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강신욱]법원과 검찰, 그리고 변호사

  • 입력 2006년 10월 16일 02시 58분


대법원장이 “검사조서는 던져 버려라…변호사의 변론 내용은 사람을 속이려는…” 운운한 것이 검사와 변호사의 기능과 역할을 무시하거나 비하하는 내용으로 비쳐 검찰과 변호사 단체가 반발했다. 대법원장이 공판중심주의를 강조하면서 나온 말의 실수를 인정함으로써 자칫 소모적이고 감정적인 갈등으로 번질 우려가 있던 사태가 진정되는 듯하여 다행스럽긴 하다.

이번 사태를 지켜보는 많은 국민은 법원과 검찰, 변호사가 공판중심주의인가 뭔가를 둘러싸고 형사재판에서의 주도권 다툼을 하는 정도로 이해한다. 수사나 재판이 큰 신뢰를 받지 못하는 점은 마찬가지인데 밥그릇 싸움이나 한다며 시큰둥한 반응이다. 차제에 법원과 검찰, 변호사는 남의 허물을 탓하기 전에 자신을 냉정하게 돌아봐야 한다.

법원의 공판중심주의 강화 주장은 그동안의 재판이 검사조서 등 서류에 너무 의존함으로써 공개된 법정에서의 당사자 공방과 법원의 심리가 소홀해 그만큼 재판의 투명성과 신뢰를 얻지 못하였다는 반성에서 나왔다.

법원은 공판중심주의 강화로 초래되는 재판의 지연을 막기 위한 방안을 강구하는 등 내실을 다져야 한다. 피고인이나 증인이 검사조서와 다르게 진술할 경우 직접신문이나 직권증거조사를 통해 어느 쪽이 진실한지 양심에 따라 자유롭게 심증을 형성해 유무죄를 가리고 형량을 정해 조용히 공판중심주의를 실현하면 된다. 검사조서나 변호사의 변론 내용을 믿지 못하겠다고 탓할 필요는 없다.

공판중심주의를 강화한다고 증거능력이 있는 검사조서를 합리적인 이유 없이 무시해 버리거나 당사자주의 소송구조의 원칙을 저해할 정도로 직권을 행사하는 자세는 구시대의 직권주의나 규문주의로 흐를 염려가 있으므로 자제해야 한다. 법원의 권위는 검찰이나 변호사보다 높은 자리에 있다고 소리치는 데서 나오지 않고 당사자가 승복하는 심판을 함으로써 자연히 확립된다.

검찰은 검사조서에 대한 불신이 깔린 공판중심주의에 소극적일 수 있다. 검사가 양심을 걸고 심혈을 기울여 작성한 조서가 불신을 받는 데 불만을 가질 수 있다. 검찰은 아직도 많은 피고인이나 증인이 수사과정에서 인격적인 모욕이나 협박 또는 회유를 당하였다거나 심지어 검사조서가 진술한 대로 작성되지 않았다고 호소하고 있음을 겸허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수사과정을 더욱 투명하게 하고 검사조서의 신빙성을 높이는 노력이 필요하다.

검사는 공익의 대표로서 추상같은 범죄 척결의 의지와 정열을 가져야 하고 피고인의 인권 못지않게 피해자의 인권을 보살필 의무를 지고 있지만 적정 절차를 외면하거나 피고인의 정당한 이익을 보호해야 할 의무를 저버려서는 안 된다.

검찰은 공판중심주의 강화에 대응해 증거를 소송상황에 맞춰 분리 제출하겠다고 하는데 피고인의 이익이 되는 자료제출에 소극적이거나 피고인의 방어권 행사를 어렵게 하는 방향으로 이뤄지지 않기를 바란다.

변호사는 판사 및 검사와 함께 형사소송에 참여하는 독립된 신성한 공익적 지위를 갖고 있다. 일정한 수임료를 받고 피고인을 변론하지만 피고인의 정당한 이익을 보호하는 방향이어야 하고 진실과 정의에 합치돼야 한다.

변호사는 이번 사태로 심각한 명예훼손을 당했다고 생각한다. 그 감정을 충분히 이해하지만 변호사 역시 피고인의 보호자로서의 역할에 몰두한 나머지 공익적 지위를 망각하거나 진실의무를 다하지 못한 면이 없는지 냉정하게 돌아봐야 한다.

법원과 검찰, 변호사는 사법적 정의의 실현이라는 공동목표를 향해 각자의 기능과 역할을 다할 때 존재 의의가 있다. 재판에서 누가 주도권을 가지는지, 누가 높은 자리에 있는지 따지는 것은 유치한 일이다.

굳이 말하라면 검사와 변호사에게서 존경받는 법관, 법관에게서 신뢰받는 검사와 변호사가 재판을 주도하는 가장 높은 사람이다. 서로 견제하고 긴장 관계를 형성하는 모습은 바람직하지만 서로를 불신하고 무시하는 태도는 국민에게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모두가 냉철한 이성으로 형사소송법에 따라 주어진 기능과 역할을 다할 때 형사사법의 정의가 실현되고 국가의 법질서가 유지된다.

강신욱 전 대법관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