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속 2012 4·11총선]1표 비용 43만원, 국내선거의 36배… 돈만 쓰고 외면받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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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2월 1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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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외국민 선거등록 오늘 마감인데… 등록률 5% 못미쳐

재일교포 1세인 박진선 씨(88)는 지난주 도쿄에 있는 주일 한국대사관을 찾았다. 4월 총선에 투표할 수 있게 유권자 등록을 하기 위해서였다. 수도권 북부 우쓰노미야 집에서 기차를 3번씩이나 갈아타고 2시간이나 걸렸지만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생애 첫 한 표를 행사한다는 생각에 마음은 한없이 설렜다. 징병으로 끌려온 뒤 근 70년간 지켜온 대한민국 국적이 한없이 자랑스러웠다.

하지만 박 씨는 끝내 투표권을 얻지 못했다. 박 씨와 같은 ‘재외선거인’이 투표권을 행사하려면 여권을 가지고 직접 해외 공관에 등록해야 하는데 여권 기한이 만료된 상태였던 것. 여권을 새로 발급받는 데 5500엔(약 8만2500원)을 내야 한다는 말에 박 씨는 고개를 숙였다.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는 단 한 번의 투표를 위해 5500엔은 (가난한 살림에) 너무 부담스러운 돈”이라고 말했다.

○ 1표에 비용 43만 원


재외국민선거 등록률이 5%를 넘기기 힘들 것으로 보인다. 당초 우려했던 대로다.

10일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집계 따르면 이날까지 재외선거 투표에 참여하겠다고 등록한 사람은 10만5605명으로 전체 유권자(223만6800명)의 4.73%에 불과했다. 이 가운데서도 상사원이나 유학생처럼 단기적으로 해외에 거주하는 국외부재자가 아닌 영주권자와 같은 순수 재외선거인의 등록률은 1.93%였다. 등록 마감일이 11일이지만 이날이 토요일임을 감안하면 큰 변화를 기대하기는 힘든 상황이다.

선관위는 재외국민 투표율은 등록률의 60% 수준에 머물 것으로 내다봤다. 재외국민 전체 유권자 223만여 명 중 6만7000여 명만이 투표에 참여할 것이란 얘기다. 재외국민의 참정권 확대라는 취지가 무색할 정도다.

이번 재외선거에는 지난해 쓴 80억 원을 포함해 293억 원이 들어간다. 선거물품을 해외 공관으로 보내고 투표함을 다시 국내로 들여오는 데 많은 비용이 들기 때문이다. 6만7000명이 투표하면 1표를 위해 들인 예산만 43만 원을 넘는다. 국내 1표당 투입 예산(1만2000원)의 36배다.

○ 번거로운 절차와 낮은 관심도

재외국민선거가 ‘무늬만 선거’로 전락할 것이란 우려는 오래전부터 제기돼 왔다. 한 표를 행사하기 위해 감수해야 하는 번거로운 절차 때문이다. 부재자의 경우는 우편으로 신청하고 투표 당일에만 공관에 가면 되지만 재외선거인은 공관을 먼저 방문해 등록을 하고, 투표 당일 또 공관에 가야 한다. 미국, 일본, 중국의 경우 등록 신청을 받는 해외 공관은 각각 12, 10, 9개에 불과하다.

미 워싱턴 인근 버지니아 주의 한인 밀집지역인 센터빌에 살고 있는 C 씨는 재외국민 선거 등록을 포기했다. 차로 1시간 거리인 워싱턴 총영사관까지 두 번씩이나 다녀오는 게 부담스러웠기 때문. C 씨는 “재외선거인은 지역구 국회의원 투표는 하지 못하고 비례대표를 뽑는 정당투표만 할 수 있는데 이틀을 낭비하면서까지 투표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그는 “나처럼 가까운 거리에 있는 사람도 등록을 하지 않는데 총영사관에서 3∼4시간씩 걸리는 사람들은 생업을 포기하면서까지 누가 투표하러 두 번이나 영사관을 찾겠느냐”고 물었다. 선거일이 해외에서는 평일인 점도 적지 않은 장애물이다.

낮은 관심도도 저조한 등록률의 원인이다. 재외국민선거로 인해 일부 교민들 사이에서 지역, 정파 갈등이 생기는 등 부작용이 빚어지고 있지만 대다수 평범한 교민은 아예 무관심한 상태다. 일본의 경우 재일교포 3세 이하로 내려가면 재외선거 실시 자체를 아예 모르는 사례가 적지 않다. 그나마 현재의 등록률은 현지 공관원과 한인단체 간부들이 업무를 제쳐놓고 뛰어다니며 교민들을 독려해 끌어올린 결과물이다. 전체 유권자 3만2093명 중 17.91%인 5749명(10일 오전 8시 현재)이 등록을 마쳐 세계 공관 중 등록률 1위를 차지한 중국 상하이의 경우 한인회를 비롯해 인근 19개 지역한국상회와 상하이 총영사관이 긴밀히 협력했다는 게 상하이 총영사관에 파견된 중앙선관위 박경우 선거관의 설명이다. 등록률이 16.01%로 높게 나타난 프랑스도 공관 직원들이 한인단체, 종교단체, 기업체 등을 대상으로 선거등록 캠페인을 벌였다.

주일 한국대사관의 김기봉 참사관은 “영주권자보다 유학생이나 해외상사 주재원이 많고, 유권자들이 상대적으로 한 지역에 밀집돼 있는 경우 투표 신청률이 상대적으로 높은 편”이라며 “일본이나 미국처럼 영주권자가 많고 널리 퍼져 있는 나라는 등록률이 저조하다”고 설명했다.

○ 당리당략이 초래한 ‘무늬만 선거’

저조한 투표율은 각 정당이 첫 해외국민투표라는 대의보다 당리당략에 따라 움직였기 때문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실제로 선관위는 재외국민의 투표율을 높이기 위해 지난해 4월 공관 직원들이 먼 지역을 돌아다니며 재외선거 등록 신청을 받자는 내용의 공직선거법 개정 의견을 냈다. 2010년 10월에는 당시 한나라당 안상수 대표도 공관을 직접 방문하지 않고 우편이나 인터넷을 통해 등록 신청이 가능하도록 하는 법 개정안을 냈다. 하지만 민주당(현 민주통합당)이 반대하면서 법 개정은 이뤄지지 않았다. 당시만 해도 재외국민선거의 투표율이 높으면 여당에 유리할 것으로 판단했던 것이다.

선관위가 제안한 ‘제한적 우편투표 도입’도 무산됐다. 재외공관이 없어 투표를 할 수 없는 지역이나 파병군인들의 편의를 봐주자는 취지였으나 투표의 공정성이 문제가 됐다. 이 때문에 대만에 거주하는 재외국민 6500명을 포함해 8000여 명은 아예 투표권을 박탈당했다. 결국 여야가 쉽게 투표할 수 있는 방법은 막아 놓고 애꿎은 교포사회만 들쑤셔 놓았다는 지적에 대해 정치권은 아무 할 말이 없게 됐다. 새누리당은 재외국민의 표심을 잡기 위해 2010년 재외국민협력위원회를 만드는 등 4개 단체가 활동하고 있으며, 민주통합당도 세계한인민주회의가 구성돼 있다.

도쿄=김창원 특파원 changkim@donga.com  
베이징=이헌진 특파원 mungchii@donga.com  
워싱턴=최영해 특파원 yhchoi6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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