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칼럼/김윤철]아시아 연극 수도, 서울이 어때요

  • 입력 2008년 1월 19일 03시 04분


최근 문명의 역학구조에 지각변동이 일고 있다. 그 변동의 핵에 아시아가 자리하고 있다. 중국과 인도의 부상이 기존 아시아적 위상에 무게를 더하면서 아시아는 이제 정치 경제 문화 등 전방위적으로 부상하고 있다. 예술분야도 마찬가지다. 한국 중국 홍콩 일본 대만에서 만들어진 영화가 유수한 국제영화제에서 큼직한 상을 잇달아 탔고, 일본의 만가는 이제 전 세계적으로 만화분야를 초월해 드라마예술분야까지 영향력을 행사한다. 중국 인도 베트남의 현대미술은 대서양 양쪽에서 서구 작가의 작품보다 훨씬 비싼 값에 날개 돋친 듯 팔려 나간다.

연극의 경우도 조짐이 뚜렷하다. 일본의 니나가와 유키오나 스즈키 다다시 같은 연출가들은 희랍극과 셰익스피어, 체호프 등의 작품을 일본적으로 각색하여 유럽인을 매혹시켜 왔으며 싱가포르의 옹 켄 센은 아시아의 다국적 기호를 차용한 문화상호주의적 연출로 셰익스피어 극을 만들어 특히 독일에서 사랑받고 있다. 한국의 젊은 연출가 양정웅은 ‘한여름 밤의 꿈’을 한국의 전통적인 도깨비 설화로 각색해 폴란드의 그단스크 국제 셰익스피어 축제에서 그랑프리를 수상한 바 있다.

아시아 연극의 부각은 서양 연극이 딜레마에 빠진 것과 무관하지 않다. 서구를 대표하는 유럽 연극이 탈근대주의 이후 기존의 인식과 미학의 체계를 해체하는 데 열중한 나머지 섹스와 나체, 폭력을 노골적으로 구사하는 ‘추함’과 저질, 절망의 연극을 찍어내다 급기야 심한 혼돈과 피곤에 빠져들었다고 해도 크게 틀리지 않는다. 중병을 앓는 서구 연극은 해독제가 필요해졌고 그 대안으로 아직 서사의 힘, 양식미, 조화의 가치를 유지하는 아시아 연극을 주목하는 것이다.

그렇다고 우리가 우쭐할 일은 아니다. 지금까지 업적을 분석해 보면 대부분 서양 고전을 아시아적으로 각색해 때로는 자기비하적인 오리엔탈리즘의 관점마저 이용한 흔적도 있다. 아시아 연극이 진정으로 아시아적인가에 대해 자신 있게 긍정할 수 있는가. 아시아 연극은 독자적인 서사를 갖고 현대적으로 재창조된 전통 미학을 토대로 시대의 정신을 아울러야 한다. 또 동시에 해체보다는 재구축, 추함보다는 아름다움, 분열보다는 조화, 미움보다는 사랑을 추구하면서 휴머니즘을 회복시킬 수 있을 때 단순히 서양 연극의 해독제라는 대안적 정체성을 뛰어넘어 세기적이며 세계적인 연극미학으로 자립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꿈을 이루기 위해 우선 아시아가 아시아를 배울 필요가 있다. 이 일에 중국이 발 벗고 나섰다. 베이징의 중앙희극학원을 중심으로 아시아의 연극교육, 아시아의 연극평론, 아시아의 무대미술 등 연극 각 분야에서 국제회의와 잔치를 유치하며 열의를 보이기 시작했다. 일본은 자국 예술가들의 해외 활동에 대해서는 국가적인 지원을 쏟아 붓지만 국제행사를 주최하거나 유치하는 데는 굉장히 미온적이다.

우리가 개척해야 할 일은 무엇일까. 아시아에서 가장 개방된 민족성을 갖고 있는 우리는 어쩌면 아시아 문화 안의 다양한 특징과 차이에 대해서도 가장 열린 태도를 가질 수 있을 것이므로 아시아 내부의 문화상호주의적 미학 개발에 주력하여 한국 연극의 아시아화, 아시아 연극의 세계화에 앞장설 수 있을 것이다.

기존의 아시아연극연출가전, 베세토연극제를 더욱 강화하고 내실화할 필요가 있다. 더불어 연기, 극작, 미술, 평론을 망라한 ‘아시아 연극미학 워크숍’을 해마다 서울에서 개최할 수 있다면 더욱 좋겠다. 중국과 일본의 협력을 얻어 우리가 아시아 프로젝트를 주도할 수 있다면 그것은 한국 연극을 위해서 무척 다행한 일이다.

김윤철 연극평론가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