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순일의 ‘내사랑 스포츠’] “그러다 두리에게 한방 맞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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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11월 8일 11시 3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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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출신의 축구스타 에릭 칸토나. 그는 선수로 뛰던 시절 '영국인이 사랑하는 유일한 프랑스인'이라고 불릴 정도로 잉글랜드 프로축구 프리미어리그에서 맹활약을 했다.

칸토나는 1990년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전성기를 이끌었다. 등번호 7번에 유니폼의 깃을 세운 카리스마 넘치는 모습의 그는 '유나이티드의 신(神)'으로 불리며 영국 축구팬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았다.

그랬던 그가 2주간 감옥에 갇히는 실형까지 받으며 팬들로부터 지탄을 받은 이유는 야유를 퍼붓는 한 관중을 향해 일명 '쿵푸킥'으로 불리는 이단 옆차기를 날렸기 때문이다.

사건은 1995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대 크리스털 팰리스의 경기 중에 발생했다. 이날 칸토나는 상대 선수의 거친 플레이에 대응해 고의성 짙은 보복성 반칙을 저질러 퇴장을 당하게 된다.

그런데 크리스털 팰리스의 한 팬(매튜 시몬스로 밝혀짐)이 운동장을 걸어 나가는 칸토나를 향해 뭐라고 소리를 질렀고, 이를 들은 칸토나가 광고판을 뛰어넘어 이단 옆차기를 정통으로 날린 것.

충격의 이 장면을 본 팬들은 처음에는 칸토나를 비난했고, 결국 2주간 감옥에 갇히는 실형을 선고받았으며, 120시간의 사회봉사 활동, 9개월의 출장 정지를 당했다.

하지만 나중에 그 팬이 칸토나에게 한 말이 칸토나의 부모님을 욕한 것이라는 사실이 알려지자 영국 팬들의 여론은 오히려 칸토나에게 동정적으로 흘렀다.

셀틱에서 뛰고 있는 기성용.
셀틱에서 뛰고 있는 기성용.
결국 출장 정지가 끝난 칸토나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로 복귀해 팀의 프리미어리그와 FA컵 우승을 이끈 뒤 화려하게 은퇴를 했다.

칸토나는 그의 '쿵푸킥'이 문제가 됐을 때 "어떤 야유도 참을 수 있지만, 조국 프랑스와 부모님을 욕하는 것은 참을 수 없었다"는 요지의 발언을 해 프랑스 뿐 아니라 영국 팬들로부터도 지지를 받았다.

지난 1일 스코틀랜드 프로축구 셀틱에서 뛰고 있는 차두리가 자신의 개인 블로그에 "전날 세인트 존스턴과의 경기에서 기성용이 볼을 잡자 상대방 팬들이 일제히 우우 원숭이 소리를 냈다"고 올렸다.

차두리는 "TV로만 보고 얘기로만 듣던 그런 몰상식한 일이 바로 내가 너무나 아끼는 후배에게 일어났다"며 "저녁을 먹는 자리에서 감독님도 그 얘기를 꺼내셨고, 월요일 날 언론에 인터뷰를 하겠다고 했다"고 덧붙였다.

이날 셀틱은 세인트 존스턴에 3대0의 완승을 거뒀다. 차두리는 "첫 도움을 기록하고 나름 기분이 좋아야 되는 하루였다. 그러나 경기 막판에 너무나 기분 나쁘고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드는 일이 생겼다"며 씁쓸함을 감추지 못했다.

야유의 대상이 됐던 기성용은 자신의 트위터에 "인종차별 기사가 떴네요. 정작 본인은 아무 소리 못 듣고, …이런 무감각 돋네"라고 써 크게 신경 쓰지 않는 모습을 보였다.

물론 "박, 박 네가 어디 있어도, 너희 나라에서는 개를 먹지! 그러나 빈민가 주택가에서 쥐를 잡아먹는 리버풀 애들은 최악이지"라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박지성 응원가, 일명 '개고기 송'이 처음 나왔을 때도 말이 많았다.

처음에는 한국의 개고기 식문화를 비꼰 게 아니냐는 비판도 있었지만 맨체스터 팬들이 라이벌로 여기는 리버풀을 압도하기 위해 만든 애교 섞인 단순한 응원가라는 점에서 한국 축구팬들도 이해를 했다.

하지만 이번 사건은 독일에서 태어나고 자라 국제 감각을 갖춘 차두리가 '인종 차별적 발언이 분명하다'고 지적한 것이어서 파문이 컸다.

셀틱의 닐 레논 감독도 정식 항의 의사를 밝혔고, 세인트 존스턴 구단도 "매우 극소수의 행동이지만 이 문제에 대해 경찰 및 경호업체를 대동해 조사를 할 것"이라며 결코 좌시하지 않겠다는 뜻을 밝혔다.

국제축구연맹(FIFA)은 2006년 인종 차별에 대한 징계 수위를 높이는 등 이 문제에 대해 각별히 신경을 쓰고 있다.

그러나 이에 앞서 앞으로 자꾸 이런 인종 차별적 야유를 하다 불의를 못 참는 '차미네이터' 차두리에게 이단 옆차기를 맞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맞아도 어디 하소연할 곳도 없을 것이다. 전 세계 대부분의 축구팬들이 인종 차별적 발언을 하는 자에 대해서는 일말의 동정도 하지 않기 때문이다.

권순일 기자 stt77@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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