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방형남/아버지와 아들

  • 입력 2000년 8월 31일 18시 32분


아버지와 이름이 똑같은 두 사람이 차기 미국 대통령이 되기 위해 엎치락뒤치락하고 있다. 공화당 후보인 조지 W 부시와 민주당 후보인 앨 고어가 바로 그들이다. 부시 후보의 아버지는 대통령을 지낸 조지 부시이고 고어 후보의 아버지는 오랜 상원의원 경력을 자랑하는 앨 고어. 두 명의 아버지가 모두 미 전국에 잘 알려진 명사인데다 똑같이 아들에게 자신의 이름을 물려줬기 때문에 부시와 고어의 대결은 아들끼리의 싸움이 아니라 ‘두 부자(父子)의 대결’이라고 할 만하다.

먼저 부시 후보. 그는 8월3일 후보수락 연설을 하면서 “아버지는 내가 아는 분 중에서 가장 기품 있는 분”이라며 청중석에 앉아 있는 부시 전대통령을 기렸다. 유일 초강대국 미국의 대통령을 지낸 아버지를 향해 대통령의 자리를 반쯤 거머쥔 아들이 보내는 찬사! 야망이 있는 사람이라면 한번쯤 꿈꿔 보고 싶은 감동적인 장면이었다.

쉽게 추측할 수 있는 대로 아들 부시가 대통령이 되고자 결심한 것은 아버지 부시의 영향 때문이다. 부시 후보는 “내가 물려받은 유산은 바로 나의 한 부분”이라는 말로 정치인 집안의 내력이 자신을 대선에 나서게 했다고 고백했다. 학창시절 정치에 무관심했던 그에게 정치에 대한 매력이 모락모락 생긴 것도 선거에 출마한 아버지의 유세를 도울 때였다.

가문의 전통을 이으려는 부시 후보의 특징은 충성(loyalty)이다. 아버지에 대한 충성은 물론이고 친구에 대한 충성도 각별하다. 그의 고위 참모 대부분은 수년 이상 우정을 쌓은 친구들이다. 그가 딕 체니를 부통령 후보로 결정한 것도 아버지 밑에서 국방장관을 지냈다는 충성 관계에서 비롯된다.

부시 후보의 충성은 국가에 대한 봉사라는 목표로 표출된다. 그는 “사람이 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일은 공공봉사라는 가르침을 조상들로부터 물려받았다”고 말한다.

다음은 고어 후보. 그는 “죽기 전에 아들이 대통령으로 선출되는 것을 보고 싶다”는 말을 되뇌던 저명한 상원의원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래서인지 고어는 어려서부터 반듯하게 자랐다. 사려 깊고 똑똑하고 진지하고 모범적이고…. 그에 대한 평가는 어릴 때부터 항상 긍정적이었다. 오죽하면 그의 고교 졸업앨범에 ‘약점이 없는 사람은 끔찍하다’라는 프랑스 작가 아나톨 프랑스의 경구를 적어 넣은 동급생이 있었을까.

고어는 아버지의 뜻을 받들어 훌륭한 대통령이 되기 위한 평생의 수업을 계속했다. 그는 88년 민주당 대선후보지명전에 나섰다가 실패하자 곧바로 공부를 시작했다. 많은 전문가를초빙해 무엇을 잘못했는지, 모르는 것은 무엇인지, 하지 못한 것은 무엇인지를 점검한 그는약점을 보충하기 위한 집중 수업에 돌입했다. 이런 노력 덕분에 그는 지구온난화 정보화 등 어려운 분야에서도 석학 수준의 식견을 지닌 정치인으로 성장했다.

주지사 경력 6년이 공직 경력의 전부인 부시를 토끼라고 한다면 부통령 상원의원 하원의원을 각각 8년씩 역임한 고어는 거북이라고 할 수 있다.

과연 누가 이길까. 부전자전(父傳子傳)이라고 했다. 아버지의 능력이 이미 검증됐기 때문에 그들을 닮은 아들이라면 누가 이기든 괜찮은 대통령이 되리라고 기대할 만하지 않은가.

방형남<국제부장>hnbh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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