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日하토야마 정권, 실적 없는 비전의 한계

  • 동아일보
  • 입력 2010년 1월 13일 03시 00분


지난해 9월 출범 직후 70%를 넘었던 일본 민주당 하토야마 유키오 정권의 지지율이 불과 100일 남짓 만에 40%대로 급락했다. 54년 만의 정권교체를 이루어낸 일본 국민은 ‘새 시대 새 정치’에 대해 강한 열망과 기대감을 표출했지만 짧은 기간에 무관심과 실망으로 바뀌는 모습이다. 미국의 정치경제컨설팅회사인 유라시아그룹은 최근 “하토야마 정권이 올해를 넘기지 못할 수도 있다”며 2010년 세계 10대 리스크 가운데 5위로 민주당 정권의 불안을 꼽았다.

하토야마 정권은 ‘콘크리트에서 사람으로’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발상의 전환에 따른 새로운 경제성장을 공약했으나 실제 성적표는 시원치 않다. 일본의 경제성장률은 회계연도(4월∼다음해 3월) 기준으로 2008년 ―3.7%에 이어 2009년 ―2.8% 안팎으로 전망돼 2년 연속 마이너스 성장이 확실해 보인다. 올해에도 1%대 초반의 낮은 성장이 예상된다. 글로벌 경제위기 이후 쏟아낸 대규모 경기부양책도 효과를 거두지 못했다. 물가가 계속 떨어져 경제의 발목을 잡는 디플레이션의 늪에 빠졌다. 일본의 국가채무는 2008년 말 현재 860조 엔(약 1경440조 원)으로 국내총생산(GDP) 대비 비율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0개 회원국 중 가장 높은 170%에 이를 만큼 재정불안도 심각하다.

외교안보 분야의 불안감도 증폭되고 있다. 오키나와 후텐마 미군비행장 이전 문제를 둘러싼 대립과 혼선이 대미(對美)관계 악화를 불러 하토야마 정권에 대한 불신 여론을 키웠다. 현재 미일 관계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최악이라는 말이 나온다.

가뜩이나 국정이 꼬인 판에 하토야마 총리의 정치자금 시비에 이어 정권 최고실세(實勢)인 오자와 이치로 간사장의 불법 정치자금 문제까지 불거져 국민의 불신은 한층 높아졌다. 민주당은 옛 자민당 정권의 금권정치를 비판하면서 ‘깨끗한 정치’를 강조했던 터라 여론이 더 싸늘하다. 하토야마와 오자와의 미묘한 알력도 잠재적 정국불안 요인이다.

아무리 비전이 좋더라도 실적이 따르지 못하면 국민이 등을 돌리는 것은 어느 나라나 비슷할 것이다. 정권의 궁극적 성패는 현란한 수사(修辭)가 아니라 국민의 삶과 직결되는 구체적 성과에 좌우된다. 이명박 정부도 일본 하토야마 정권의 흔들리는 모습을 타산지석(他山之石)으로 삼음 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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