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고미석]실패의 승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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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2월 2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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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 초유의 도전인 달 착륙을 위해 아폴로 11호에 탑승할 우주비행사를 뽑을 때의 일이다. 미국항공우주국은 색다른 조건을 내건다. ‘실패했던 사람 우대합니다.’

살아오는 동안 한 번도 실패에서 헤쳐 나오거나 심각한 위기를 이겨내 본 적이 없는 사람은 선발과정에서 탈락 1순위였다. 늘 승승장구만 했고 그래서 오만이 하늘을 찌르는 사람이 미지의 여행에서 맞닥뜨릴 도전에 유연하고 담담하게 대처하기 힘들다는 과학적 판단 때문이었다.

이규혁 선수 ‘안 되는 도전’에 경의

올림픽에 다섯 차례 출전했으나 번번이 메달과 인연이 없었던 이규혁 선수를 보면서 문득 생각난 얘기다. “이제 물 그만 마셔야겠다. 물 마시면 다 눈으로 나오는 것 같다”는 농담도, “안 되는 것을 도전해야 하는 게 슬펐다”는 쓰라린 고백도, 경기를 마친 뒤 빙판에 쓰러져 어깨를 들썩이는 모습도 가슴을 파고든다. 작은 시련에 마음이 움츠러들고, 사소한 실패 앞에 무릎 끓어본 보통사람에겐 더욱 그랬을 것이다. 우승이 어렵다는 예감 속에서 어쩌면 헛수고가 될지도 모를 ‘위대한 도전’을 선택한 그 견고한 각오와 용기가 존경스럽고 부럽다.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성공보다 노력이듯이, 올림픽 경기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일은 승리가 아니라 참가에 있다. 핵심은 이기는 것이 아니라 잘 싸우는 것이다.”

근대 올림픽의 창시자인 쿠베르탱이 남긴 올림픽 강령은 이제 화석화되고 사람들은 그 선전분투(善戰奮鬪) 대신 결과에 관심이 쏠려 있다. 4년간 스스로의 한계와 싸우느라 땀 흘리고, 경기에 나가 심장이 터질 만큼 온힘을 쏟고도 축 처진 어깨로 돌아오는 ‘노 메달’ 선수들. 불현듯 어느 미술전시 초대장의 제목이 떠오른다. ‘실패의 승리(Triumph of failure).’

우리는 실패에 대한 두려움으로 질 가능성이 있는 도전은 아예 시도하지 않는다. 이는 패배를 피하는 길이자 성공을 비껴가는 확실한 방법이다. 쓴 것을 맛보지 못한 사람들은 설탕 맛을 모른다는 속담이 있다. 기필코 꿈을 이루고 싶다면 실패를 디딤돌 삼아 성공할 때까지 도전하는 수밖에 없다. 미국의 홈런왕 베이브 루스는 삼진아웃 횟수가 홈런 수를 뛰어넘는다고 한다. 전설적 야구감독 김응룡 씨는 프로감독 최다승리(1476승) 및 최다패배(1138패) 기록의 동시 보유자다.

“인생의 목적은 끊임없는 전진이다. 그 길에는 언덕이 있고, 냇물이 있고, 진흙도 있다. 걷기 평탄한 길만 있는 게 아니다. 먼 곳을 향해 가는 배가 풍파를 만나지 않고 고요하게만 갈 수는 없다.”

니체의 말처럼 풍파는 전진하는 자의 친구요, 삶의 기쁨은 고난 속에 녹아있다. 하고 싶은 대로 할 수 있는 용기, 처음으로 다시 돌아갈 용기가 배를 목적지까지 데려다준다. 실패가 예상되는 일에 도전하는 모험을 통해 원하는 것을 얻지 못했다 해도 인생에서 성장할 기회를 얻는다. 실패는 아마도 넘어지는 것 그 자체가 아니라 넘어진 상태로 머무르는 것이 아닐까. 시도조차 않는 것, 도전을 포기하는 것이 실패다.

새내기여 이길 일만 하지는 말길

무한 도전의 용기는 텔레비전 프로그램이나 스포츠에만 적용되는 것은 아닐 게다. 학교 울타리를 떠나 또 하나의 문턱을 넘어서는 새내기들에게 더 필요한 덕목이 아닐까. 위험을 감수하고 실패에서 배우겠다는 겸허한 마음으로 남이 가지 않는 길을 선택한 청춘들에게 축시를 전하고 싶다.

‘허우적대다/허우적대다/허우적대다/허우적대다/허우적대다/죽었는가/이젠 정말 죽었는가/했을 때/나는/떠/오/르/고/있었다.’(김승희의 ‘솟구쳐오르기 12’)

고미석 전문기자 mskoh11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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