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의 예산안 처리시한(12월 2일)이 임박했지만 세종시 문제와 4대강 예산에 발목이 잡혀 올해도 시한을 넘기게 됐다. 헌법 제54조는 국회가 새 회계연도 개시 30일 전까지 예산안을 의결하도록 못 박고 있다. 그러나 16개 국회 상임위 가운데 어제까지 예비심사와 의결을 거쳐 소관 예산안을 예결특위에 넘긴 곳은 운영·법제사법 등 5개에 불과하다. 상임위 대부분이 예비심사를 마치지 못함에 따라 예결특위가 가동조차 되지 못하고 있다. 이번에도 예산처리 시한을 넘기면 7년 연속 헌법을 위반하는 셈이 된다.
여야는 4대강 사업 예산과 세종시를 둘러싸고 첨예하게 대립하면서 지난달 19일 이후 예산안 심의일정을 협의하기 위한 원내대표회담조차 열지 못했다. 현 상황대로라면 법정시한은 물론이고 9일 끝나는 정기국회 회기 내 예산안 처리도 사실상 어렵다. 예산심의는 국민의 혈세가 한 푼도 허투루 쓰이지 않도록 살펴야 할 국회의 가장 중요한 임무 중 하나다. 국회의 예산 태업은 주권자인 국민 앞에 어떤 말로도 변명할 수 없는 직무유기다. 특히 지난달 1일 ‘뉴 민주당 선언’을 하고 보름 뒤인 16일부터는 ‘생활정치’를 내걸고 민생현장 버스투어를 하고 있는 민주당 정세균 대표의 책임이 무겁다. 4대강 사업 자료 제출 미비 등을 이유로 예산심의를 지연시킨 것은 공당(公黨)의 지도자답지 못하다.
4대강 사업과 과거 정부의 수해대책은 사업내용과 기간이 달라 맞비교하긴 어렵지만 역대 정부에서도 하천 정비는 계속해오던 것이다. 매년 수해 예방 및 복구비로 4조 원 가까운 예산이 허비되고 있는 현실에서 실속 있는 4대강 사업을 위해 여야가 머리를 맞댈 필요가 있다.
국회에는 예산안 말고도 정부가 제출한 266개 법안이 대기 중이다. 경제위기 해소와 서민층 중산층을 지원하는 민생법안만 해도 수십 개에 달한다. 여야가 예산안 처리시한을 못 박은 헌법을 그저 장식품처럼 인식하는 태도를 보면 대한민국 국회는 무법(無法) 상태라고 해도 크게 틀린 말이 아니다. 이러다가 12월 말쯤 간신히 합의를 이뤄 심의도 제대로 못하고 하루 이틀 만에 예산안을 뚝딱 부실처리하거나 야당이 악을 쓰는 가운데 여당이 단독 처리하는 풍경이 재연될 것이다. 세상이 다 변하는데 대한민국 국회는 7년째 나아지는 것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