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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6년 10월 1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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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기업은 외자유치, 부실기업 정리, 사업영역 조정, 지주회사 체제 정비를 목적으로 계열사 주식을 대주주와 사고파는 경우가 많다. 세정당국이 대주주에게 이득이 돌아가는 경우에는 증여의제 또는 부당행위계산 부인 규정에 따라 철저히 과세하기 때문에 거래 당시 세법이 정한 기준가격을 정확하게 적용할 수밖에 없다.
세법상 기준가격으로 거래했다가 주가가 떨어질 경우 대주주는 손실을 뒤집어쓴다. 부모에게서 대규모 주식을 증여받았다가 주가가 폭락해 주식을 모두 팔아도 세금을 낼 수 없어 파산상태에 빠지고 결국은 교도소까지 가는 불행한 사례가 많다. 거래 이후에 주식가치가 높아지면 시민단체가 칼을 들고 나서기 시작한다.
시간이 많이 흘러 경제상황이 달라졌음에도 불구하고 ‘주식을 헐값에 샀다’는 ‘단문식 단죄’는 놀라운 위력을 발휘한다. 처음에는 과세를 주장하지만 국세청이 거래 당시 기준가격을 변경할 사안이 아니라는 입장을 고수하자 시민단체는 소송을 제기하기에 이르렀다. 대기업은 법무팀을 강화해 복잡한 세법규정을 들어 해명하지만 ‘잔소리가 많다’는 괘씸죄까지 들러붙자 급기야 무조건 항복하면서 돈을 내놓고 말았다.
LG 주주대표 소송에서 3년이 넘는 심리 끝에 1심 법원은 지주회사 체제를 위한 주식 매각의 불가피성을 인정하면서도 주식 평가 잘못을 이유로 이사들에게 400억 원을 회사에 배상하도록 선고했다. 법원은 거래 당시 세법이 정한 기준가격을 배제하고 7년이나 지난 시점에서 대학교수들을 감정인으로 선임해 주식가치를 사후적으로 다시 평가시켜 판결근거로 삼았다. LG그룹이 억울하기 짝이 없는 판결에 대해 항소를 포기하는 모습을 보면서 기업가가 얼마나 불리한 상황에 놓여 있는지 알 것 같다. 에버랜드 전환사채 관련 배임사건도 마찬가지다. 세법 규정에 맞추어 기준가격을 정했다는 수준의 보고를 받았을 것으로 짐작되는, 그것도 10년이나 지난 사안에 대해 그룹 회장에게 뭘 묻겠다고 검찰이 소환하려는지 모를 일이다.
다른 주주의 이익을 대주주가 가로챘다는 혐의로 삼성은 형사고발을, LG는 주주대표 소송을 당했다. 이들 대주주는 삼성자동차와 LG카드의 투자책임으로 거액의 사재를 물어낸 비운의 주인공이다. 소수 지분으로 지배한다며 비난하면서도 투자손실 책임은 모두 뒤집어씌우고 있다. 이들이 물어낸 금액은 이의가 제기된 모든 사건의 혐의금액 합계의 5배는 넘는다. 주식가치가 떨어지면 쪼그라들어 망하고 올라가면 뭇매를 맞는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가 한국인 대주주 앞에 운명처럼 놓여 있다.
한국 기업의 경영권 이전과 관련된 상속세 및 증여세 부담은 다른 나라에 비해 높고 주식양도차액을 한국인 대주주에게는 모두 과세한다. 외국계 펀드는 지분 25% 이상을 보유하지 않는 한 주식양도차액에 대해 전혀 세금이 없는 천국을 즐기고 있다. 이런 비정상적인 상황에서 외국계 펀드가 한국인 대주주의 세금 문제를 물고 늘어져 이익 챙기는 수단으로 삼는 것은 참으로 민망한 일이다. LG 주주대표 소송도 보유주식 9주로 10만 원 정도를 투자한 한국인이 대표로 나서긴 했으나 소송 제기 주식수의 98%는 외국계 펀드 보유분이다.
한국인 대주주에게는 너무 가혹하고 외국계 펀드에는 너무 헤픈 주식양도 관련 세제는 한시바삐 개선돼야 한다. 대주주를 더욱 얽매어 소송 남발이 우려되는 상법 개정안도 전면 재검토해야 한다. 북한 핵 위기까지 겹쳐 경기침체가 우려되는 상황에서 기업가 때리기가 계속되면 투자의욕은 감퇴되고 일자리는 더 줄어들어 최악의 청년실업사태로 치달을 것이다. 프로크루스테스의 횡포가 계속되면 케피소스 강변은 행인의 발길이 끊어져 황폐화될 수밖에 없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이만우 고려대 교수·경영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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