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이종수]인수위가 할 일과 말아야 할 일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12월 2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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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수 연세대 교수·행정학
이종수 연세대 교수·행정학
인수위원회는 미래의 권력이 현재의 권력을 대체하는 길목에 존재한다. 공약이 정책으로 전환되고, 정치가 행정으로 구체화되며, 희망이 현실로 변화하는 바로 그 지점이다. 법률이 규정하는 대통령직인수위원회의 역할은 크게 두 가지다.

공약 우선순위 따라 가지치기를

첫째, 기존 정부의 조직과 기능, 예산 현황을 파악하는 일이다. 여기에 ‘현장주의’를 접목할 것을 권하고 싶다. 인수위 사무실로 부처를 불러 설명을 듣다 보면 각 부처는 프레젠테이션 대표선수를 보내 좋은 말만 쏟아놓기 일쑤다. 부처를 방문해 설명을 듣고, 자료를 확인하며, 면담을 예상하지 않고 있었던 직원도 부르고, 부처의 복도와 식당에서 지나가는 직원들 표정에서도 부처 분위기를 읽을 수 있을 것이다. 분과별로 15부 2처 18청을 방문하면, 3주일 내에 완료할 수 있는 일이다.

그리고 조직개편은 최소화해야 한다. 자고로 로마시대 이후 새 정권은 조직개편을 좋아했다. 국민에게 일을 하고 있다는 인상을 주기에 효과적인 전략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미 세종시 이전으로 비용, 업무처리, 심리적 측면에서 부담이 큰 상태다. 정책의 지나친 단절 또한 주의해야 한다. 차별성을 위해 필요 이상으로 정책을 단절시키면 국가적 낭비가 크고 일선 관료와 국민들의 혼선이 커진다. 충북 단양의 이장 한 분은 현장에서 제일 힘든 것이 정부를 상대하는 일이라고 했다. “군청 공무원은 2년에 한 번, 군수는 4년에 한 번, 대통령은 5년에 한 번 바뀌면 정책이 춤을 추는데, 대처가 불가능할 정도”라던 말을 잊을 수 없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새 정부의 정책기조를 세우는 일이다. 인수위는 당선인 공약을 검토해 우선순위 및 상호 연관성을 분석하고 가지치기를 해야 한다. 박근혜 당선인은 20개 분야에 200개 공약을 내놓았다. 표를 얻기 위해 웬만하면 해주겠다고 약속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인수위는 실현 가능성이란 측면에서 새롭게 공약을 정리해 차기 정부의 부담을 덜어주어야 한다.

당선인으로 하여금 ‘상징에 의한 정치’를 할 수 있도록 보좌를 하되, 인수위 스스로가 지나치게 작은 정책을 시시콜콜 거론하고 공표하는 것은 삼가야 한다. 이명박 당선인 인수위가 ‘오뤤지’ 발언으로 곤욕을 치르고, 언론인 성향을 분석하거나 통신료를 낮추겠다는 발언으로 비판을 자초했던 전례를 상기하는 게 좋다.

여기에 박근혜 당선인 인수위는 새 정부를 상징할 비전과 캐치프레이즈를 정립하는 것이 요구된다. 이번 대선은 미래경쟁이 아니라 ‘진영’ 싸움으로 치러졌다. 우리가 어떤 공동체를 지향해야 할지, 미래를 성찰하는 노력이 부족했다. 이 비전과 희망을 잘 정리해 작명을 하면 정부의 대국민 수용성을 높이고, 전체 정부의 정책을 통합하는 데도 도움이 될 것이다.

불필요한 혼란 일으키지 말아야

마지막으로 현재 큰 화두인 대통합에 인수위가 모범을 보여줘야 한다. 과반의 당선에 도취될 것이 아니라, 역대 가장 크게 결집된 48%의 반대세력을 포용할 가능성을 보여줘야 한다. 야당의 유사한 공약을 수용하고, 당선인의 개인적 소통을 넘어서는 ‘사회적 소통’의 틀을 짜서 인수위가 먼저 모범을 보이는 게 좋다.

정권이 야당으로 교체된 것이 아니기 때문에 박근혜 정부의 인수위 활동은 대체로 수월할 것이다. 논공행상 다툼이나 점령군 소리를 듣는 일 없이 좋은 선례를 남기기를 기대한다. 2009년 미국의 버락 오바마 당선인은 ‘미국에는 하나의 정부, 한 명의 대통령이 존재할 뿐’이라고 선언해 박수를 받았다. 현실적인 권한과 책임은 아직 기존 대통령에게 있는데, 불필요한 권력의 혼란과 누수를 일으키지 않겠다는 입장을 분명히 한 것이다. 인수위는 겨울의 한가운데에 탄생하여, 봄기운이 시작되는 시점에 해산한다. 차가운 겨울 공기를 걷어내고, 훈훈한 봄기운을 우리 사회에 가득 퍼지게 하기 바란다.

이종수 연세대 교수·행정학
#인수위원회#박근혜#공약#예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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