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核 후속회담 필요없다”]벼랑끝 전술로 ‘美양보’ 압박

  • 입력 2003년 8월 31일 18시 3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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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징(北京) 6자회담이 끝난 뒤 나온 북한의 목소리엔 불만이 가득 차 있다.

김영일 수석대표를 비롯한 북한 대표단은 지난달 30일 베이징공항을 떠나기 전 “이런 종류의 회담은 필요 없다”고 주장했고 북한 외무성대변인은 핵 억제력을 강화해 나갈 것임을 예고했다.

이는 중국이 주최국 요약발표문을 통해 참가국들이 2차 회담 개최에 합의했고 미국과 북한이 핵문제 해결을 위한 조치를 단계적으로 동시에 병행키로 했다고 밝힌 것과는 대비된다.

북한이 다른 참가국들의 긍정적 평가와 대비되는 반응을 보인 것에 대해 전문가들은 대체로 다음 회담에서 유리한 입지를 확보하기 위한 사전 정지작업일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무엇보다도 북한은 그들이 제시한 핵문제 해결의 동시이행 방안에 대해 미국이 관심을 보이지 않자 미국과의 기(氣) 싸움에서 밀리면 안 된다는 절박한 인식에 사로잡혀 일단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을 수 있다는 것이다.

북한은 또 핵문제에 관해 전략적으로 모호한 태도를 취하는 것이 유리하다는 판단을 내렸을 개연성이 있다. 외무성 대변인 담화를 자세히 보면 북한은 핵 억제력을 보유하겠다고 명시적으로 밝힌 것은 아님을 알 수 있다.

이 담화는 “핵 억제력을 강화해 나가는 외에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다는 것을 더욱 확신하게 하고 있다”고 모호하게 표현했다. 이는 다른 나라들로 하여금 북한의 핵 억제력 보유 움직임에 관해 혼란을 느끼도록 만든 뒤 다음 회담이 열리면 “우리가 언제 그렇게 말했느냐”며 발을 빼는 수법으로 협상을 유리하게 이끌려는 의도일 수 있다.

일각에선 북한이 이번 회담에서 협의한 내용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을 것으로 보기도 한다. 이수혁(李秀赫) 외교통상부 차관보는 “북한은 미국이 동시이행안에 반대한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 같으나 이는 잘못 알고 있는 것”이라고 평가했다. 이 차관보의 설명대로라면 북한의 강경한 반응은 오해에서 비롯된 것일 수 있다.

한편 북한이 미국의 강경한 태도에 좌절감을 느낀 나머지 6자회담이 자국에 유리하게 전개될 가능성이 없다고 판단해 실제로 회담무용론을 들고 나왔을 것으로 보는 시각도 없지 않다.

북한의 진정한 의도를 알긴 어렵지만 언제나 ‘벼랑 끝 전술’을 고집하는 그들의 태도는 앞으로의 협상에서 오히려 역효과를 낼 수도 있다.

미국의 강경파들이 6자회담에 대한 북한의 부정적 태도를 근거로 북한과의 대화무용론을 들고 나올 경우 북한이 체감할 위협 수위는 지금보다 현저히 높아질 가능성이 크다.김영식기자 spear@donga.com

▼美 “北核 평화적 해결 공감대”▼

북핵 해결을 위한 베이징(北京) 6자회담이 지난달 29일 폐막된 뒤 미국 일본 중국 러시아 등 회담에 참가한 한반도 주변 4강은 최초로 시도된 6자회담의 틀이 유익했다고 평가하면서 이 틀의 지속을 강조했다.

▽미국=미 국무부는 베이징 6자회담으로 북핵 문제의 평화적 해결에 진전을 이룰 수 있다는 공감대가 형성된 것을 기쁘게 생각한다고 29일 성명을 통해 밝혔다.

국무부는 북한의 ‘핵보유국 선언’ 발언과 관련해 북한이 핵무기를 갖고 있다는 것을 분명히 인정한 것이라고 평가했다.

그러나 국무부는 북한은 도발적인 성명을 발표한 오랜 역사를 갖고 있다면서 “북한의 핵 관련 언급은 놀랄 일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이어 국무부는 “미국은 협박이나 공갈에 대응하지 않을 것이며 우방들과 함께 계속 북한이 고립에서 벗어나 국제사회에 참여하는 길을 걷도록 권고하겠다”고 밝혔다.

국무부는 이번 회담에서 미국의 목표는 북한 핵 프로그램과 핵무기의 완전하고 입증 가능하며 돌이킬 수 없는 종식이라는 점을 강조했다면서 모든 참가국들이 한반도 비핵화와 다자간 협의를 위해 공동의 헌신을 할 것임을 밝혔다고 덧붙였다.

특히 국무부는 “다자간 협의의 이점 가운데 하나는 북한이 상대방에 혼란스러운 메시지를 보낼 수 없다는 것”이라고 지적하고 “모든 참가국들이 같은 것을 들었고 우리는 그로부터 결론을 내릴 수 있었다”고 밝혔다.

▽일본=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총리는 29일 “북한이 애초에는 거부했다가 (나중에 응해) 다자간 협의가 시작됐던 만큼 좋은 방향으로 결실을 봤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후쿠다 야스오(福田康夫) 관방장관도 기자회견에서 “관계국들이 모여 협의한 것은 획기적인 일”이라며 “핵문제, 역내 평화와 안정문제를 관계국들이 같은 테이블에서 논의한 것은 평가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아베 신조(安倍晋三) 관방 부장관은 31일 TV 인터뷰에서 일본인 납치 문제와 관련해 “북한이 장애물을 치울 경우 수십억달러의 재정 지원을 받게 될 것이지만 진전이 없을 경우 지원 문제를 진전시킬 수 없다”고 경고했다.

▽중국=북한은 30일 6자회담이 무익했다고 평가했지만 중국 정부는 회담 참가국들을 향해 “대화를 지속해 나가야 한다”고 촉구했다.

중국 외교부는 이날 “북핵 문제가 대화를 통해 해결될 수 있도록 모든 관련 당사국들이 계속 노력하고 회담을 지속시켜야 한다”고 밝혔다고 AFP통신이 전했다.

외교부는 “이번 회담에서 당사국들은 많은 문제들에 인식을 함께했고 의견이 일치하지 않는 부분도 많았지만 이는 매우 정상적”이라며 “북핵 문제는 매우 복잡해 한두 달 안에 해결되지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러시아=러시아측 수석대표로 회담에 참석했던 알렉산드르 로슈코프 외무차관은 31일 베이징을 떠나기 직전에 “이번 회담은 매우 의미있고, 도움이 되는 것이었다”고 평가했다고 AFP통신이 보도했다.

이날 참가한 대표들 가운데 가장 마지막으로 출국한 로슈코프 차관은 “6개국이 의견을 교환하고 자신들의 입장을 설명한 것은 매우 의미있었다”면서 “오직 대화를 통해서만 한반도 비핵화와 각 당사국의 이익이 보장될 수 있다”고 말했다고 통신은 전했다.

러시아 외무부는 이에 앞서 29일 성명을 통해 이번 회담이 상호 이해에 유익했다고 평가하며 이 지역의 안정과 평화를 위한 모든 당사국들의 이해 속에서 회담이 건설적으로 계속되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밝혔다.

워싱턴=권순택특파원 maypole@donga.com

곽민영기자 havefun@donga.com

▼NYT "북핵사태 악화될 수도"▼

중국 베이징(北京) 6자회담을 통해 향후 2개월 내 북핵 문제를 추가 논의키로 했으나 그 사이 북한이 핵실험을 벌이거나 미국이 대북 경제제재에 나설 경우 사태가 악화될 수도 있다고 뉴욕 타임스가 31일 보도했다.

타임스는 “추후 회담에 관심이 없다”는 북한 대표단원의 언급과 “이번 회담을 통해 핵억제력을 보유하는 것 이외에 대안이 없음을 알게 됐다”는 북한 관영통신의 보도를 언급하면서 이것이 북한의 상투적인 과장 전략이라는 분석도 있지만 일부에서는 심각한 우려를 제기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회담에 깊이 관여한 한 아시아 국가 고위 관리는 “미국은 북한이 핵실험을 벌이거나 앞으로 2개월간 사태 진전이 없을 경우 추후 어떤 회담에도 관심이 없음을 우리에게 밝히고 있다”고 전했다.

이 관리는 또 “김정일(북한 국방위원장)은 미국이 이라크에 정신이 팔려 있다고 보고 지금이 핵보유를 명백히 할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믿을 위험도 크다”고 밝혔다.

미국의 입장도 강경해 조지 W 부시 대통령의 보좌진은 북한이 핵실험을 벌이거나 미사일을 시험발사할 경우에 대비해 북한의 미사일 및 마약 운반선을 저지하는 한정된 군사전략을 펴는 것을 재검토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후속 회담에 북한이 거부 반응을 보인 것은 회담 성과를 자찬한 중국의 얼굴에 일격을 가한 것(major slap in the face to china)이라고 분석가들은 지적했다.

김정안기자 cred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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