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 권장도서 100권 시리즈를 마치며

  • 입력 2005년 7월 30일 03시 1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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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부터 유재건 사장, 이태수 도정일 교수, 조형준 주간. 신원건 기자
왼쪽부터 유재건 사장, 이태수 도정일 교수, 조형준 주간. 신원건 기자

《동아일보가 창간 85주년을 맞아 서울대와 공동으로 마련한 ‘책 읽는 대한민국’ 기획이 올해 4월 1일부터 7월 29일까지 100회에 걸쳐 게재됐다. 대학생은 물론 고교생과 일반인이 책을 가까이 하고 책 읽는 재미를 느끼도록 하려는 취지였다. 기획을 주관한 서울대 이태수 대학원장이 독서문화 운동가, 출판인, 번역가와 함께 21일 본보 회의실에서 ‘권장 도서와 독서문화 그리고 우리 사회’라는 주제로 좌담을 가졌다.사회=송상근 사회부 차장》

―‘권장도서 목록’ 선정의 의의는 무엇인가.

▽이태수=연재를 시작하며 밝혔듯이 선정의 의미를 찾는 것은 가장 무거운 주제다. 거창하게 말하면 권장도서 선정이란 작업을 통해 우리가 어떤 책으로 우리 문화, 한국, 나아가 동양과 인류 전체를 정의하느냐 하는 고민을 하게 된다. 이런 작업을 통해 우리의 문화, 역사, 정체성을 찾아간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한 책무라고 생각한다.

▽조형준=판매가 거의 안 되던 책이 소개된 뒤 매달 1000권 넘게 팔렸다. 비대중적인 분야의 영향력이 이 정도니 다른 분야에서의 파급효과는 엄청났을 것이다. 독서문화 보급에 소중한 기회다.

▽도정일=서울대 등 몇몇 대학이 학생이 읽어야 할 책을 골라 목록을 만든 점은 높이 평가해야 한다. 목록에 있는 고전을 과거가 아닌 동시대의 책으로 받아들이면서 이것이 현재 사회에는 무슨 질문을 던지는지 고민해 볼 만한 충분한 가치가 있다. 우리 사회가 이런 목록을 내놓는다는 데 상당한 의미가 있다.

▽유재건=출판 현장에서는 권장도서 추천이 옳다 그르다를 떠나 논의의 출발점이 됐다는 점에서 대단히 환영할 만한 일이라고 느낀다. 독자는 독서의 목표와 방향을, 출판사는 좀 더 다양한 방식과 종류의 해설서에 접근할 목표와 방향을 갖게 된다. 일선 학교에서는 이를 어떻게 소화해 낼 수 있을지, 스스로의 교육 역량을 고민하는 계기가 됐다고 생각한다.

―고전 목록 선정 배경에 대해 궁금해 하는 사람이 많은데….

▽조=목록을 처음 접하고 일반인이 쉽게 접근하기 어려운 책이 많다고 느꼈다. 예전에 비해 문학작품이 많이 들어갔지만 미셸 푸코 이전 세대까지로 한정돼서 아쉽다. 동양사상은 당연히 들어가야 할 것 같으면서도 고리타분해 보여 당혹스러웠다.

▽도=서양문화는 오늘날 그들의 문명을 있게 한 토대를 만든 고전이 존재한다. 동양은 다르다. 지금 적용하기 어려운 중국문명이 존재할 뿐이다. 원효 퇴계 율곡은 중요한 역사 인물이지만 현대인이 공유하고자 하는 인식과는 차이가 있다. ▽이=책 선정을 맡았던 위원들도 많은 고민을 했다. 가장 많이 읽히는 책보다는 꾸준히 읽히는 책이 권장도서라는 결론에 도달했다. 적어도 50년 세월의 검증을 받아야 한다는 판단에서 1945년 이후의 책은 거의 빠졌다. 반면 우리가 모르거나 잊고 지나친 양서를 이번 기회를 통해 재발견했다. ‘허클베리 핀의 모험’ ‘페더랄리스트 페이퍼’나 ‘춘향전’이 이런 경우다.

▽유=고전 자체에 대한 문제보다는 선정된 고전을 읽을 수 있는 방법에 대한 교육이라든지 이에 다양하게 접근할 수 있는 입문서가 없어서 문제다. 고전에 대한 일반인의 관심이 줄었다면 내용에 대한 공감대가 없기 때문인지 이를 접할 수 있는 방법의 제한 때문인지도 함께 고민해 봐야 한다.

―소개된 책 중 추천할 만한 번역본이 별로 없는 경우도 있었다.

▽이=대학에서도 고전을 전공했다고 할 만한 사람이 많지 않다. 동양고전 분야가 심한데 전공 교수 약 170명 중에 해제를 맡길 만한 사람은 10명 내외였다. 한 분야를 집중적이고 지속적으로 연구할 수 있는 연구 풍토나 지원 제도가 갖춰져 있지 않기 때문에 비롯된 현상이다.

▽도=번역에 있어서도 일반 독자가 신뢰할 만한 텍스트가 없는 것이 우리 출판계의 현주소다. 출판계가 많이 노력하고 있지만 사실 대한민국만큼 번역정책이 빈약한 나라는 없다. 문화 콘텐츠의 기본은 고전인데 이를 올바른 우리말로 번역해 안정되고 신뢰할 만한 텍스트를 만들려는 정책은 전혀 없다. 모든 것을 시장에 맡겨 두다 보니 몇 년 공을 들여 책을 내도 500권도 안 팔리는 것이 현실이다. ▽조=이제는 번역을 학문의 한 분야로 육성해야 할 시기가 왔다고 생각한다. 연구자 육성만큼 중요한 것이 번역 분야인데 이를 뒷받침할 만한 교육제도는 없는 것 같다. 외국에 있는 번역학이 우리 대학에는 아직 없다. 또 미국처럼 고전의 일정 부분에 대한 정확한 주석을 달면 이를 박사학위로 인정하는 시스템을 더욱 활성화할 필요가 있다. 이를 통해 고전 연구의 지속성을 유지할 수 있을 것이다. ―독서문화 확산을 위해 당부하고 싶은 말은….

▽도=책을 읽는다는 것, 독서정책을 세운다는 것은 국민 교양을 위한 것이 아니라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책을 읽는 것은 민주적인 실천이고 지식 습득 재창출의 과정이다. 과거 책을 마음대로 읽지 못하던 시절이 있었다. 열악한 유통 환경과 같은 시스템 문제에서부터 사상 검증과 같은 정치적인 문제에 이르기까지 책을 가까이 할 수 없는 억압이 있었다. 하지만 요즘은 스스로가 지식 습득을 제한하고 있지 않은지 반성해야 할 것이다. 새로운 문화가 문자매체로부터 멀어지게 만들어 ‘신야만’ ‘신문명의 위기’란 말이 나오는 이유에 스스로가 기인하고 있지는 않은지 생각해 보아야 한다. 정치 사회 경제 모든 분야의 근본은 제대로 된 지식 습득에서 비롯된 올바른 가치관이 성립됐을 때 제 기능을 발휘할 수 있다.

▽조=오늘 토론을 하면서 우리의 초상을 보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출판하는 사람으로서 자괴감마저 들었다. 출판 분야에서도 ‘이 정도는 잘 만들어 놓고 잘 팔린다, 안 팔린다 얘기해야겠다’고 반성했다. ▽이=고전은 한줄 한줄 읽어 내려가며 생각도 하게 되고 토론을 할 수 있는 논거를 제시해 준다는 점에서 재미가 있다. 그래서 올바른 독서문화 전파를 위해서는 ‘몇 권을 읽었다’는 개인적인 목표를 세우고 이를 실천하는 업적 위주의 독서보다는 독서토론회를 만드는 것이 더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책을 끝까지 읽지 않더라도 감상문을 쓰거나 토론을 통해 정독하는 습관을 키우는 것이 더 중요하다.

정리=김재영 기자 jaykim@donga.com

■참석자 명단

○도정일(都正一)

경희대 영어학부 교수. 경희대 인문학 연구원장. 책 읽는 사회 만들기 운동본부 상임대표

○유재건(柳在建)

한국출판인회의 출판사업위원장. 그린비 출판사 사장

○이태수(李泰秀)

서울대 철학과 교수. 서울대 대학원장. 한국철학회 회장

○조형준(趙亨濬)

번역가. 새물결 출판사 주간

권장도서 목록(게재순)
순서 도서 이름 저자·편자
1 광장 최인훈
2 돈키호테 세르반테스
3 같기도 하고 아니 같기도 하고 로알드 호프만
4 루쉰 소설전집 루쉰
5 백년 동안의 고독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
6 간디 자서전 마하트마 K 간디
7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마르셀 프루스트
8 국가 플라톤
9 한중록 혜경궁 홍씨
10 도덕의 계보 프리드리히 니체
11 젊은 예술가의 초상 제임스 조이스
12 변신인형 왕멍
13 카오스 제임스 글리크
14 역사 헤로도토스
15 탁류 채만식
16 허클베리 핀의 모험 마크 트웨인
17 군주론 니콜로 마키아벨리
18 논어 공자
19 셰익스피어 4대 비극 윌리엄 셰익스피어
20 자유론 존 스튜어트 밀
21 양철북 귄터 그라스
22 정지용 전집 정지용
23 그리스 로마 신화-
24 슬픈 열대 클로드 레비스트로스
25 부분과 전체 베르너 하이젠베르크
26 파우스트 괴테
27 실천이성비판 이마누엘 칸트
28 주홍글씨 너대니얼 호손
29 카인의 후예 황순원
30 감시와 처벌 미셸 푸코
31 안나 카레니나 레프 톨스토이
32 픽션들 호르헤 L 보르헤스
33 리바이어던 토머스 홉스
34 다산시선 정약용
35 마의 산 토마스 만
36 페더랄리스트 페이퍼 알렉산더 해밀턴 外
37 종의 기원 찰스 다윈
38 정부론(통치론) 존 로크
39 마담 보바리 귀스타브 플로베르
40 홍루몽 조설근
41 국부론 애덤 스미스
42 고백록 아우구스티누스
43 위대한 유산 찰스 디킨스
44 프로테스탄티즘의 윤리 와 자본주의 정신 막스 베버
45 괴델, 에셔, 바흐 더글러스 호프스태터
46 카라마조프가의 형제 도스토예프스키
47 맹자 맹자
48 고향 이기영
49 인간의 조건 앙드레 말로
50 의무론 마르쿠스 툴리우스 키케로
51 인간문제 강경애
52 황무지 T S 엘리엇
53 신기관(신논리학) 프랜시스 베이컨
54 문학과 예술의 사회사 아널드 하우저
55 고도를 기다리며 사뮈엘 베케트
56 장자(莊子) 장주(莊周)
57 물질문명과 자본주의 페르낭 브로델
58 객관성의 칼날 찰스 C 길리스피
59 당시선(唐詩選) 이백(李白) 외
60 무정 이광수
61 아함경 사캬무니 붓다
62 신곡 단테
63 방법서설 르네 데카르트
64 연암집(연암산문선) 박지원
65 퇴계선집(퇴계문선) 이황
66 혁명의 시대 에릭 홉스봄
67 이기적 유전자 리처드 도킨스
68 춘향전 작자 미상
69 자본론 카를 마르크스
70 대학-중용 증자, 자사 등
71 마음 나쓰메 소세키
72 일리아스-오디세이 호메로스
73 제자백가 공자, 묵자, 노자 등
74 꿈의 해석 지크문트 프로이트
75 천변풍경 박태원
76 엔트로피 제러미 리프킨
77 변신 프란츠 카프카
78 미국의 민주주의 알렉시스 드 토크빌
79 삼대 염상섭
80 우파니샤드 작자 미상
81 에밀 장 자크 루소
82 구운몽 김만중
83 변신 이야기 오비디우스
84 과학혁명의 구조 토머스 쿤
85 사기 사마천
86 법의 정신 바롱 몽테스키외
87 주역 작자 미상
88 오이디푸스 왕 外(그리스 비극 중) 소포클레스 등
89 백석 시전집 백석
90 미디어의 이해 마셜 맥루한
91 청구야담 작자 미상
92 설국 가와바타 야스나리
93 보조법어 지눌
94 토지 박경리
95 천체의 회전에 관하여 코페르니쿠스 등
96 율곡집(율곡문선) 이이
97 체호프 희곡전집 안톤 체호프
98 니코마코스 윤리학 아리스토텔레스
99 삼국유사 일연
100 고전시가선집 유리왕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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