이 더 본질적 이유다. 실제 100만 원이 조금 넘는 대기업 임시직에는 박사급 인재가 몰려도, 200만 원 가까운 월급을 주는 중소기업 해외영업, 연구직은 거들떠보지 않는 것이 현실이다. 한 중소기업 관계자는 “100만 원을 받아도 삼성에 입사하면 결혼이 쉽지만, 200만 원을 받아도 중소기업에 다니면 결혼이 어렵다더라”며 한국 사회의 불합리한 세태를 꼬집었다.

한쪽에서는 실업자가 넘치고, 다른 한쪽에서는 사람이 부족하다. 정부는 갈수록 심각해지는 일자리의 ‘미스 매칭’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현실적인 대안을 내놓아야 한다. 예를 들어 정부가 ‘중소·중견기업 해외영업 지원 인력뱅크’ 또는 ‘R&D 지원 인력뱅크’를 설립하는 안을 생각해본다. 정부가 나서 해외영업 역량과 연구능력을 갖춘 인재들을 뽑고, 이들을 필요로 하는 중소·중견기업에 연간 단위로 장기 파견을 하면 어떨까. 정부는 ‘공무원’이라는 ‘감투’를 빌려주고, 고용에 따른 비용은 해당 기업이 부담한다면 중소·중견기업의 구인난과 청년 실업 문제를 일부라도 해결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임우선 산업부 imsu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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