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살아보니/메리 제인 리디코트]서울서 찾은 달콤한 휴가

  • 입력 2006년 8월 2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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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0만 명이 살고 있는 도시를 가족이 함께 편안히 쉴 수 있는 여름 휴양지로 적합하다고 생각하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최근에 혼잡한 서울에서 정말로 멋진 가족 휴가지를 발견했다.

당초 나는 이번 여름휴가를 남편 및 두 어린 아이와 함께 호주 스타일(Aussie-style)로 보내기로 했다. 처음 며칠은 틀에 얽매이지 않고 소박하게 집 주변과 정원에서 시간을 보냈다. 그러나 이것도 남편이 아이들이 무척이나 좋아하던 간이 차고 안의 어린이용 풀장을 자동차로 납작하게 망가뜨리기 전까지였다.

사흘간의 여름 장맛비는 아이들을 집 안에만 머물게 했다. 그래서 궁리 끝에 일단 동해로 떠나기로 하고 아이들용 손수건, 기저귀, 좋아하는 몇 권의 책, 공룡 장난감, 과자, 물 등을 챙겨 집을 나섰다.

고속도로에서 2시간 반을 보냈는데도 우리는 40km도 가지 못했다. 수많은 한국 가족이 우리와 같은 설렘으로 동해에 가고 있었던 것이다. 세 살짜리 아들 샘이 뒷좌석에서 아직 멀었느냐며 이리저리 보채기 시작하고 우리 부부도 점점 짜증스러워졌다. 우리는 생각 끝에 집으로 돌아가기로 결정했고 완전히 녹초가 된 우리 가족은 집에 돌아온 것이 더할 나위 없이 반가울 뿐이었다. 그리고 모두 달콤한 낮잠을 청했다.

나는 기나긴 장마와 고속도로에서의 오랜 지체는 더 좋은 기회를 위해 한 발짝 물러선 것일 뿐이라고 되새기며 자위를 했다. 아이들이 희귀한 벌레에 물린 것도 아니고, 수두에 걸린 것도 아니기에 오랫동안 기다린 가족 휴가를 이대로 보낼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다음 날 아침 친구 가족과 함께 서울의 명소, 우리에겐 이른바 숨겨진 보석 같은 곳을 찾아 나섰다.

맨 처음 발견한 곳은 서울에서 아이들에게 인기 만점인 곳 중 하나인 남산 숲 속 놀이터였다. 이어 공룡박물관, 삼성 어린이 박물관, 로봇 박물관, 뽀로로 숲속마을 축제, 그리고 대한민국 과학 축전에 참가한 호주 퀘스타콘 전시회를 비롯해 다양하고 멋진 전시회들을 접할 수 있었다.

나는 일하는 엄마이기 때문에 주중엔 저녁에만 아이들과 함께 시간을 보낼 수 있다. 그렇기에 이번 휴가 동안 아이들이 박물관과 전시관에서 로봇을 작동하거나 동굴을 기어서 통과하고, 공룡 뼈 안에서 미끄럼을 타며 무척이나 즐거워하는 모습을 보는 것은 대단히 값지고 소중한 것이었다.

물론, 문 닫을 시간이 됐을 때 샘을 밖으로 데리고 나오기란 쉽지 않았다.

그때마다 나는 샘을 마른 오징어로 유혹하거나 한식집에 데려가겠다고 약속했으며 자기 전에 샘이 좋아하는 ‘뽀로로’ DVD를 보여 주겠다고 다독거렸다.

이처럼 처음으로 한국에서 가족과 함께 보낸 여름휴가는 정말 즐거웠고 아이들에게도 많은 경험을 쌓게 해 주는 기회가 됐다. 비록 도심을 벗어나 보낸 휴가는 아니었지만, 서울은 우리 가족 모두에게 굉장히 놀라웠고 행복한 기운을 많이 불어넣어 주었다.

메리 제인 리디코트 주한 호주대사관 교육과학 참사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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