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버기동대]춤요정 구슬기 "절 잊어주세요"

  • 입력 2000년 11월 5일 18시 36분


아홉살 어린이의 춤솜씨에 사이버 공간이 떠들썩하다.

구슬기. 인터넷을 조금이라도 쓴다는 사람이라면 이 이름을 모를 리 없다.

이화여대 재즈댄스 강사 이지현씨(30)는 슬기양의 춤솜씨를 이렇게 평했다.

“아홉살 짜리의 춤이라고 할 수 없어요. 박지윤 백지영 DJ DOC 등 연예인들의 춤을 단순히 모방하는 것이 아니에요. 자신의 느낌을 싣고 있어요. 테크닉보다 기분을 살리는 진짜 춤꾼이네요. 춤을 추다가 머리띠가 흘러내리는 당황스러운 순간을 오히려 머리를 쓸어올리는 멋진 춤동작으로 소화하는 솜씨는 정말 프로같아요”

전문가가 감탄할 정도이니 네티즌이 열광하는 것은 당연한 일.

지난해 가을 부산에서 열린 ‘용골춤판’ 이벤트에서 슬기양이 춤을 추는 모습이 담긴 동영상 파일은 인터넷에 등장하자마자 놀라운 속도로 인기 몰이를 했다.

슬기양의 동영상을 처음으로 인터넷에 올린 용두산 홈페이지(www.yongdusan.com)에는 서버컴퓨터가 감당하지 못할 만큼 방문객이 폭주했다. 이 사이트는 결국 동영상 서비스를 잠정적으로 중단했다.

요즘도 사이버공간에서 슬기양의 인기는 웬만한 유명 연예인들을 능가한다. 팬페이지도 등장했다.

PC통신 하이텔 게시판에는 슬기양의 춤이 담긴 동영상자료가 서태지 메사 공연을 담은 동영상보다 더 많은 조회수를 기록했다.

슬기양은 지난달 넷째주 라이코스의 검색어 순위에서는 16위, 네이버 넥서치 검색어 순위에서는 20위를 차지했다. 검색어면에서 슬기양을 앞서는 연예인은 없었다.

슬기양 열풍은 인터넷의 무서운 정보 전파력을 보여준다.

하지만 이같은 열풍이 사생활 침해나 익명성을 악용한 언어 폭력으로 변질돼 논란을 빚고 있다. 각종 게시판에 아홉살 어린이에게는 입에 담기 어려운 헐뜯기와 욕설이 난무하고 있다. 미성년자를 상업적으로 이용하려는 시도도 엿보인다.

예상치 못한 사태 전개에 슬기양의 부모는 무척 당혹해하고 있다. 용두산의 한 관계자는 “슬기양 학교까지 찾아가는 사람들 때문에 슬기양 부모가 적지않게 당황했다”면서 “당분간 대중에 노출되는 것을 피하겠다는 것이 슬기양 부모의 결정”이라고 전했다.

사이버 공간에서도 슬기양을 보호하자는 여론이 형성되고 있다.

한 네티즌은 슬기양의 팬페이지에 ‘슬기양을 위해서 이제 관심을 끊읍시다’라는 긴 글을 올렸다. “정말로 슬기를 아낀다면 슬기가 조용히 이전과 같은 일상생활을 할 수 있도록 배려해야 합니다. 이제 겨우 아홉살인데 사람들의 갑작스러운 관심을 견디기 버거울 것입니다”

전문가들은 비단 슬기양의 경우가 아니더라도 인터넷에서의 무분별한 사진이나 동영상 자료 교환이나 상업화에 대해 크게 우려하고 있다.

최근에는 적외선 투시카메라로 미스코리아들의 알몸을 찍은 사진이 E메일 등을 통해 급속히 퍼져나가고 있다. 모 결혼중매업체에서는 기혼 여성의 사진을 인터넷으로 남성 회원들에게 배포해 파문이 일기도 했다.

정보통신윤리위원회 김철환 유해정보팀장은 “슬기양의 경우 네티즌들의 과도한 관심으로부터 많은 스트레스를 받을 수 있다”면서 “상황 대처 능력이 없는 어린이가 겪을 정신적 고통은 어른들이 상상하는 것보다 심하다”고 말했다.

티없이 맑은 어린이들. 이들이 과연 사이버 세상에서 마음놓고 뛰어놀 수 있을 지는 네티즌의 ‘민도’가 판가름할 것으로 보인다.

<천광암기자>ia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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