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역에 감금된 대전촌놈… 약백이<6>

  • 입력 2005년 1월 29일 12시 08분


코멘트
서울역 구내만 맴 돈 형편없는 '맞선'

대전에 사는 32살의 자칭 노총각 우수한(가명)씨는 지난 6년간 맞선을 모두 100번 가량 봤다. 이 가운데 대략 2번은 퇴짜를 놓고 나머지는 퇴짜를 맞았거나 서로 무관심했단다. 100번이나 맞선을 보면서 얼마나 많은 일들이 일어났을까. 그는 맞선을 보면서 경험했던 충격적이거나 가슴 아픈 사연들을 글로 옮겼다. 이번에 6회째 글을 내보내며 앞으로 12회까지 연재할 예정이다. <편집자주>

[어느 총각의 101번 맞선기]<6>서울역 감금사건, 찬바람 나는 서울역만 맴돌다…

사람들은 나에게 이런 얘기를 많이 한다.

“우수한씨는 눈이 높아서 그래, 눈을 좀 낮춰봐”

뭔 소린지 모르겠다.

내가 무슨 눈이 높다는 것인가. 내 소개팅 전적을 살펴보면 대략 85%차이고, 10%무승부(서로 마음에 안 들었다는 얘기), 5%정도는 내가 마음에 안 들어 했던 경우인데 뭐가 눈이 높다는 말인가.

꼭 이런 소리 하는 사람들의 공통점은 나에게 한명의 여자도 소개 시켜주지 않았던 사람들이 이런 소리들을 늘어놓는다. 솔직히 나한테 여자 소개 시켜주고 이런 소리 하는 사람들은 거의 없다. 왜냐하면 나의 전적을 잘 알기 때문이다. 나는 마음에 있어 하는데 여자 쪽에서 NO한 경우가 많으니 내가 눈이 높은 게 아니지 않는가?

제발 부탁하는데 나보고 눈 높다고 좀 하지 말아줘라.

X팔리지만 말은 바로 하자.

“우수한씨! 여자들 눈이 높아서 그래, 여자들 눈 좀 낮춰야 수한씨 여자 생길거야”

자 그럼 이 정도로 사설을 늘어놓고 본격적으로 이번 이야기를 시작해볼까 한다.

지난 1편 "평택까지 오라하고 '퇴'자라니?"에서 지방으로는 웬만하면 소개팅 가지 말라고 했다. 하지만 그 원칙을 내가 깰 줄 이야. 어쩔 수 없었다. 이론과 실제는 항상 들어맞지 않는 법이니까. 나를 나쁜 놈이라고 욕하지 마라. 아니 솔직히 나쁜 놈이라고 욕해도 좋다. 그러니 제발 내 주변분들 그런 자리 많이 나 마련해 줬으면 하는 게 내 새해 소망이다.

이번 이야기의 제목을 붙이자면 ‘서울역 감금 사건’이다.

평택사건과 거의 흡사하다. 하지만 서울 올라가서 서울역 밖으로는 한발도 내딛지 못하고 역구내에서만 빙빙 돌다 소개팅을 마치고 돌아왔다면 여러분들은 믿겠는가.

때는 바야흐로 2004년 11월 어느 일요일. 내가 경험한 사건 중 가장 최근의 사건이다. 나는 금융권에서 근무하다 보니 주 5일 근무를 한다. 그렇다 보니 여자친구도 없는 놈 주말이 되면 딱히 뭐 할 일도 없고 해서 주로 도서관에서 책을 읽는다. 이날도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책 한권 사서 보려고 시내 서점에서 시간을 죽이고 있을 때 나에게 구원의 빛을 내려주는 듯 전화벨이 울렸다. 선배였다.(이 선배는 지난 2편 “미안하네요, 바빠서 못 나가요"편에서 나왔던 그 선배다)

“우가야 뭐 하냐”

“서점에서 책 봐요. 왜요?”

“야. 전화번호 하나 적어봐라. 부천에서 고등학교 선생하고 있는데 한번 연락해봐”

아니 이게 무슨 소린가. 뭐 여자 전화번호란 말인가? 지난 7월 이후 한 번도 해보지 못했던 소개팅 주선이란 말인가. 성인 남녀 단둘이 만나서 커피숍 같은데서 이야기 나눈다는 그 소개팅. 언제 했는지 기억도 가물가물한 그 소개팅....다시 시작되는 것인가. 펜...펜...펜을 찾아야 한다. 전화번호를 적을 수 있는 펜... 나는 얼른 계산대로 뛰어가 점원 언니에게 볼펜을 빌렸다.

“예. 형 불러주세요”

“어 011-9843-XXXX 황미경 선생이다. 네 얘기 해 놨다. 지금 전화해봐. 네 전화 기다리고 있을 거야”

“예. 선배 고마워요. 근데 전화해서 뭐라고 해요”

“얌마, 그건 네가 알아서 해야지. 나한테 물으면 어떡해. 하여간 전화해서 약속 정해서 만나봐”

“예, 알았어요.”

전화를 끊고 더럭 걱정 먼저 됐다. ‘전화해서 뭐라고 하지. 어색하지 않으면서 친근감을 줄 수 있는 멘트가 뭐가 있을까’ 답이 안 나왔다. 그래서 그날 전화를 못했다.

그리고 월요일. 다시 선배에게 전화가 왔다.

“전화 했냐?”

“아니요. 아직 못했어요. 뭐라고 해야 할지 몰라서”

“얌마, 아직까지 전화 안하면 어떡해. 네 얘기 금요일 날 했는데. 많이 기다리겠다. 빨리 전화해봐. 뭘 뭐라고 해 그냥 전화 먼저 해”

맞다. 내가 이것저것 생각이 많아서 아직 여자를 못 사귄지 모른다. 전화 해야지.

그리고 이런저런 과정을 거쳐 그녀와 통화에 성공했다. 전화를 받아주는 그녀는 너무나도 편안히 받아줬다. 아주 오래된 연인처럼 이것저것 전화로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서로에 대해서 알아나가기 시작했다. 조짐이 좋았다. 아무런 사전지식 없이 처음 만나면 솔직히 외모로 평가하지 않는가.

하지만 이렇게 전화통화 오래하면서 서로에 대해 조금은 알고 만난다면 외모에 대한 선입관이 줄어들어 잘될 확률이 훨씬 높게 느껴졌다. 희망이 보이기 시작했다.

‘나에게도 정녕 봄날은 오는 것인가’

그리고 금요일. 토요일에 만난 약속을 잡기 위해 전화를 했다.

“내일 올라가려구요. 어디서 뵐까요. 제가 서울지리를 잘 몰라서요. 서울역 쪽으로 갈까요, 용산역으로 갈까요?”

사실 그랬다. 내가 태어나서 지금까지 서울에 올라가 본 것이 5번 정도 밖에는 없다. 그것도 교육받으러 당일 코스로 갔다 온 것이 두 번. 나머지 3번은 다른 곳을 가기위해 경유지로 서울을 잠시 들렸을 뿐 서울 시내를 활보하면 이것저것 구경하며 다녔던 적이 한 번도 없다.

솔직히 고백하건데... 나 혼자는 지하철도 못 탄다. 그러자 그녀가 대답했다.

“글쎄요. 서울 잘 모르신다고 하셨죠. 그럼 제가 역으로 마중을 나갈께요. 서울구경 제대로 하시려면 용산 보다는 종로가 더 나을 거예요. 요즘 종로에 새 건물도 많이 들어서고, 종로구경 제가 시켜 드릴께요”

아... 대전 촌놈 출세했다. 내가 우리나라 수도서울을 구경할 수 있겠구나. 그것도 여자와 함께. 나 지금까지 남자하고도 개인적으로 30분 이상 통화한 적 없다. 그런데 그녀와는 일주일 내내 거의 30분 이상을 통화했다. 여기까지 모든 것이 완벽했다.

약속 당일인 토요일.

앞으로 벌어질 일들은 상상도 못한 채 기차에 몸을 싣고 들뜬 마음을 가다듬고 있었다. 약속은 서울역에서 오후 2시였다. 시간이 맞는 기차가 없어 좀 이르게 1시 40분에 서울역에 도착했다. 도착 후 나는 화장실로가 옷매무시를 단정히 하고 머리도 정돈하면서 최종 점검을 실시했다. 오늘따라 안 그래도 검은 피부가 유독 검게 보였다.

그때, 그녀에게서 전화가 왔다. 자기도 서울역에 도착했다고 어디에 있냐는 전화였다. 나와 그녀는 서울역 2층에 있는 햄버거 집 앞에서 만나기로 했다. 화장실을 나오는데 기분이 묘했다.

‘잠시 후면 만나는 구나. 이번에는 정말 잘 돼야 할 텐데’

이런 생각을 하며 햄버거 집으로 향하는데 멀리서 있는 한 여자가 보였다.

언뜻 보기에도 키가 커보였고 시원시원한 마스크를 갖고 있었다. 내가 상상했던 이미지와 매우 흡사했다.

‘저 아가씨인가 보구나’

내가 그리로 다가서자 그녀도 나에게 관심을 보였다.

“전 황미경 선생님이세요”

“네”

그러나 대답과는 달리 그녀의 표정이 유쾌해 보이지 않았다.

뭔가 찝찝한 기분이 들었다.

“전 줄 한 번에 알아 보셨어요?”

“네, 걸어오시는데 서울 사람 아닌 것 한 번에 알아보겠던데요”

무슨 의미일까? 서울 사람 안 같다는 게... 촌스럽다는 얘긴가.

하여간 이렇게 짧은 인사를 나눈 우리는 지하철을 타기위해 지하로 내려갔다. 토요일 오후여서인지 지하철 승차권 판매소에 줄이 길게 늘어서 있었다.

“저 혹시 교통카드 있으세요”

“대전은 아직 지하철이 없어서요”

“사람 많아서 지하철 못 타겠네요. 위로 올라가서 그냥 식사하죠”

“네”

우리는 다시 1층으로 올라왔다. 서울역 1층에는 이름은 정확히 기억할 수 없지만 패밀리 레스토랑이 있었다. 그곳으로 들어가 대기인표를 받고 20분 정도를 기다린 후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남자들 양식 좋아하는 사람들 별로 없다. 가격은 더럽게 비싸고 음식양은 적고, 맛도 느끼한 것이 솔직히 어디 고기 집 가서 편하게 앉아서 배불리 실컷 먹는 게 낫다. 그런 이유로 패밀리 레스토랑의 메뉴는 주문부터 어렵다.

샐러드, 음료, 메인요리 다 따로 시켜야 되는 것이 너무 어렵다. 그녀가 나에게 음식 주문을 권했다. 하지만 내가 뭘 알겠는가. 나는 그녀에게 알아서 시켜달라고 했고 그때부터 나는 한 마리 말 잘 듣는 애완동물로 변해가기 시작했다. 식사하는 동안에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눈 것 같은데 그녀의 태도가 상당히 형식적이라는 것을 느꼈다. 전화통화 할 때 보여줬던 친근함은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가 없었다.

‘이 여자가 내가 일주일 동안 매일 30분 이상을 통화했던 여자가 맞나’

싶을 정도로 굉장히 낯설게 느껴졌다.

식사를 마치고 밖으로 나온 그녀는 차나 한잔 하자며 다시 서울역 3층에 있는 커피숍으로 나를 데려갔다. 이때부터는 아무린 둔한 나라지만 어느 정도 감이 오기 시작했다. 그녀는 나를 완전히 사무적으로 대하고 있었다. 커피숍에서도 그녀는 커피 주문을 하고 바로 잡지를 빼들었다. 앞에다 사람을 앉혀 놓고 말이다.

그것뿐만이 아니다. 내가 무슨 질문을 하더라도 눈은 거의 마주치지 않으며 책을 펼친 채로 대답했고 가끔 가다 하품을 하는 등 너무 싫은 것을 표내고 있었다. 더 이상 그녀와의 시간은 무의미 하게 느껴졌다. 내가 먼저 이제 가봐야겠다고 했더니 얼른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그때 시간이 오후 5시.

나는 대전으로 내려오는 기차표를 예매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서울 올라오기 전 그녀는 나에게 서울 구경을 시켜준다고 했고 종로로 데리고 갈 거라고 했다. 서울 구경을 하다보면 언제 그녀와 헤어질지 몰라 기차표를 예매하지 않은 것이다.

토요일 오후 서울역은 대 만원이었다. 매표소 창구마다 늘어선 줄이 장난이 아니었다.

나는 표를 끊기 위해 줄을 섰고 그녀는 멀찍이 책과 신문을 파는 가판대 앞에서 서성이고 있었다. 보통 원정경기를 가면 아무리 싫은 상대라 하더라도 그 사람 표사는데 줄은 같이 서주고 가는 것 까지는 봐주는 게 맞선에서의 불문율 아닌가. 하지만 그녀는 그런 불문율을 전혀 생각하는 것 같지 않았다. 그저 멀찍이 떨어져서 나는 전혀 안중에도 없는 듯했다.

참 기분 더러웠다. 거기에다 대전으로 오는 기차표가 저녁 9시. 이전은 모두 매진이다. 어쩔 수 없이 나는 그녀에게 상황 얘기를 하고 먼저 가라고 권했다. 그러자 그녀는 기다렸다는 듯이 지하철 승강장으로 향하고 나는 끝까지 매너를 지키기 위해 그녀 뒤를 따랐다. 그리고 개찰구를 통과해 뒤도 돌아보지 않고 앞만 보고 걷는 그녀의 뒷모습을 쓸쓸히 바라보며 다시 서울역 매표소로 올라왔다. 이런 저런 우여곡절 끝에 8시가 조금 넘은 시간 나는 대전으로 돌아오는 기차에 몸을 실을 수 있었다. 그리고 대전에 도착해 그녀에게 잘 도착했다는 안부를 전하기 위해 전화를 했으나 받지 않았다. 그래서 문자를 날렸다.

‘대전에 잘 도착했습니다. 오늘 덕분에 즐거웠습니다.’

보통 사람 같으면 예의상으로라도 ‘대전에 잘 도착했느냐’는 전화내지는 문자를 날리는 것이 상식 아닌가.

멀리서 저하나 보려고 그 먼 곳까지 갔는데 그렇게 매몰차게 끊어버리다니...서울 사람들 독하다, 독하다 말로만 들었지 겪어보니 왜 그런 소리가 나왔는지 이해가 됐다.

내가 서울역 구경하려고 그 먼 곳까지 갔던 것인가. 책임지지 못할 말 처음부터 서울구경 시켜준다고 하지나 말던지. 서울구경을 시켜주겠다던 그녀는 나에게 서울역구경만 시켜줬고 나는 우리나라 수도 서울역의 웅장함만을 느끼며 또 하나의 소개팅을 그렇게 마무리했다.

<우수한>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