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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7년 4월 29일 17시 2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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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는 유난히 아버지가 많이 등장했다. 전직대통령의 아들이 국회의원에 당선됐고 그룹총수의 부정(父情)도 입방아에 올랐다. 최근 영화는 우연인지 작품의 주제가 아버지다.
그룹총수인 아버지 모습을 보자. 경찰의 수사결과가 나와야겠지만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다. 아버지라고해도 엇나간 행동을 정당화 시킬 순 없다. 우리사회는 오랫동안 가진 자에 대한 막연한 비하나 반발심을 가졌었다. 정당하게 벌기보다는 편법과 투기로 부(富)를 축적했다고 여기는 사람도 많다. 이 폭행사건은 최근 이웃과 나누고 함께하는 부자들의 모습에서 부에 대한 존경심이 생기는 사회적 분위기에 찬물을 겯는 느낌이다.
몇몇 언론이 보도한 이 사건 진상을 지면에 옮겨보자. 한겨레는 27일자 신문에서 "그룹총수가 유흥주점 종업원을 직접 때렸다"고 보도했다. 한국일보는 28일자에서 "총수가 유흥업소 주인 머리에 금장권총을 들이대며 협박했다"고 보도했다. 연합뉴스는 맞은 종업원의 말을 인용하면서 "총수가 자기 아들을 때린 Y씨를 찾아내 아들에게 '맞은 만큼' 때리도록 한 후 양주와 맥주를 시켜 폭탄주를 만들어 피해자들에게 주면서 '남자답게 화해했으니 없던 일로 하자'고 제안하고 술값 명목으로 100만원을 주고 현장을 떠났다"고 밝혔다. SBS는 27일 저녁 보도를 통해 "그룹 직원들이 창피해서 다닐 수 없다"고 인용하기도 했다. 언론들은 이 사건을 마치 조폭영화를 보는 듯하다며 비판한다. 정말로 믿기 어려운 이야기다. 아니, 영화 속 이야기이면 참 좋겠다.
현실이 아닌 영화로 들어가 보자. 최근 아버지를 다룬 두 편의 영화는 너무 뻔해도 너무 아름다운 이야기라고 말한다. 발달장애를 가진 아들과 아버지의 이야기로 부자의 사랑을 느끼기에 충분했다. 아빠이자 치킨집 사장인 주인공은 아들을 위해 무조건 몰아붙이며 때로는 무모한 모습이다.
다른 영화를 보자. 가정의 달을 맞아 개봉하는 이 영화는 다른 가족영화와 비슷하지만 성격은 다르다. 전문가들은 "이 영화는 늙은 아버지가 주인공인 만큼 힘겨운 세상살이와 은근한 부모의 사랑이 보다 더 현실적으로 표현됐다"고 말한다. 죽은 아내를 그리워하고, 집나간 늦둥이 막내아들을 보고 싶어 하지만 정작 큰아들과 딸에게는 싫은 소리를 듣는 힘 빠진 아버지다. 젊을 때 처자식에게 큰소리만 치고 가정을 돌보지 않았다. 그러나 어머니 제사상 앞에서 교인(敎人)이기 때문에 절을 할 수 없다고 버티는 딸을 야단도 못 친다. 막내아들의 사업자금을 보태주려 아내 병원비까지 털어놓고 큰아들과 딸에게도 빚보증을 서게 했던 아버지는 삶에 지쳐있다. 아내가 죽은 후 노인은 외톨이가 됐다. 3년만의 아내 제사를 맞아 집을 떠나는 그는 동네 사람들에게 "우리 큰아들은 유명한 배우다, 기사가 딸린 차를 보내줬지"라고 자랑한다. 하지만 그 차는 렌터카다.
우리는 언제부터인가 어른을 잃었다. 아니, 아버지는 실종됐다. 민주화란 이름으로 모든 권위가 무너졌고 존경할 만한 기성세대가 없다는 자조도 들린다. 하지만 평범한 우리의 아버지는 현실에서든, 영화에서든 엄연히 존재한다. 누구나 그렇듯 그는 너무도 큰 나무다.
박선홍기자 sunh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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