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승주 칼럼]미중 관계의 변화와 북핵 게임

  • 입력 2009년 9월 22일 02시 5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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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이 금융 위기를 겪고 중국이 경제면에서 미국을 추격하면서 아시아에서의 강대국 관계가 재편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미국, 중국, 일본의 3대국 ‘트로이카’ 시대가 오는 듯하더니 요즈음은 미국과 중국의 G2 시대를 예고하는 사람이 늘고 있다.

‘트로이카’, 즉 미중일 3자의 리더십 체제 구상은 G2 가능성을 견제하려는 일본의 대응이다. 중국은 처음에는 이러한 일본의 구상에 회의적이었으나 미일 동맹에 한발 들여 놓기 위해서는 3자 협의 체제 구상이 유용할 수도 있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미국으로서도 이러한 구상은 일본과 중국을 동시에 한 천막 속으로 불러들여 저울질할 수 있는, 손해 보지 않는 세력 구도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다만 한국으로서는 트로이카 구도가 현실화될 때 한반도 문제를 포함한 동북아의 여러 가지 주요 문제가 3자에 의해 재단(裁斷)될 수 있어 부담스러운 점이 많다.

그러나 버락 오바마 정부의 주요 정책 입안자들이 3자 구상을 찬성함에도 그것이 생각처럼 순탄하게 추진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중국과 일본 간 인식의 갭이 너무나 크기 때문이다. 중국은 일본을 불신할 뿐만 아니라 일본과 동북아 지역에서 지도적 위치를 공유하지 않으려는 경향이 있다. 일본도 하토야마 유키오 총리의 민주당 내각이 탄생함에 따라 3자 구도에 대한 결론을 내기까지에는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이다.

3자 구도의 대안은 미국과 중국이 공동 리더십을 행사한다는 G2 구상이다. 그 요체는 미국이 강대해진 중국의 국력과 이해관계(stake)를 인정하고 중국은 강대국으로서의 책임과 기존의 질서(status quo)를 수락함으로써 양국의 리더십 구도를 형성한다는 것이다. 미국으로서는 중국을 포용할 것이냐(engage), 봉쇄할 것이냐(contain)의 논쟁에서 일단 포용론이 승리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北, 美에 ‘양자’-中엔 ‘다자’ 손짓

일본은 당연히 G2 구상을 경계하고 거부한다. 그러나 정작 G2 구상의 장애는 중국에 있다. 중국은 G2 논의가 반갑지 않다는 입장이다. 최근 필자가 만난 중국의 고위 당국자는 소위 G2 구상은 과거 중국 봉쇄론을 이름만 바꾼 중국 견제용 슬로건이라고까지 혹평했다. 즉 G2 논의는 이른바 도광양회(韜光養晦: 빛을 감추고 어둠 속에서 힘을 기른다)를 기본 정책으로 삼는 중국으로서는 서방(특히 미국)의 경계심을 유발하는 바람직하지 않은 발상이라는 것이다.

북한은 미국과 중국이 이러한 협조와 견제를 하는 동안 핵을 유지하면서 경제적 혜택을 얻어 보려는 게임을 시도하고 있다. 미국에 양자 협상을 요구하면서 중국에는 다자(6자) 회담의 가능성도 제시하고 있다. 북한의 2차 핵실험 이후 미국과 중국은 또다시 북한과의 ‘협상-보상-원점 회귀’의 사이클을 되풀이하지 않도록 공조를 다짐하고 있으나 생각만큼 쉽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오바마 행정부는 “핵의 동결, 궁극적 폐기 약속 등 이미 값을 치른 말(same horse)을 다시 사지 않겠다,” “(핵실험과 같은) 나쁜 행위에 대해 보상하지 않겠다”고 호언하고 있다. 그 대신 비핵화를 전제로 큰 거래(Grand Bargain), 또는 포괄적 패키지(Comprehensive Package)를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것은 과거 조지 W 부시 행정부도 한동안(2007년까지) 견지했던 것이다. 그러나 결국 부시 행정부도 “새로운 말(馬)이면 살 수 있다” “좋은 행동은 보상해줄 수 있다”는 명분으로 근본적인 해결은 뒤로 미루는 합의를 이끌어냈다. 북한은 설혹 큰 거래에 합의를 하더라도 그것을 ‘행동 대 행동, 말 대 말’이라는 합의로 잘게 썰어 시간을 끌고, 중요한 조치는 뒤로 미루는(back-loading) 책략으로 실질적인 비핵화를 피해 왔다. 오바마 정부가 과연 북한의 노련한 수법에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로 남아 있다.

한국, 美中과 공조해 주도역할을

중국은 북한의 핵을 우려하지 않을 수 없는 입장이다. 북한의 핵무기와 미사일은 중국에 직접적 위협이 될 뿐만 아니라 동북아지역 핵 확산의 불씨가 될 수도 있다. 그러나 표면적으로는 느긋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평화유지, 6자회담, 비핵화의 3원칙을 강조한다. 때로는 6자회담을 재개하는 것이 북한 비핵화에 우선하는 인상을 줄 때도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한국은 북한의 게임 플랜과 강대국 관계 변화를 직시하면서 북핵 문제의 주도적 역할을 행사할 필요가 있다. 6자회담이 북핵 해결의 방편이 될 수는 있으나 해결 자체를 의미하지는 않는다. 북한을 대화의 장으로 불러들이더라도 북한의 비핵화가 진전 없이 상황관리에 치우치지 않도록 전략적 목표와 분명한 로드맵을 제시하면서 북한의 책략에 효과적으로 대응해야 할 것이다. 미중 간의 전략적 제휴가 본격화되는 시점에 향후 한반도와 주변질서 변화를 내다보는 우리의 혜안과 미중과의 긴밀한 공조 역량이 어느 때보다도 필요한 시점이다.

한승주 고려대 명예교수·전 외무부 장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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