檢 미묘한 온도차…말못할 갈등 있나

  • 입력 2006년 5월 3일 03시 01분


정상명 검찰총장이 경제사건 수사를 자제하도록 당부한 이유는 무엇일까. 검찰 안팎에서 이에 대한 미묘한 기류가 감지되고 있다. 2일 ‘자금세탁 수사 및 범죄이익 환수 전담반’ 현판식에서 박수를 치고 있는 정 총장. 연합뉴스
정상명 검찰총장이 경제사건 수사를 자제하도록 당부한 이유는 무엇일까. 검찰 안팎에서 이에 대한 미묘한 기류가 감지되고 있다. 2일 ‘자금세탁 수사 및 범죄이익 환수 전담반’ 현판식에서 박수를 치고 있는 정 총장. 연합뉴스
정상명(鄭相明) 검찰총장이 1일 ‘경제사건 수사 확대와 기획수사 자제’를 당부했다. 정몽구(鄭夢九) 현대·기아자동차그룹 회장이 구속된 지 사흘 만이다.

얼핏 보면 검찰의 분위기가 ‘냉탕’에서 갑자기 ‘온탕’으로 바뀐 것 같다. 대기업 법무팀들은 “어리둥절하다. 검찰 내부에 무슨 속사정이 있는 것이냐”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검찰 일부에서는 정 총장의 ‘유화’ 발언이 정 회장 구속을 둘러싼 검찰 내부의 미묘한 상황을 반영하고 있다는 말도 나온다.

대검찰청 중앙수사부의 현대차 비자금 사건 수사팀은 3월 26일 현대차 본사 등에 대한 압수수색 이후 한 달간 ‘초강경’ 기조를 유지했다. 대대적인 압수수색과 함께 현대차 관계자에 대한 소환 조사가 줄줄이 이어졌다.

4월 20일 정 회장의 아들인 정의선(鄭義宣) 기아차 사장 소환 직후 수사팀 기류는 더욱 강경해졌다. 정 사장이 비자금 조성 사실에 대해 일절 ‘모르쇠’로 일관했기 때문이다.

이후 정 회장 소환 조사가 이뤄진 4월 24일까지 채동욱(蔡東旭) 중수부 수사기획관은 정 회장에 대한 구속 영장 청구 방침을 기정사실화했다.

“아들이 대신 총대 멘다고 아버지 죄를 다 뒤집어쓸 수 있나.”

“나라가 망한다면 검찰이 욕먹어야겠지만 그럴 것 같지도 않다.”

수사팀은 당초 25일 정 회장 조사 결과를 정 총장에게 보고하려다 내부사정을 들어 하루 늦췄다. 그날 밤 수사팀의 저녁 식사 자리에서 격론이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다음 날 채 기획관은 “(둘 중 누구를 구속할지) 총장이 고심 중이다”며 “오늘 결론내야 한다는 것이 수사팀의 인식”이라고 말했다. 총장의 결단을 압박하는 듯한 뉘앙스가 담겨 있었다.

그날 오후 7시경 갑자기 채 기획관은 기자간담회를 자청해 “총장이 결심했다”고 발표했다. 결심 내용은 공개하지 않은 채 “수사팀과 총장 간 이견은 없다”는 말만 덧붙였다. 정 총장도 퇴근길에 “수사팀과 이견은 없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실제 분위기는 그렇지 않았다. ‘이견’이 있었다는 것.

당초 정 총장 등 검찰 지휘부의 뜻은 정 회장보다는 정 사장을 구속하는 선에서 마무리하자는 것이었다.

정 총장은 각계 인사들의 의견을 수렴했다. 외부 인사들뿐 아니라 검찰 간부들 중 상당수도 정 회장 구속에 신중하자는 의견을 낸 것으로 알려졌다. 경제 환경이 악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파장이 만만치 않을 것이라는 우려 때문이었다.

정 총장은 지난달 중순 내부 회의에서도 현대차 수사를 직접 언급하진 않았지만 기업 수사에 대해 신중하라는 의견을 제시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일선 지검에선 기업 관련 수사를 서둘러 마무리하거나 새로운 사건 수사 착수를 보류하는 분위기가 감지됐다.

현대차 수사팀이 연일 정 회장 구속 이외에 다른 대안이 없다는 식의 강경 발언을 쏟아낸 것도 이 같은 내부 기류에 대한 반발의 성격이 있다는 분석이다.

특히 정 회장 구속 영장 청구 직전 중수부장 주재로 열린 회의에서는 격한 이야기들이 나왔던 것으로 알려졌다.

박영수(朴英洙) 중수부장은 이 같은 상황과 분위기를 급히 정 총장에게 전달했다고 한다. 이어 정 총장의 결단이 내려졌다.

이후 검찰의 일부 중견간부 사이에서 “수사팀이 총장을 너무 외통수로 몰아넣은 것 아니냐”는 얘기도 한다.

정 총장이 ‘경제사건 수사 자제’를 당부한 다음 날인 2일 채 기획관은 “총장 말씀이 현대차 사건에는 영향이 없다”며 “우리는 우리 일정대로 간다”고 말했다.

조용우 기자 woogij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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