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데뷔시절]이영범, 단역 10년만에 '한지붕…'서 햇살

입력 2001-09-12 18:32수정 2009-09-19 08: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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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1982년 공채 15기로 MBC 탤런트가 됐다. 조형기 최상훈 맹상훈 차주옥 등이 입사동기였다.

중 고교 때까지만 해도 신문기자를 꿈꾸던 내가 연기에 눈을 뜬 것은 강원대 경영학과에 진학한 뒤 연극반에 들어가면서였다. 당시만 해도 연극반 학생들에게 연극 무대를 포기하고 방송에 출연한다는 것은 상업성에 몸을 파는 일이나 다름없었다. 그런 내가 탤런트가 된 것은 순전히 하숙집 아주머니 때문이었다.

어느 날 학교에 갔다 하숙집으로 돌아왔더니 아주머니가 내 방에 있던 사진까지 챙겨 놓고 “연극배우로는 입에 풀칠하기도 힘들다. 남자 구실을 제대로 하려면 탤런트라도 되어야 한다”면서 MBC 탤런트 공채에 원서를 내보라고 등을 떠밀었다. 마침 주말이고 서울로 올라갈 일이 있었던 나는 아주머니의 성화에 못 이겨 원서를 냈고 탤런트가 됐다.

얼떨떨한 기분도 잠깐. 나를 기다리고 있던 것은 9년 간의 무명세월이었다. ‘조선왕조 500년’에서는 포졸부터 대군까지 다양한 역을 맡았지만 크게 빛을 보진 못했다. 또 ‘수사반장’에서는 사회로부터 소외받은 범죄자 역 정도에 만족해야 했다.

실의에 빠진 나는 연극무대에서 실력을 갈고 닦았다. 연극 ‘가갸거리의 고교씨’같은 작품은 기획에 참여했고, 극단 ‘춘추’의 작품에 출연하며 기회를 기다렸다.

연기자들 사이에서는 아무리 무명 탤런트라도 일생에 세 번은 기회가 찾아온다는 말이 있다. 그 첫 번째 기회는 87년 김종학 PD가 연출했던 이문열 원작의 ‘황제를 위하여’였던 것 같다. 나는 주인공인 황제의 젊은 시절을 맡아 나름대로 최선을 다했지만 빛을 보지 못했다. 두 번째 기회는 92년 ‘한 지붕 세 가족’에서 2층집 신세대 직장인 이용범 역이었다. 연출자였던 정운현 PD가 그동안 내 연기를 눈여겨봤다가 김혜수의 상대역으로 발탁해줬다. 이후 나는 SBS ‘궁합이 맞습니다’와 KBS ‘청춘극장’에서 잇따라 주연을 맡으며 오늘에 이르렀다.

나에겐 아직 한번의 기회가 더 남았다고 생각한다. 96년 ‘LA아리랑’ 이후 밝고 코믹한 캐릭터로 시청자들의 사랑을 받아왔지만 이제 다시 한번 연기변신을 준비해야 할 때인 듯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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