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이소연]아이티, 도움이 도움 낳는 기적 일구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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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1월 2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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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국제행사에서 만났던 학생이 있다. 어느 나라에서 왔는지 기억할 수는 없지만 한국의 교육제도, 과학기술, 연구 환경 등등을 칭찬하고 부러워하며 한국에서 공부하고 일하고 싶다고 이야기하는 그를 보며 많은 생각을 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수많은 뉴스에 눈살을 찌푸리며 대한민국이 누군가에게 부러움을 살 만한 나라임을 알지 못할 때였다. 한참 그 학생의 이야기를 듣던 끝에 지금이라도 한국에 와서 살게 된다면 생각이 달라질지도 모른다고, 언론이나 인터넷을 통해 기사를 보면 수많은 안 좋은 일에 실망하게 될 한국이라며 불평을 털어놓았다.

그 학생은 다시 한 번 나를 당혹스럽게 했다. 내가 사는 나라의 뉴스가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면 그것이야말로 정말 좋은 나라에 산다는 증거라는 말이었다. 부패한 조직으로 가득한 나라에서는 바르게 일하는 사람이 기삿거리가 되고, 다치고 죽어가는 사람을 쉽게 발견할 수 있는 나라에서는 살아남은 사람이 기삿거리가 된다면서 잘못된 상황이 기사가 되고 뉴스가 되는 나라야말로 살기 좋은 나라라는 증거가 아니겠느냐고 반문했다. 묘한 기분이 들면서도 수긍할 수밖에 없었다.

엄청난 지진이 휩쓸고 간 아이티의 소식을 듣고 그 학생의 말이 떠올랐다. CNN 앵커가 울먹이며 소식을 전하던 아이티는 정말로 살아남은 사람이 뉴스가 되는 상황이었다. 모든 가족이 지진으로 희생되고 살아남은 사람이 뉴스에 비쳤다. 텔레비전 뉴스를 함께 보면서 부패한 조직으로 가득하던 나라이기에 지진으로 희생된 국민의 수가 부패한 공무원의 수와 필적할 만한 나라라며 걱정하시던 교수님의 말씀이 너무나 안타까웠다. 또 세계의 수많은 사람이 걱정하고 안타까운 마음으로 도움을 주려고 노력하지만 구호물자가 제대로 전달될지 걱정이 된다고 하셨다.

한국의 힘 일깨워준 외국인 학생

몇십 년 전만 해도 대한민국 또한 도움을 받는 것이 자연스러웠던 나라였다. 6·25전쟁으로 희생된 아이를 구하기 위해 만들어진 구호단체가 세계 곳곳에 생겼고 또 그 도움으로, 그때는 도움을 받는 어린아이였지만 지금은 도움을 주는 선진국 국민이 됐다. 그때 역시 어렵고 도움이 필요한 아이에게 이것이 잘 전달될 수 있을까 걱정하는 사람이 있었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많은 사람의 관심과 사랑은 엄청난 의지의 대한민국 국민의 노력과 함께 놀랍게도 지금의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을 만들었다.

아이티뿐만이 아니다. 얼마 전 북한에서 고통 받는 결핵 환자의 소식을 듣게 됐다. 많은 환자와 구호활동에 대한 영상을 봤음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뇌리에서 잊혀지지 않는 장면이 있다. 나보다 나이가 약간 많아 보이는 여자 환자를 어머니가 부축해 한국에서 가져온 의약품을 나눠주는 결핵요양소까지 데리고 왔는데 “지가 의학쟁이인데 지 병도 못 고치고 이 모양이 되었어”라고 말하며 흐느꼈다. 본인이 의사라고 할지라도 의약품 자체를 구하기 힘든 북한이다 보니 그런 상황에 처할 수밖에 없다는 설명이었다.

문득 ‘내가 무엇을 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 역시 아르바이트를 하며 장학금을 찾아가면서 힘들게 공부한 공학도라고 생각했는데 그 의학도를 보면서 많은 반성을 하게 됐다. 그런 열악한 환경에서 의학공부를 하고, 그러다 결핵에 걸리고, 그마저도 약을 제때 구하지 못해서 꾸준히 먹지 못해 내성결핵으로 발전할 때까지 아무 조치도 취하지 못한 그 여의사는 대한민국에서 여자 공학도로 힘들어했던 나를 부끄럽게 만들었다.

이 장면을 보자마자 뛰어나가 그 여의사를 도울 방법이 없는지 여쭤봤다. 내성결핵 환자이다 보니 보내야 하는 약값이 거의 나의 한 달 월급과 비슷했다. 하마터면 망설일 뻔했던 나 자신이 부끄러웠다. 내가 이런 상황이 됐다면 우리 엄마도 약이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나를 부축해 갔을 것이 분명하다. 그리고 죽음과 맞서며 도움을 기다리는 사람이기보다는 그 사람을 도울 수 있다는 사실이 얼마나 감사한 상황인지를 되뇌었다.

이젠 도울 수 있음에 감사하며

구호단체 회장께서는 오히려 나를 걱정했다. 약을 전달하기 전에 그 환자가 잘못 될 수도 있을 만큼 심각한 상황이라며 내가 그 일로 충격을 받게 될까봐 염려된다고 말했다. 물론 그럴 수도 있겠지만 회복되기만 하면 더 많은 생명을 살릴 수 있는 사람이니 꼭 돕고 싶다고 말씀드렸고 매일 그분을 위해 기도하기로 약속했다. 비록 나의 작은 힘과 정성이지만 그 분을 위한 내 기도가 이루어지길 간절히 바란다. 지금 아이티의 안타까운 상황도 마찬가지다. 세계의 수많은 사람의 정성과 기도가 모여 전쟁의 잿더미 속에서도 우뚝 선 대한민국과 같은 기적을 이뤄내는 아이티가 되기를 마음속 깊이 바란다.

이소연 한국항공우주연구원 선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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