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GO매거진]한국소방 현주소

  • 입력 2001년 4월 12일 14시 53분


 지난달 홍제동 화재현장
 지난달 홍제동 화재현장
지난 3월 4일 오전 3시 55분. 국민의 생명을 구하던 소방관 6명이 사망하는 참담한 사고가 발생했다.

이날 사고가 국민의 가슴을 더 아프게 하는 것은 지나치게 많은 근무시간과 박봉에 시달리면서도 불평 한 번 없이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구하던 소방관들이 사망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화재현장에서 집에 사람이 있다는 소리를 듣고 소방관들이 건물 내로 진입했으나, 정작 건물 내에는 사람이 없었다는 사실이 더욱 허무한 충격으로 다가선다.

▼소방관 6명 순직후 각계서 '처우개선'▼

이 사고 이후 정부와 여야 정당은 소방관들의 처우를 개선하겠다고 나섰고 국민들도 분향소를 찾아 조문을 하고 성금을 모았다.

국민 모두가 가슴 아픈 사고에 대해 진심어린 마음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이러한 일련의 조치나 성원이 소방관들이 안고 있는 현실을 어느 정도나 개선해줄 수 있을지 미지수다.

소방관들이 가장 바라는 것은 인력의 대대적인 보충이다.

2001년 전국의 소방공무원은 2만3153명으로 소방력 기준에 관한 규칙에 의한 최소기준인력인 3만2133명의 72.1%밖에 되지 않는다.

전체 소방공무원의 80%가 24시간 격일제를 하는데, 이는 주당 84시간으로 세계적으로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근무시간을 자랑(?)한다.

세계적으로 열악하다는 우리나라의 주당 법정근로시간이 44시간인 점을 감안해도 무려 40시간이나 많은 근무시간이다.

그렇다고 비번날에 당연히 쉴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명절이나 연말연시 등 특별경계근무가 있고 폭설이 내리거나 큰 사건사고가 발생하면 그곳에 동원된다.

지난해 특별경계근무는 15회에 걸쳐 67일이나 됐다. 거기에 관할구역의 소방점검을 나가는 날이 많다.

수천 개의 건물을 몇몇이 점검한다는 것도 불가능하다. 건물의 소방점검은 1인당 하루 세곳도 힘들다. 그러다가 화재가 발생하면, 소방점검을 제대로 했네 안했네 난리들이다.

▼인력 대폭 확충해 2교대 근무제로 전환을▼

현재 24시간씩의 근무를 2교대 근무로 해결하기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인력이 보충되지 않고서는 불가능하다.

2교대 근무에도 9000명의 인력이 모자라는 것으로 알려졌다.

소방관들이 원하는 3교대 근무를 위해서는 훨씬 많은 인력의 보충이 필요하다.

이에 대해 김경원 소방국 행정계장은 향후 5년에 걸쳐 매년 1000명의 소방인력을 확충하고, 4000명의 의무소방대를 운영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한꺼번에 충원을 하고는 싶지만 지방공무원의 구조조정이 이뤄지고 있는 점을 감안할때 일시에 모든 것을 해결하기는 어렵다는 입장이다.

소방관들이 절실하게 바라는 것 중 하나는 혹시 있을 자신의 사망 이후 남은 가족들이 안정적으로 살 수 있도록 유족에 대한 확실한 보상을 해달라는 것이다.

자신들의 죽음보다도 살아가야할 가족을 생각하는 것이다. 현재 화재현장이나 구조구급현장에서 순직한 공무원은 국립묘지에 안장되고 유족에게는 '국가유공자등 예우 및 지원에 관한 법률'에 따라 매월 기본연금 50여만원과 부가연금 등 국가유공자로서의 대우를 해주고 있다.

▼사고나면 "처우개선"…얼마후면 "글쎄"▼

그리고 순직시 유족보상금으로 월보수의 36배와 사망조의금으로 월보수액의 3배, 장제비 25만원, 소방공제회의 순직유족급여 130만원정도가 지급된다.

이에 따르면 홍제동 화재현장에서 사망한 소방관 유족들의 경우, 경력에 따라 5000만원에서 9000만원의 돈을 받을 수 있었다.

다행히 국민의 성금으로 경력에 따라 차이는 있지만 2억원 가까운 보상이 이뤄졌다. 사람의 생명을 돈으로 환산한다는 것이 옳지는 않지만, 소방관들은 이 적은 돈을 유족에게 남기고는 사망할 수 없다는 것이다.

아이가 있는 경우 대학공부만 시키는데 1억원 정도가 들어가는 상황에서 5000만원을 유족에게 남기고 떠난다면 눈을 감지 못할 것이라는 소방관들의 얘기가 들려온다.

다음으로 원하는 것은 현장에서의 숱한 부상을 전문적으로 치료할 수 있는 '소방병원'의 설립을 바라고 있다.

소방관들이 소방병원을 필요로 하는 이유는 화재진압시 화상을 입는 경우가 많고 흡인성 화상으로 호흡기에 장애가 오는데 이를 제대로 치료할 병원이 없어 많은 불편을 겪는다는 것이다.

또한 업무상 재해에 대해 일반 병원에서 의료보험이 적용되지 않는 것이 많아 자비로 치료비를 부담하는데 소방병원이 건립되면 이러한 문제들이 해결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소방전문병원 조속건립 운영기대▼

그러나 소방병원의 경우 건립비용이 워낙 많이 들고 수지타산에서 적자가 우려돼 정부에서는 난색을 표명하고 있다.

대신 시도 소방본부별로 시도립병원 등을 활용해 이용시 자비부담을 면제하고 진료비를 경감하는 방향으로 소방공무원 전문병원을 지정해 운영하는 방안을 내놓고 있다.

또한 이미 공무원연금법을 개정했고 전액 공무원연금공단에서 치료비를 부담하는 방향으로 세부기준을 마련하고 있다고 밝혔다.

정부는 우선 문제가 됐던 소방관의 방호활동비 월 7만원은 4월1일부터 17만원으로 인상했고 외근소방공무원에 대한 시간외 근무수당도 최대 75시간까지 지급하기로 결정했다.

소방장비의 개선도 시급히 요구된다. 현재 지방예산의 부족으로 소방장비의 62%만 보유하고 있는 상황인데 이 중 절반이 성능이 떨어지는 구형으로 지급돼 있다.

이에 행자부는 소방관의 개인안전장비를 최대한 지급하기로 하고, 여기에 소요되는 328억원 중 기획예산처에서 164억원을 국비로 지원해 연내에 지급하기로 결정했다.

▼대형화재 대비 헬기 등 장비개선 필요▼

그러나 소방헬기와 같은 대형화재에 필요한 장비개선에는 별다른 대응이 없다. 현재 전국의 소방헬기는 총 19대에 불과하다.

소방헬기는 대부분 산불과 같이 소방관들이 직접 화재진압을 하기 어려운 곳에 투입되는데 19대는 너무나 적다.

산림청 헬기가 33대, 경찰헬기가 19대 더 있다고는 하지만 일반 소방업무의 책임이 소방서에 있다는 점에서 시급하게 개선돼야할 사항이다.

특히 1000만명 이상의 시민이 사는 서울에 소방헬기가 4대뿐이라는 것은 상식에 어긋난다.

게다가 그중 2대는 물탱크를 설치할 수 없는 소방헬기이다. 그리고 물탱크 설치가 가능한 헬기는 장기적인 점검기간이 있어 사실상 소방에 사용할 수 있는 헬기는 1대라고 보면 된다.

한편 기형적인 소방조직의 개편도 국민들 사이에 요구된다. 소방조직은 행정자치부 소속의 소방국이 있고, 다시 소방방제본부 아래로 일선 소방서가 있다.

문제는 소방공무원까지는 정부공무원이고 일선 소방관들은 지방공무원이라는 것이다. 전국의 소방서는 142개이고, 단위 소방서별 예산은 지방자치단체에서 관리하고 중앙정부는 지방의 부족한 예산에 국비 또는 교부금을 지원만 하고 있다.

지자체중 필요한 예산을 스스로 충당하는 곳이 없다. 90%이상의 예산을 마련하는 곳은 단 두 곳이다.

▼화재 등 재난관리 국가전환 바람직▼

지자체도 예산이 없는데 소방예산까지 지자체가 담당한다는 것은 한국 소방을 더욱 어렵게 한다. 전체적인 예산수립부터 어려울 수 밖에 없다.

중앙에서 소방관 처우개선을 추진하는 데도 지자체의 상황을 모두 감안해야 하는 번거로움이 뒤따르는 것이다. 즉 국가가 관리·운영해야 할 소방관들을 지자체가 운영하고 있기에 발생하는 화재방치인 것이다.

한편에서는 여러 이유로 소방업무를 지자체가 관할하는 것이 당연하다고는 하지만 국방을 지자체와 함께 관리·운영할 수 없듯이 소방도 국가에서 관리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의견이 개진되고 있다.

한국소방에 있어 소방기관의 문제도 많이 있지만 국민들의 문제가 더 크다.

작년에 소방대원들이 화재진압등 각종 구조로 출동한 횟수는 15만822건이었고 이중 8만6929건을 처리했다.

하루 평균 413건 출동에 238건을 처리했다. 94년 구조활동이 8594건이었던 것에 비하면 6년동안 10배이상 처리건수가 늘어난 것이다.

작년 구조·구급 활동을 종류별로 보면, 화재가 1500여건·교통사고가 1700여건 정도가 됐다.

▼전기누전·담뱃불·방화가 화재주범▼

작년 한해 우리나라에서는 3만5000여건의 화재가 발생해 1500여억원의 재산을 불로 태웠고 2384명의 사상자를 만들어냈다.

더욱 걱정스러운 것은 매년 화재가 10% 이상 늘어나고 있다는 것이다. 화재의 주요원인은 전기누전이 가장 많고 다음으로는 담뱃불·방화이다.

국민모두가 조금만 주의를 하고 관리를 하면 사고예방이 가능한 것들이다.

소방업무를 힘들게 하는 허위신고도 큰 문제다. 대국민 홍보와 발신자 추적장치 도입으로 매년 허위신고가 줄어들고 있기는 하지만 아직도 그 정도가 너무 심하다.

98년 119신고전화는 1400만건에 달했다. 그중 장난전화 건수는 1050만건으로 전체 119전화의 75%에 달했다.

이후 99년엔 1250만여건의 전화에 800만건이 넘는 64%의 장난전화가 있었다. 작년에는 장난전화가 많이 줄었다. 1180만통의 전화중 30%인 364만건이 장난전화였다.

과거에 비해 많이 줄기는 했지만 아직도 엄청난 장난전화가 소방업무를 마비시키고 있다.

허위신고에 대해서는 200만원 이하의 벌금을 부과할 수 있지만 장난전화의 대부분이 초등학교 저학년 학생들로 처벌이 어렵다.

또한 셀 수 없이 많은 허위신고에 일일이 형사고발하는 것도 사실상 불가능하다.

가정과 학교에서 '위급시 전화는 119'라고 알려주는 것에서 끝나지 말고 '119로 장난전화를 해서는 안되는 이유'도 알려주어야 한다.

▼장난전화·소방차량 방해로 업무마비▼

또한 국민들이 소방업무를 도와주어야 할 것으로는 소방관련 차량의 출동시 길을 열어주는 데 협조해야 한다는 것이다.

선진국의 경우 경보등과 경보음이 켜지면 즉시 길을 열어주는 것과 달리 우리의 일부 운전자들은 내일이 아니라는듯 어떠한 협조도 하지 않는다.

물론 우리의 도로여건상 빨리빨리 소방차량의 길을 열어주기 어려운 것도 사실이지만 도로사정이 좋은데도 '못된 짓'을 하는 운전자들이 많이 있다.

또한 횡단 보도에서의 보행자들도 소방차량의 운행을 어렵게 만들고 있다. 잠시만 기다렸다 가도 되는데 보행신호라고 자신의 권리만 주장하며 위험하게 횡단보도를 건너는 것이다.

소방구조대를 좋게는 '만능해결사'로 나쁘게는 '시키면 하는 심부름꾼'으로 생각하는 사람들도 문제다. 구조대는 부르기만 하면 무슨 사건이든 다 출동을 한다.

자동차 문이 잠겨도, 집의 화장실 문이 잠겨도 구조대를 부른다. 동네에 동물이 죽어 있어도 치워달라고 전화가 온다.

정말 절박한 상황이 아닌데도 국민들은 소방관을 부른다. 이러다보니 소방관의 업무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

자동차 문이 잠긴 경우 보험사나 카센터의 직원을 부르면 되는데도 빨리오고 돈이 들지않는 이유로 구조대를 찾는다.

▼"제발 꼭 필요한 경우에만 불러주세요."▼

구급대는 더하다. 119로 걸려오는 전화는 급하고 위험한 경우라고 생각하겠지만 그런 경우는 10%도 안된다고 한다.

심한 경우 간단한 두통에도 119구급차량을 부른다고 한다. 119구급차가 공짜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그릇된 양심이 정말로 119를 필요로 하는 사람의 생명을 빼앗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

한 소방관은 이런 말을 한다.

"희생이 있으면 뭔가가 바뀐다"고.

그동안 소방관에게 그렇게 무심하더니 이제와서야 엄청난 관심을 보이는 것을 아쉬워하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소방관들에 대한 정부와 국민적 관심이 이대로 흐지부지 끝나는 것은 아닌지 걱정했다.

이에 대해 행자부의 한 직원은 "결코 그들의 희생이 헛되지 않도록 할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는 물론 국민들도 박봉에 힘든 노동으로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소방관들이 보람만이 아닌 적정한 대우를 받는다고 느낄 수 있도록 지속적인 관심을 보여야 할 것이다.

김판수/월간경실련 기자

(이 글은 월간경실련 4월호에서 발췌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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