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거해 버리기엔 너무 예술적인… 서귀포 ‘카사 델 아구아’ 한달내 사라질 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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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8월 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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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적 건축가 리카르도 레고레타 유작

멕시코의 거장 리카르도 레고레타의 유작 ‘카사 델 아구아 갤러리’ 내부. 벽에 걸어놓은 그림이 돋보이도록 외부 빛을 차단하고 벽면을 흰색으로 칠하는 다른 갤러리들과 달리 창을 내고 천장을 분홍색으로 칠해 자연광과 외부 풍경을 내부로 끌어들여 감상의 대상이 되도록 설계했다. 빛의 이동에 따라 내부의 풍경도 변화한다. 동아일보DB
멕시코의 거장 리카르도 레고레타의 유작 ‘카사 델 아구아 갤러리’ 내부. 벽에 걸어놓은 그림이 돋보이도록 외부 빛을 차단하고 벽면을 흰색으로 칠하는 다른 갤러리들과 달리 창을 내고 천장을 분홍색으로 칠해 자연광과 외부 풍경을 내부로 끌어들여 감상의 대상이 되도록 설계했다. 빛의 이동에 따라 내부의 풍경도 변화한다. 동아일보DB
2008년 10월 ‘카사 델 아구아 갤러리’의 건설현장을 둘러보러 내한했던 리카르도 레고레타.
2008년 10월 ‘카사 델 아구아 갤러리’의 건설현장을 둘러보러 내한했던 리카르도 레고레타.
멕시코가 낳은 세계적인 건축가 리카르도 레고레타(1931∼2011). 세계건축가연맹 금상 수상자(1999년)이자 프리츠커 건축상 심사위원을 지낸 그는 2009년 3월 제주 서귀포시 중문관광단지에 스페인어로 ‘물의 집’을 뜻하는 ‘카사 델 아구아 갤러리’를 완공해 선보였다. 레고레타는 이 건축물로 2010년 아메리칸 프로퍼티상을 받았다. 이후 다른 작품을 남기지 않고 타계해 이는 그의 유작(遺作)이 됐다.

제주 바다를 배경으로 고요히 들어선 이 레고레타의 유작을 놓고 제주도와 한국 건축 및 미술계가 들끓고 있다. 제주의 대표적 건축물 중 하나로 꼽히는 이 갤러리가 우여곡절 끝에 철거될 위기에 놓였기 때문이다.

파트리시아 에스피노사 멕시코 외교장관은 2일 김성환 외교통상부 장관에게 전화를 걸어 카사 델 아구아의 철거를 재검토해 달라고 요청했다. 주한 멕시코대사관은 이날 “카사 델 아구아는 멕시코 현대 건축의 대표작일 뿐만 아니라 한국의 문화유산이기도 하다”며 멕시코 정부의 이 같은 공식 방침을 확인했다. 이에 앞서 마르타 오르티스 데 로사스 주한 멕시코대사는 올해가 한국-멕시코 수교 50주년임을 강조하며 청와대와 정부 관련 부처, 제주도청과 서귀포시청을 찾아가 철거 중단을 요청했다.

국내 건축계와 미술계도 이 건물의 철거에 반대하고 있다. 한국건축가협회는 지난달 23일 발표한 성명에서 “카사 델 아구아 갤러리는 제주가 품고 있는 또 다른 유산임에도 경제적 이해관계에 따라 철거한다는 것은 국가의 품격까지 실추시킬 수 있는 중대한 사안”이라고 주장했다. 한국미술협회도 지난달 성명을 발표하고 “아시아에는 일본과 한국 두 곳에 레고레타의 건축물이 있는데 일본 작품은 개인 주택이라 내부가 공개되지 않고 있어 카사 델 아구아는 유일하게 내부가 공개되는 작품”이라며 “눈앞에 보이는 금전적 이득 때문에 세계적인 문화유산을 잃을 수는 없다”고 지적했다.

제주 서귀포시 중문동 바다가 내다보이는 곳에 자리 잡은 ‘카사 델 아구아 갤러리’. 동아일보DB
제주 서귀포시 중문동 바다가 내다보이는 곳에 자리 잡은 ‘카사 델 아구아 갤러리’. 동아일보DB
카사 델 아구아는 제주컨벤션센터 근처에 짓고 있는 앵커호텔과 콘도 분양을 위해 43억 원을 들여 2층 1279m² 규모로 지은 모델하우스 겸 갤러리다. 호텔이 완공되면 갤러리와 VIP를 위한 공간으로 활용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앵커호텔의 시공사였던 JID가 자금난으로 호텔과 콘도 용지를 부영주택에 팔면서 문제가 생겼다. 부영주택이 이 갤러리를 철거하고 그 대신 공원을 조성하기로 한 것. JID는 호텔 용지를 부영에 넘기면서 이 갤러리는 가격조건이 맞지 않아 팔지 않았다. 하지만 임시건물인 데다 존치 기간이 만료(2011년 6월 30일)돼 법적으로 철거 대상이 됐다. 제주지방법원도 지난달 25일 철거가 정당하다는 판결을 내렸다.

6일은 카사 델 아구아의 운명에 있어서 결정적인 날이다. 갤러리에서는 현재 철거에 반대하는 한국 조각가 20명이 ‘레고레타-그의 공간을 품다’라는 제목으로 철거를 막기 위한 ‘방패용’ 전시를 하고 있다. 이 전시는 6일 끝나지만 철거 소식을 들은 건축학도들의 방문이 줄을 잇는 데다 서귀포시의 철거작업을 지연시키기 위해 작가들은 이달 말까지 전시를 연장하기로 했다.

하지만 서귀포시는 다음 달 6일 개최되는 세계자연보전총회 이전에 공원을 조성할 수 있도록 카사 델 아구아의 철거를 서둘러 마치겠다는 계획이다. 오희범 서귀포시 도시건축과장은 “문제의 건축물은 중문관광단지 환경영향평가 합의 내용에 따라 건축물이 들어설 수 없는 자리에 지어진 임시건물이어서 존치 기간이 만료된 이상 법적으로 철거를 피할 방법이 없다”고 밝혔다.

이진영 기자 ecolee@donga.com
#리카르도 레고레타#카사 델 아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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