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설가' 강준만 11시간 밀착인터뷰 上]

  • 입력 2000년 10월 20일 13시 40분


▼“ 죽는 날까지 지식인의 위선 벗기겠다”▼

거침없는 글쓰기로 성역과 금기에 도전해온 전북대 신문방송학과 강준만 교수는 흔히 ‘전투적 자유주의자’로 불린다. ‘강준만 현상’이란 그의 독특한 글쓰기 방식과 그 글에 담긴 ‘도발적인’ 메시지(지역주의 비판, 서울대 망국론, 조선일보 제몫 찾아주기 등)를 둘러싼 ‘충격파’를 일컫는다. 그것은 지난 몇 년 동안 마치 불온한 삐라처럼 지식인사회의 뒷골목에서 어슬렁거려 왔다. 우리 사회 ‘주류’의 언저리를 맴돌던 이 충격파는 시간이 지날수록 자장이 커졌고 마침내 학계 출판계 언론계 등 이른바 지식인사회의 몸통 한가운데를 꿰뚫는 데까지 이르렀다.

그가 고발하는 ‘지식인의 위선’이 시대의 중요한 화두로 사람들의 머릿속을 점령해버린 것이다. 올 들어 ‘당대비평’ ‘문화과학’ ‘문예중앙’ ‘문학과 사회’ ‘emerge 새천년’ 등 각종 계간지와 월간지들이 앞다퉈 ‘강준만 현상’을 분석하고 지식인들 사이에 ‘강준만식 글쓰기’의 미덕과 해악을 두고 불꽃 튀는 논쟁이 이는 것은 그가 10년 동안 벌여온 작업의 사회적 의미와 폭발력을 감안하면 뒤늦은 느낌마저 있다.

그가 일찍이 언론을 ‘카멜레온과 하이에나’로 규정하고 맹렬히 비난하지만 않았더라도 ‘강준만 현상’은 진작에 뒷골목에서 빠져나와 광장으로 나아갔을 것이다. 강교수는 그 동안 인터뷰 사절 방침을 철저하게 지켜왔다. 숱한 인터뷰 요청을 뿌리치는 대신 꾸준한 글쓰기를 통해 자신의 생각을 내비쳐 왔을 뿐이다. 그런 점에서 이번 ‘신동아’ 인터뷰는 그의 첫 공식 인터뷰인 셈이다. ‘고립된 성채’에서 나와 눈부신 햇살이 쏟아지는 광장 한가운데 선 그는 가슴을 활짝 펴고 사람들을 향해 외치기 시작했다. “당신들은 왜 분노를 잃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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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 전사(戰士) 강준만◇

“아니, 진짜로 쳐들어오면 어떡합니까.” 기자가 신분을 밝히자 강준만 교수는 화들짝 놀란 표정이었다. 잠시 망연히 바라보기만 했다. 10월4일 오후 3시20분. 전북 전주시 덕진동 전북대학교 신문방송학과 강준만 교수 연구실. 강교수는 2시부터 시작한 한 시간 짜리 강의(국제커뮤니케이션)를 끝내고 연구실로 돌아와 한 학생과 상담을 막 마쳤다.

애초 인터뷰가 성사되리라는 기대를 품고 찾아간 것은 아니었다. 평소 기자들에게 그 흔한 ‘전화 멘트’조차 허용하지 않을 정도로 언론 기피증을 보여온 강교수다. 신문방송학과 사무실에서 전화 받는 학생에 따르면 바로 얼마 전에도 일부 언론이 인터뷰를 시도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했다는 것이다.

기자는 전주로 내려가기 며칠 전 그에게 팩스를 보냈다. ‘이번에도 (인터뷰에) 응하지 않으면 쳐들어갈 테니 가부간에 답을 달라’는 요청이었다. 그러나 아무런 답장이 없었다. 슬그머니 오기가 일었다. 무작정 찾아갈 결심을 한 데는 그런 이유도 있었다. “참 미치겠네요” 그에겐 놀랄 일이 한 가지 더 기다리고 있었다. 기자가 조금 전에 끝난 강의를 몰래 들었다고 하자 그의 큰 눈이 더욱 커졌다(그는 강의시간에 국내 시사월간지들의 문제점을 비판했다).

강의 시작 10분 전 수강생으로 꾸미고 강의실 뒤쪽에 자리잡았던 기자는 하마터면 강교수를 몰라볼 뻔했다. 2시 정각이 되자 티셔츠 차림의 누군가가 들어와 교단에 섰는데, 그가 출석을 부르며 유인물을 나눠주지 않았다면 교수가 아닌 줄 알았을 것이다. 그는 내키지 않지만 어쩔 수 없다는 듯 불청객을 연구실 안으로 들였다.

잠시 어색한 침묵이 흘렀다. 기자는 강의 내용을 화제 삼아 그의 말문을 열려 했다. 그는 “강의를 듣고 있는 줄 알았다면 그런 얘기(시사월간지 비판)는 안 했을 것”이라며 겸연쩍게 웃었다. 얼마 후 밖에 나가 자판기 커피를 뽑아온 그는 담배를 물었다. 흐늘거리는 담배연기처럼 그가 흔들리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20분 가까이 고민하던 그는 “참 미치겠네요”라는 말로 인터뷰에 응했다.

먼저 9월28일 방영된 MBC ‘100분 토론’에 대해 얘기하다가 몇 년 전 강교수가 모 방송사의 ‘인물초대’ 프로그램에 출연했던 일이 화제에 올랐다.

―‘100분 토론’이 끝난 후 그 프로그램 홈페이지의 ‘토론의 장’에 들어가 보니 하룻밤 새 1000건이 넘는 글이 올라와 있던데 ‘강준만 나와라’는 의견도 많더라고요. 예전에 TV에 한번 나가신 적이 있지요?

“그때 받은 항의가 ‘너 다시는 나가지 말라’였습니다. 그때 항의했던 독자들이 지금 제 발목을 잡는 거죠.”

―어떤 항의였어요?

“촌스럽고 우악스럽고. TV에는 전혀 적합지 않으니까 TV에 얼씬거릴 생각은 하지 말라는 거예요. 역효과가 난다는 거죠.”

―특별히 사투리를 쓰시는 건 아닌데.

“전라도 억양보다는, 제가 봐도 말할 때 차분하지 못하게 얼굴 근육이 움직이면서….”

―녹화해서 보셨어요? “

몇 번 봤죠. 그 전에도 TV에 여러 번 나간 적 있었거든요. 보면 전혀 안 어울려요. 예를 들어 ‘100분 토론’ 같은 경우에는 자신이 없어서 안 나가는 거죠. 역효과 난다고 그러고. 활자 매체 체질로 갈 수밖에 없는 핑계가 되죠. 그게 얼마나 비극인데요.”

―‘100분 토론’을 보면서 저도 새삼 느꼈는데, 글 잘 쓰는 것과 토론 잘 하는 것은 별개 문제인 듯싶습니다.

“기대 수준이 높아서 그렇지 제가 보기엔 잘한 것 같던데요. 그리고 토론의 룰을 안 지켰다고 하는데, 룰이라는 건 상대적인 겁니다. 수준 이하의 발언이 나오는데 (룰을 지키는 게) 쉽지 않지요. 그런 모습이 오히려 자연스럽게 보였어요. 오히려 진지해 보이잖아요? 능수능란하게 너스레 떨어가며 말발로 제압해달라는 이야기인데, 그건 엔터테인먼트죠.”

―사회자가 ‘왜 안티조선을 하는지에 대해 말해 달라’고 주문했는데, 그걸 차분하게 설명하지 못하던데요.

“그런 점도 있고, 또 많은 분들이 TV에서 그 문제를 거론한 것 자체가 대단한 일이라고 말씀하시는데, 저는 양면성이 있다고 봐요. 조선일보 홍보해주는 효과도 있고요”

▼배낭 메고 자전거 출퇴근 ▼

우리 나이로 올해 45세인 그가 교수가 된 것은 1989년이다. 그로부터 11년 동안 그는 단행본 ‘인물과 사상’ 시리즈를 비롯해 모두 75종(편역·공저 포함)의 책을 펴냈다. 1998년 5월 창간호가 나온 월간 ‘인물과 사상’ 시리즈(2000년 10월 현재 통권 30호)를 합하면 지난 11년 동안 연평균 10권의 책을 세상에 내보낸 셈이다. 1998년 이후 월간 ‘인물과 사상’에 실은 글들을 재편집해 단행본으로 묶어낸 경우가 많다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그의 저술 활동이 국내 출판계에서 하나의 신화를 만들고 있음은 분명하다.

그의 독서량 또한 일반의 상상을 뛰어넘는다. 그의 글들을 보면 그가 국내에서 출간되는 웬만한 단행본과 각종 정기간행물을 샅샅이 훑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강준만 교수를 떠올릴 때 사람들이 갖게 되는 궁금증은 어떻게 그렇게 많이 읽고 많이 쓸 수 있느냐는 점입니다. 강의 준비는 언제 하고… 게다가 강연회도 많이 다니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질이 떨어지죠. 요즘엔 강연은 안 해요.”

―하루에 몇 시간이나 주무시는지.

“잠은 원없이 자요. 다만 자는 시간을 뺀 나머지 시간은 모두 그쪽 활동에 투자하죠. 서울에 있으면 사실 이렇게 못 하죠. 만날 사람도 많고 참여해야 될 자리도 많을 테고. 서울에 있으면서 이렇게 미친 척할 수 있겠습니까. 지방에 있으니까 가능한 거죠.”

―주말에는 좀 쉬시나요.

“쉬지 못하죠.”

―취미생활은 거의 못하실 것 같은데요?

“등산하고 자전거를 타는데, 출퇴근을 자전거로 합니다. 아내는 자기 차를 가지고 있어요. 저는 배낭 메고 자전거 타고 다니고.”

―건강은 어떻게 유지합니까.

“일주일에 산에 두 번씩 다녀요.”

―한 달에 원고를 얼마나 쓰세요.

“세어 보질 않아서 모르겠어요.”

―책 내는 속도나 양으로 보면 몇백 장은 쓰실 것 같은데.

“그 정도는 쓰죠.”

―상당히 많은 책을 읽으시는 것 같은데 비결이라도 있습니까.

“책을 많이 읽다 보면 속독을 하게 되죠. 가벼운 책은 하루에 몇 권씩 읽을 수 있고. 요즘 파시즘과 관련된 책을 원서로 보는데 그건 한 이틀 걸리겠더라고요. 어저께도 그 책을 보다가 새벽 4, 5시경에 잤나….”

▼‘한풀이’가 왜 나쁜가 ‘▼

강준만식 글쓰기에 대한 논쟁은 언론 매체와 각종 잡지를 통해 찬반 양론이 뜨겁게 맞서는 가운데 최근 언론에도 소개된 홍윤기 교수(동국대 철학과)의 ‘원고망명 사건’으로 절정에 달했다. 이 사건은 계간 ‘당대비평’(주간 문부식)의 편집위원인 홍교수가 ‘강준만식 글쓰기’를 분석한 자신의 글(‘우리 시대의 권력 비판과 권력 감수성’)이 다른 편집위원과의 의견 차이로 ‘당대비평’ 가을호에 실리지 못한 데서 비롯됐다.

홍교수는 그 원고를 강교수가 발간하는 월간 ‘인물과 사상’ 10월호에 싣는 한편 ‘당대비평’의 편집위원직을 그만두었다. ― ‘강준만식 글쓰기’에 대한 논쟁이 최근 부쩍 잦아지는 양상인데요. 홍윤기 교수의 ‘원고망명 사건’을 비롯해 여기저기서 논쟁이 벌어지고 있지요. 공공연하게 ‘강준만 현상’이라는 말도 나오고. 한국 지성사 또는 비평사의 흐름에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는 찬사가 있는 반면 도덕적 기반이 결여된 인신공격이라는 등 비판론도 만만찮습니다. 글쓰기의 목표·전략·전술이 있다면 어떤 것입니까.

“그렇게 체계적이지는 않은 것 같아요. 가만히 생각해보니까, 지금 언론개혁운동하는 것도 그래요. 서울에 있는 교수들은 지방대 교수들이 자꾸 나선다고 그런단 말이에요. 지방대 교수들이 서울에 올라오지 못한 것에 한이 맺혀서 그런다고 사석에서 그래요. 그리고 그 정서가 의외로 널리 퍼져 있습니다. 제 이야기는 그 말이 맞다는 거예요. 왜 그러냐, 서울에선 유혹을 너무 많이 받다 보니까 기존 언론구조에 편입돼 버리는 겁니다. 저는 한국언론학회가 한국의 언론 발전에 기여하지 못한다고 봐요. 오히려 언론을 정당화해주고 유착체제로 가고 있는 게 한국 언론학자들의 큰 흐름이 아닌가 봐요.

그러나 지방에 있으면 중앙의 그러한 흐름에 대해 문제 의식을 가지고 볼 수 있다는 거죠. 저 같은 경우 학부 전공과 대학원 전공이 다른 게 큰 요인인 것 같아요. 학부에서 경영학을 한 탓에 학연이 없어요. 저도 만약 학연 덕을 보고 학연에 안주할 상황이라면 잘못된 줄은 알지만 세상이 다 그런 거지, 하고 그냥 그대로 갔을 거란 말이죠. 저는 한국의 지식인들이 다 알고 있을 거라고 봐요. 왜 몰라요. 세상이 다 그런 건데 네가 문제 삼는 게 이상하다는 거죠.

문제 삼는 것 자체가 자신의 욕구 불만에서 비롯된 개인 한풀이 차원이 아니냐는 시각이 강하다는 겁니다. 그런데 제 얘기는 개인 한풀이가 뭐가 나쁘냐는 겁니다. 모든 문제의식이라는 것이 그렇죠. 한국 지식계에서 노른자위를 차지한 사람들에 대해 노른자위에 들어가지 못한 사람들이 갖는 문제의식을 배가 아파서 그런다고 매도해버리면 새로운 비판이 어떻게 나올 수 있느냐는 겁니다. 저 같은 경우 문제의식이 분명히 제 개인적인 입장에서 출발했을 거다, 그렇게 보죠. 동기유발도 그렇고. 저라는 사람이 그렇게 순수하진 않아요.”

▼‘콜럼버스의 달걀’▼

“한풀이는 중요하고 정당하다”는 강교수의 독특한 ‘한풀이론’은 호남인들의 정치적 정서에도 적용된다.

“과거에 호남 사람들이 김대중한테 몰표 주면서 한풀이한다고 그랬잖아요. 저는 그걸 정당한 한풀이로 보죠. 한풀이라고 욕하지 말라는 겁니다. 다만 오늘날에 와서 밥그릇 싸움의 양상으로 변질되는 것에 대해서 혹독하게 비판하긴 하지만 한풀이라는 것이 무조건 매도되어야 할 것은 아니라는 거죠.”

―‘강준만식 글쓰기’의 특징을 말하자면, 실명 비판, 독설, 메타 비판―곧 비판에 대한 비판이 많다는 점이죠. 교수님 자신은 어떻게 생각하세요.

“저는 제 글쓰기를 ‘콜럼버스의 달걀’로 보거든요. 제 작업은 대단한 지적 능력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에요. 누가 먼저 (달걀을) 깨 가지고 세우냐의 문제일 뿐이라는 거죠. 무슨 말이냐 하면 한국 지식계가 언론계보다 ‘침묵의 카르텔’이 더 강해요. 마땅히 내부 비판이 있어야 할 곳에 내부 비판이 없는 것을 ‘썩었다’고 표현한다면 언론계보다는 지식계가 훨씬 더 썩었다는 거예요. 직무유기 차원이죠.

과거에 군사독재정권을 예찬하고 참여했던 교수들이 지식계 내부에서 비판의 형식으로나마 응징을 받아본 적이 있느냐는 거예요. 없어요. 그때 그들이 차지하고 있던 대학 내의 위상 덕분에 제자들 가운데 진보적이고 개혁적인 지식인들이 많아도 갈등이 별로 없어요. 과거 청산이 있습니까, 비판이 있습니까. 아무것도 없어요. 제가 어떤 존경받는 지식인을 탐구하기 위해서 그 사람에 관해 나온 글을 다 확인해보면 비판과 반론이 거의 없어요. 한국 사회에서 지식계의 논쟁이라는 건 백낙청(서울대 영문학과 교수·계간 ‘창작과 비평’ 편집위원)과 손호철(서강대 정치학과 교수)의 분단체제에 대한 논쟁처럼 자기들은 빼놓은 공리공론에 관한 논쟁이에요. 특정인을 논할 때 그 사람의 사상이나 주장에 대한 비판까지 안 들어간다는 거죠. 그런 풍토가 지배적이기 때문에 제가 하는 실명 비판을 인신공격으로 보는 건 기존 풍토에 비춰보면 정당하다는 거예요. 저는 그 풍토를 바꾸자는 거죠. 언제까지 ‘침묵의 카르텔’을 유지하면서 내부 상호비판은 안 하고 사회를 향해서만 비판할 거냐는 거죠.”

강교수의 실명비판 방식을 비난하는 사람들이 가장 문제 삼는 것 중 하나는 그것이 비판의 정도를 넘어 대상자에게 모욕감을 준다는 점이다. 이와 관련, 홍윤기 교수는 ‘인물과 사상’ 2000년 10월호에서 “강준만은 타도나 응징이나 적발이 아니라 모욕에 너무나 많은 지면과 정력을 소모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홍교수 주장의 타당성 여부와는 별개로 지난 10년 동안 강교수가 써온 글에서 비판 대상자가 ‘모욕적으로 여길 만한’ 표현을 찾는 것은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니다. 몇 가지 예만 들어보자. “그렇다. 바로 교활함이다. 나는 이문열씨를 표현할 마땅한 단어를 찾지 못해 고민했는데 (이씨를 교활하다고 한) 김명숙씨의 글을 보고 손뼉쳤다.” “이인화는 홧김에 오입하나…. 그에겐 영웅 콤플렉스뿐만 아니라 촌놈 콤플렉스도 있다. 그는 촌놈 출신으로 어린 나이에 크게 출세했다.” “잡글에 대해 그리 자학하지 마십시오. 손교수님의 글은 논문도 잡글 식이던데 뭘 그러십니까(손호철 교수에 대해).” “참 큰일 낼 사람이다. 더 큰일 내기 전에 따끔하게 손을 봐야겠다(한양대 사학과 임지현 교수에 대해).” 한국 지식계의 ‘침묵의 카르텔’ 이런 지적에 대해 강교수는 “한국 지식계가 정상이 아니기 때문에 그런 방식으로 비판할 수밖에 없다”고 강변한다.

“저는 홍선생님(홍윤기 교수)께 한국 지식계에 ‘침묵의 카르텔’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시냐, 그게 바람직하다고 보시냐, 묻고 싶어요. 그분은 기존 풍토에 비춰 내 비판방식이 모욕적이고 인신공격적이고 상처를 주는 것이라고 말씀하시는 겁니다. 제 주장은 모욕받아 마땅한 짓을 했으면 모욕당해야 하고, 상처 받아 마땅한 짓을 했으면 상처 받아야 한다는 거죠. 그건 정당한 응징이라는 겁니다. 모욕이란 건 주관적인 감정이기 때문에 정당한 비판도 모욕으로 받아들인다면 그건 어쩔 수 없죠. 주관적인 느낌까지 어떻게 책임을 지겠습니까. 이런 얘기가 나오는 건 한마디로 말해 한국 지식계에 내부 비판이 없었다는 거죠,

여태까지. ‘콜럼버스의 달걀’이라고 표현한 건 제가 인사이더로서 큰 흐름에 속해 있었더라면 저도 그렇게 못했을 거라는 의미죠. 한국의 지식계 문화는 누구든지 이래선 안 되겠다 싶어 흠집을 내려고 들면 쉽게 할 수 있습니다. 너무 엉망진창이니까. 제가 글을 양산할 수 있는 것도, 너무 쉬우니까, 그 사람의 말이나 글을 인용해놓고 몇 마디 툭 던지고 넘어가면 되기 때문이에요. 말하자면 방이 너무 어질러졌으니까 치우고 정리하는 게 급하지 인테리어는 나중 문제라는 거죠. 그러니까 저의 글쓰기는 아직 인테리어로 들어갈 단계가 아니라는 겁니다. 너무 거칠고 양산에 따른 질의 문제는 인정하죠. 조금 더 뜸들이고 손질하면 훨씬 매끄럽고 좋은 글이 되지 않겠어요? 그러나 열불 터지게 하는 사건들이 너무 많이 벌어지니까 그럴 여유가 없습니다. 특히 제가 열 받는 게 YS정권에 참여했던 지식인들의 행태입니다. 정말 나빠요. 한국 지식계는 정말 반성해야 합니다. YS가 저렇게 깽판 치는데 어떻게 입을 봉하고 있어요? 거기에 대해선 입을 다물고 있으면서 언론매체에 한국 사회를 개탄하고 비판하는 글을 써댑니다. 이게 마피아 집단이지 뭐냐 이거예요. 자기가 충성했던, 자기에게 한자리 줬던 전직 대통령에 대해서는 말 한마디 못하면서… 이건 의리의 문화가 아니에요, 깡패 문화지.

친DJ 지식인들도 마찬가지죠. 김아무개인가, YS 정권에서 청와대 수석하던 사람이 김대중 대통령에게 보내는 고언을 언론에 기고했던데, 한대 때려주고 싶더라고요. 말은 다 옳아요. 김대통령도 반성해야죠. 그런데 지금 김영삼씨가 지역주의로 나라를 갈가리 찢고 있는데, 거기에 대해 여태까지 말 한마디 한 적 있어요? 당시 재야 세력을 YS 문중으로 끌고 들어간 사람이. 그러고선 ‘생활성서’(월간)에는 매달 자기가 민주화투쟁한 것을 자랑하고 있더라고요. 그런 걸 보면 정말 화가 나서 글을 안 쓸 수가 없습니다.”

▼문제는 좌파·진보지식인▼

―말하자면 분노가 글쓰기의 원동력이군요.

“분노죠. 그나마 언론계는 일부 신문이 나름대로 내부 비판을 하잖아요. 그런데 학계에는 그런 게 없어요. 조금만 실명으로 비판하면 10대 소녀들처럼 상처를 받아요. 온실에서 과보호 받아서 그래요.”

―객관적으로 심하다 싶은 표현이 여러 번 있었던 것 같아요. 예를 들면 임지현 교수의 경우만 하더라도 큰일 낼 사람이라느니, 손 좀 봐야겠다느니 하는 표현은 자존심 상할 만하지 않습니까.

“사람들이 제 글을 다 읽지 않아 그러는데, 제 글은 상대편이 한 발언의 어이없는 정도에 따라서 비판의 정도가 달라집니다. 가령 언론개혁에 동의하지만 방법에 대한 의견 차이가 있을 수 있죠. 그 경우 어떻게 감히 독설을 합니까. 어림도 없는 이야기죠. 임교수님에게 제가 화가 나는 이유는 좌파라는 분이 말이 안 되는 행태를 보이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분은 자꾸 왜 네 생각만이 옳다고 그러냐, 다른 방법이 있을 수 있지 않으냐고 묻는데 저는 그게 이 길로도 갈 수 있고 저 길로도 갈 수 있는 문제라고 볼 수 없다는 거죠.

‘당대비평’에 쓴 글을 읽어보면, 표현은 안 했지만, 총선연대의 낙천·낙선 운동도 일상적 파시즘적인 방법이라고 보는 분이에요. 말도 안 되는 얘기죠. 좌파적 담론을 깔면서 그런 얘기를 하니까, 나는 그분이 정말 큰일 낼 사람이라고 보는 거예요.” 좌파 지식인으로 분류되는 임지현 교수와의 논쟁은 ‘인물과 사상’ 2000년 2월호에 강교수가 ‘임지현, 당신의 조선일보관이 일상적 파시즘이다’라는 제목의 글로 임교수를 먼저 공격하면서 시작됐다. 강교수는 그 글에서 임교수가 조선일보에 체 게바라(쿠바 혁명가)에 대한 글을 기고하고 조선일보 편집국에서 강연한 것을 두고, “조선일보의 극우 이데올로기와 양립할 수 있는 주제로 글을 기고해 조선일보의 상품성을 높여줘도 괜찮다고 보는 생각”이라며 맹렬히 비난했다.

이에 임교수는 3월호 ‘인물과 사상’에 반론을 실었다. 곳곳에 ‘노여움’이 서려 있는 이 글의 제목은 ‘두더지의 슬픈 초상’. 두더지는 물론 강교수를 비아냥거린 표현이다. 그는 강교수의 조선일보관을 ‘조잡한 지면 결정론’으로 깎아내리는 한편 “글쓰기를 통해 조선일보 독자의 일부라도 전유하는 것은 지식인으로서의 사회적 책무를 짊어지는 것이라 생각한다”고 반박했다. 강교수는 같은 잡지의 4월호에 실린 재반론을 통해 좌파 지식인의 조선일보 기고를, 유신 또는 5공 정권 참여에 비유했다. 한편 임교수가 편집위원으로 있는 ‘당대비평’은 가을호에서 ‘조선일보의 극우 냉전적 논리와 갈등하고 대립하는 논리를 전파할 수 있다면 기고를 굳이 마다하지 않겠다는 개인의 선택을, 매명주의나 보신주의라는 딱지를 붙여 일거에 매도해선 안 된다’고 강교수에 대한 공격을 재개했다.

▼ 내가 김대중주의자라고요?▼

―일부러 독설을 퍼붓는 건 아닙니까. 말하자면 효과를 높이기 위해서….

“그러면 모든 글을 그렇게 써야 되는데, 어떤 글은 너무 공손하다고 욕먹잖아요. ‘야, 어쩌면 이런 생각을 할 수 있는가’ 하고 생각되는 사람에게만 독설을 퍼붓는 거죠.”

―교수님을 싫어하거나 비난하는 사람들 중 상당수는 교수님이 김대중주의자로서 모든 비판에 그 잣대를 들이댄다고 생각합니다. 지역주의나 조선일보, 진보적 지식인에 대한 비판도 결국 김대중이라는 잣대와 연결된다고 보는 것이죠.

“정권교체 후 한국의 지식인 가운데 김대중 정권을 가장 혹독히 비판한 사람이 누구인지 따져보죠. 저예요. 제가 다 확인해봐서 압니다. 저를 김대중주의자로 보는 사람은 제가 김대중을 비판한 글을 읽지 않습니다. ‘김대중 죽이기’(1995년 출간)라는 이미지 하나로 저를 때려잡거든요. 책 한 권 분량이 되지 않을까 싶어요. 그 동안 김대중 정권을 비판한 글들이.”

강교수의 ‘해명’은, 속마음이야 어떻든 적어도 글만 봐서는 사실에 가깝다. ‘인물과 사상’ 단행본 시리즈와 월간 ‘인물과 사상’을 꾸준히 읽은 사람이라면 그가 ‘누명’을 쓰고 있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실제로 그는 1997년 대선 전까지는 정권교체의 당위성을 역설하는 데 정열을 바쳤지만 김대중 정권이 들어선 후로는 비판을 그치지 않았다. 심지어 올 1월에 출간한 ‘인물과 사상’ 13권에선 ‘김대중 정권의 몰락’을 선언하기도 했다.

그는 이 글에서 “언론과 전라도 사람들, 개혁세력이 김대중 정권을 망친다”며 김대중 대통령에 대해서는 이렇게 비판했다. “그는 정권을 잡기 위한 권모술수에는 탁월한 재능을 보였는지 몰라도 사방이 적으로 둘러싸인 상황에서 정권을 잡은 다음 어떻게 성공적인 국정운영을 할 수 있을 것인가 하는 점에선 너무나도 ‘평범한’ 모습을 보여왔다.”

―교수님의 ‘김대중 비판’은 애정이 있는 비판이지요?

“한국 사회에서 ‘김대중 죽이기’만큼 야비한 짓이 또 있었습니까. 그야말로 관민합동 차원에서 특정한 편견을 갖고 죽이려 든 사람 가운데 김대중보다 심한 경우가 있었습니까. 그런데 거기에 대해 ‘너무했다’라고 문제 제기한 사람을 김대중주의자라고 몰아붙인다면 도대체 남아날 사람이 누가 있습니까. 그 동안 한국 지식인들이 정치를 대해온 태도가 맞다면 저는 김대중주의자가 맞죠. 그러나 지금 한국 지식인들의 정치담론이 크게 잘못됐다고 본다면―이를테면 보신주의, 어용 콤플렉스 같은 것 말이죠―제가 옳은 거죠. 저는 지식인들이 정치적 편향성을 드러내지 않는 것이 더 나쁘다고 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세상을 사는 체념의 지혜를 터득하고 있죠. 저도 터득했던 사람이에요.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글쓰기에 가속도가 붙더라고요. 처음에는 이렇게까지는 아니었어요. 그런데 계속 하다 보니까 분노도 더욱 강해지고 관심을 갖고 지켜볼수록 부정적인 모습이 더 눈에 들어와요. 그래서 가끔 가다 머리를 식힐 필요가 있겠구나, 하는 생각을 합니다.”

▼정치적 편향성 드러내야▼

―어쨌든 정치 성향을 드러내는 게 당당하다는 건데, 정치적 편향을 공공연히 드러낸다면 비판의 공정성에 시비가 일지 않을까요.

“공정성의 잣대를 들이대면 이런 문제가 생기죠. 과연 이데올로기가 공정성의 문제냐는 겁니다. 저는 편향성의 문제라고 봅니다. 조선일보도 편견이 있고 한겨레도 편견이 있고 누구나 편향성이 있다는 거죠. 가령 조선일보 김대중 주필의 글에 대해선 분통을 터트리면서 한겨레신문 논설위원의 글에 호감을 표시한다면 조선 쪽에서 보면 분명 편향된 겁니다. 공정하지 않은 거죠. 그건 제 이데올로기죠. 그러니까 극우적인 생각을 갖고 있는 사람이 저에게 너 공정하지 않다, 편향돼 있다, 편견에 가득 차 있다고 한다면 그건 맞는 말이죠.

그런데 자기가 좌파이거나 진보적인 척하거나 개혁지향적인 척하면서 저한테 편향됐다고 한다면 말이 안 된다는 거죠. 저는 김대중 대통령을 지지하느냐 안 하느냐, 민주당을 지지하느냐 안하느냐로 누구를 비판한 적은 없습니다. 그 사람의 정치적 행위를 가지고 이야기했을 뿐이죠. 지금 말씀하신 공정성은, 이념적인 정치적 성향의 문제는 그 잣대로 따질 수 없는 것이므로, 다르게 적용해야겠죠. 제 글이 객관적 저널리즘은 아니잖아요. 일종의 주관을 드러내는 글쓰기니까.”

―‘인물과 사상’ 2000년 5월호에 정권교체의 의미를 다섯 가지로 설명하셨더군요. ▲남북문제에 대한 김대중의 탁견과 용기 ▲김대중의 지도자적 자질 ▲역사에 대한 보상 ▲이지메에 대한 보상 ▲지역주의 문제 해결, 이 다섯 가지지요. 김대중 대통령의 지도자적 자질을 여전히 높게 평가하십니까.

“실망스럽죠. 가장 큰 문제는 이분이 기존 정치 패러다임을 바꾸지 않고 가려 했던 데 있어요. 현실 정치인으로서 기존 패러다임을 바꿀 때 비용이 크게 들 것이라는 계산을 했겠죠.”

―그런 점에서 정권교체의 당위성이나 역사적 의미가 많이 퇴색한 것 같은데요.

“100을 기준으로 봤을 때 실망스러운 점은 20 정도라고 봅니다. 그런데 20을 90인 양 말들 하죠. 왜냐하면 이 정권은 국민 40%의 지지를 받고 태어났거든요. 다시 말해 이 정권의 탄생을 원치 않았던 사람이 훨씬 더 많다는 거죠. 만약 정권교체가 안 됐더라면 제가 볼 때 호남인들이 느꼈을 좌절은, 이 나라가 영원히 찢어지는 아픔 같은 것입니다. 왜 그 생각은 안 하냐는 거예요. 그건 엄청난 거죠. 그리고 남북 문제에 대해 어느 정도 상식을 갖고 판단한다면 이 정권의 장점이 분명히 있죠. 게다가 요즘은 야당이 공작정치를 하고 있잖아요. 얼마나 민주화가 된 겁니까. 대통령 비판이 얼마나 자유롭습니까.”

▼정권 조져야 신문 팔려▼

―김대중 대통령도 결국 정치 지도자 중 한 명이고 권력의 속성이란 건 어느 정권에서나 마찬가지 아닐까요. 그런 점에서 보면 교수님이 정권교체의 당위성을 지나치게 강조한 것 아니냐는 생각도 드는데요.

“저는 두 가지 측면을 혼동한다고 보는데요. 임지현 교수님이 말한 일상적 파시즘과 통하는 문제이기도 합니다. 진보나 극우나. 한겨레신문 기자들과 조선일보 기자들의 일상적인 행태는 다를 게 없어요. 그걸 깨야 한다는 임교수의 선의를 이해합니다. 마찬가지로 행태로 보면 여당이나 야당이나, 군사독재정권에 몸담았던 사람이나 민주화투쟁하던 사람이나 똑같다는 거죠. 정권교체의 의미가 없다, 김대중 정권에 실망했다고 말하는 것은 바로 그 행태에 초점을 맞춘 겁니다. 뭐가 달라진 게 있냐. 예전의 그놈이나 지금의 이놈이나 똑같다는 얘기거든요. 그런데 조선일보 기자와 한겨레신문 기자의 일상적인 행태가 같다고 해서 어떻게 두 신문이 같다고 이야기할 수 있겠어요. 권력을 향한 질주, 권력에 대한 욕심, 권력을 잡기 위한 권모술수, 그건 똑같다는 거죠. 그런데 이데올로기는 별개로 존재하는 거라고요.

장원(전 녹색연합 사무총장)이 아무리 깽판치고 못된 짓하고 일상적인 삶에선 다른 모습을 보였어도 그가 가진 이데올로기에 대한 평가는 별개로 해줘야죠. 실망스러운 점이 드러났다고 모든 걸 부정하려 들면 한국사회에서 개혁은 100년, 200년이 가도 안 됩니다. (정권 교체의) 의미 퇴색은 당연하다고 보는데, 솔직한 얘기로 당장 저부터라도 김대중 정권에 대해 분통을 터트릴 때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달라집니다. 그런데 지금 영남 시장이 훨씬 더 크고 민심의 대세가 지역주의로 가니까 (정권을) 조져야 신문이 팔리지 않겠어요. 현 정권이 실망스러운 건 분명하지만 국민들이 느끼는 체감도는 사회의 여론을 좌지우지하는 신문 논조에 따라 달라지거든요. TV의 정권홍보, 그건 별 효과도 없어요. 아주 미련한 수법을 쓰고 있죠. 뭐 하러 노조 반대를 무릅쓰고 해요. 무슨 효과가 있다고.”

―김대중 정권이 가진 개혁성보다는 지역주의 문제와 맞물린 역사의 보상 측면에 더 의미를 부여한 건 아닌가요?

“역사에 대한 보상이 문제가 아니고요. 김대중을 포함해서 과거에 민주화투쟁했던 사람들이 강도질하다가 감옥 가서 시련을 겪은 건 아니잖습니까. 제가 말하는 보상은 그쪽이 도덕성 면에서 우위에 있다는 것을 전제로 한 거죠. 당했으니까 보상해줘야 된다, 그런 식으로 격하하면 안 되죠.”

―현 정권이 도덕적 우월성을 갖고 있다는 거죠?

“있죠. 민주화투쟁한 사람들이 내부적으로 개판 치고 과거에 야당할 때 불미스러운 모습을 보이긴 했어도, 군사독재 정권의 도덕성보다는 낫지 않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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