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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8년 5월 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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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도 이제 단일민족국가 아니다
그 수밖에 없을까. 국가의 장래를 차가운 금속 로봇에 맡긴다는 게 왠지…. 그런 스산한 느낌이 채 가시기도 전에 일본에서 새 소식이 날아들었다. 집권 자민당이 ‘이민청’ 신설을 추진한다는 것이다. 다양한 분야의 외국 인재와 기술자를 불러들이기 위해서란다. 이민에 부정적인 일본으로서는 놀랄 만한 정책 전환이다. 노동력 부족에 대한 위기의식이 느껴진다. 그래도 로봇보다는 이민청이 사람 냄새가 난다.
우리는 어떤가. 출산율은 일본보다 더 낮고, 고령화도 급속히 진행 중이다. ‘단일민족’을 자랑스럽게 여기는 것도 일본 저리가라다. 그렇지만 우리는 로봇대국도 아니고, 이민청을 만들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오지 않는다.
그러나 로봇과 이민청을 만들기 전에 먼저 해야 할 일이 있다. 우리나라에 들어와 있는 외국인과 더불어 사는 방법을 배우는 일이다. 지난해 말 기준으로 한국에 체류 중인 외국인(불법 체류자 22만3000여 명 포함)은 106만 명이나 된다. 이 중 근로자가 47만여 명, 결혼이민자가 11만여 명, 유학생이 4만여 명이다.
그중에서도 가장 먼저 품어야 할 대상이 결혼이민자다. 근로자나 유학생과는 달리 이 땅에 뼈를 묻을 사람이기 때문이다. 결혼이민자 11만여 명은 아직 귀화를 못하거나 안 해 ‘외국인’으로 분류되는 사람들이다. 그러나 한국인의 아내이자 남편임에는 변함이 없다. 이미 한국으로 귀화한 결혼이민자도 4만5000여 명이나 된다. 둘을 합치면 결혼이민가정은 15만여 가구다. 그들이 낳은 자녀도 5만 명 가까이 된다. 우리나라도 이제 단일민족국가가 아닌 것이다.
그런데도 우리는 여전히 ‘단일민족’처럼 사고하고 행동한다. 결혼이민자나 그 자녀를 푸대접하거나 은근히 깔본다. 한 연구에 따르면 결혼이민자의 자녀들이 집단따돌림을 당하는 이유는 ‘엄마가 외국인이기 때문에’ ‘의사소통이 잘 안되어서’ ‘특별한 이유 없이’ ‘태도와 행동이 달라서’ ‘외모가 달라서’의 순이었다. 뭘 특별히 잘못해서가 아니라 그저 토종 한국인이 아니라는 이유 때문에 따돌림을 당한다는 것이다(설동훈 외, 2005년). 그러고도 ‘선진화’를 얘기하는 건 우스운 일이다.
요즘에는 지자체나 대학, 연구기관 등에서도 차츰 결혼이민가정에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들의 힘만으로는 부족하다. 결혼이민자에 대한 한국어와 문화 교육, 자녀에 대한 맞춤형 교육서비스, 효율적인 직업교육과 진로지도 등을 통해 그들과 그 자녀들이 가난과 소외에서 벗어나도록 해주려면 국가의 관심과 지원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결혼이민가정 한숨부터 보듬어야
얼마 전 김관용 경북지사는 본보와의 인터뷰에서 농촌으로 시집와 열심히 일하는 결혼이민여성에게 감사를 표시하며 국가 차원의 관심을 당부했다. 그는 결혼이민자의 아들이 군대에 갈 때를 가정해 보라고 했다. 그들이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의 군인’으로 복무할 수 있도록 한국인으로서의 정체성과 자부심을 갖도록 하는 게 국가의 의무라는 것이다.
우리는 1997년에 재외동포재단을 만들었다. 외국에 살고 있는 교민들의 권익과 지위 향상을 돕기 위해서다. 그건 그것대로 뜻이 있다. 그러나 이제는 나가 있는 피붙이에 대한 관심의 10분의 1만이라도 한국을 ‘제2의 조국’으로 선택한 결혼이민자에게로 돌려야 할 때다. 그들을 ‘이방인’으로 방치하는 것은 국가의 품격을 잃는 일이다.
5월, 가정의 달이다. 결혼이민자들은 제 좋아 한국을 찾아온 ‘이방인’이 아니라 우리가 함께 건사할 ‘식구’로 받아들이려는 따뜻한 가슴이 필요한 계절이다.
심규선 편집국 부국장 kssh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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