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칼럼/최혜실]이야기는 힘이 세다

  • 입력 2009년 4월 25일 02시 54분


게임 애니메이션 영화 드라마는 물론이고 출판 광고 마케팅 관광 정치 종교에 이르기까지 이야기가 화두이다. 왜 이야기가 우리의 삶의 전 과정에서 위력을 보일까? 가장 큰 원인으로 새로운 매체의 등장을 들 수 있다. 대중화된 PC와 인터넷 환경 때문에 사람들은 정보의 획득, 교환, 소비를 점차 인터넷에서 해결하게 됐다. 문자보다는 영상을 접할 시간이 많아지고 자극과 반응의 양방향성, 사이버 커뮤니티의 감성적 커뮤니케이션 방식과 놀이성에 길든 사람들은 감성 커뮤니케이션의 최고 미학인 스토리텔링, 즉 이야기하기 방식의 소통에 호감을 갖게 됐다.

놀이성과 감상성은 이야기의 힘을 우리 삶의 전반으로 확산시킨다. 넘치는 정보의 홍수 속에서 사람들은 같은 값이면 자신에게 감동을 주는 상품을 선호하고 재미있게 전달하는 정보에 더 관심을 갖는다. 구체적인 사건 배경 인물 속에 추상적인 정보나 보편적인 의미의 핵심을 전달하는 과정에 비유나 상징이 사용된다. 우리는 어린 시절부터 지금까지 무수하게 많은 동화, 문학작품을 읽었다. 주인공이 구체적인 공간 속에서 문제에 접하고 해결해나가는 과정을 보면서 대리체험하고 감동하면서 인생을 어떻게 살까 결심하게 된다. 이런 감동이 지니는 교육적 효과 때문에 학교라는 제도에서 문학이 차지하는 위상이 존재하고 강화된다.

재미있게 전달하는 정보에 관심

이야기의 효과도 근본적으로 같은 이치이다. 사람은 자신의 삶 주변에서 흔히 접할 수 있는 인물이 벌이는 이야기를 듣는 과정에서 중요한 진실을 깨닫는다. 도둑질하지 말라, 거짓말하지 말라는 직설적이며 추상적인 설교보다는 어떤 도둑이 참회하는 이야기를 들으며 자신을 되돌아본다. 일찍이 석가나 예수가 얼마나 수많은 예화(例話)로 신자를 감동시켰던가? 이야기의 위력을 이미 알고 계셨던 것이다. 사람을 감동시켜야 하는 광고 분야에서 이런 효과를 모를 리 있겠는가? 고도성장의 시대에 가족과 국가를 위해 쉬지 않고 달려온 우리 시대 아버지의 이야기를 다룬 광고를 보며 소비자는 해당 기업이 꾸준히 성장하며 한국 경제발전에 이바지하였다는 이미지를 갖게 된다.

신문이나 서적 등 글쓰기 영역에서 정보 전달 방식도 눈에 띄게 변화하고 있다. 단적인 예로 최근에 베스트셀러들이 대부분 우화(寓話)의 형식을 지니고 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누가 내 치즈를 옮겼을까’ ‘마시멜로 이야기’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는 구체적인 이야기를 통해 독자에게 효과적으로 정보를 전달한 좋은 예이다. 이야기는 디자인 분야에서도 위력을 발휘한다. 무심코 집어든 휴대전화의 모양이 조약돌 형태로 디자인됐음을 보면서 어린 시절 냇가에서 놀았던 소중한 추억을 떠올리며 감동한다. 식당 앞에 조성된 아담한 오솔길에서 유년기의 뜰과 그곳에서의 경험을 떠올리며 미소 짓는다.

사람들이 실제 삶의 과정에서 얼마나 이야기에 열광하는가는 최근 TV에 리얼 드라마가 뜨고 있는 사실에서 역설적으로 잘 드러난다. 방송 드라마가 이야기인 점은 당연하지만 허구(虛構)의 지어낸 이야기이다. 이런 맥락에서 ‘세상에 이런 일이’ ‘사랑과 전쟁’ ‘패밀리가 떴다’ ‘1박2일’ 등 사실에 입각한 프로그램이 인기를 끄는 현상은 시청자가 실제 생활에서조차 이야기를 통해 재미를 느끼며 정보를 얻고 싶어 하는 심리를 반영한다. 재미 따로, 정보 따로가 아니라는 말이다.

도처에 이야기 아닌 것이 없다. 이제 이야기는 우리가 사는 문화 공간 전체로 확산되고 있다. 사람은 자신이 사는 장소를 단순히 물리적 공간으로 생각할 뿐 아니라, 자신의 기억과 감각을 통해 즐거움을 느끼려는 공간으로 생각하고 싶어 한다. 그리하여 그 장소에 얽힌 역사와 기억, 미래에 대한 기대가 현재의 경관 경험에 의해 하나의 정체성을 형성하게 하는 방식이 최근 관광의 중요한 요소로 등장했다.

즉 사람들은 좋은 경치를 감상하거나 옛 고적의 지식을 얻으려는 단순한 생각에서 벗어나 그 장소가 지닌 과거의 이야기에 자신의 체험을 보태어 하나의 독특한 기억을 갖기를 원한다. 예를 들어 도요지(陶窯地)를 찾은 관광객은 1000년 전 도공의 애환과 도자기 제작 방식을 접하면서 여기에 자신의 도자기 제작 활동을 더하여 자신만의 장소 체험을 함으로써 이야기의 기억을 갖게 된다. 또 ‘겨울연가’의 이야기에 감동한 시청자는 남이섬을 방문해 영상의 세계에 일어났던 이야기를 현실 공간에서 체험함으로써 감동의 깊이를 오래 간직하려 한다.

브랜드 가치 높이는 ‘문화 신소재’

이야기는 우리의 삶과 떼려야 뗄 수 없다.이에 따라 모든 영역에 들어가 그 영역의 부가가치를 한 단계 업그레이드하는 문화신소재로 등장했다. 이제 우리 한번쯤 꿈꿀 때가 되지 않았는가? 국토가 좁고 자원도 없는 데다 환경오염 문제가 심각하게 대두되는 지금, 이야기를 통해 상품과 국가의 브랜드 가치를 높이고 국토의 매력도를 높이는 일. 가능한 꿈이라고 생각되지 않는가?

최혜실 경희대 국어국문학과 교수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