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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릭터 비교 릴레이]바람둥이들, 정력의 비결은 외로움?

입력 2000-10-30 13:59업데이트 2009-09-21 22: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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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마과장> 시마 vs <동경러브스토리> 켄이치

만화의 중요한 즐거움 중 하나는 대리만족이 아닐까. 아마도 여성들은 준수한 남자들의 사랑을 듬뿍 받는 평범한 여자 주인공들에게서, 남성들은 섹시한 여자들의 인기를 한 몸에 받는 평범한 남자 주인공들에게서 가장 커다란 대리만족을 얻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많은 남성 독자들의 부러움을 받고 있는 대표적인 캐릭터가 바로 <시마과장>의 시마 과장. 시마의 인기에는 따르지 못하지만 여러 모로 그에 비견할 만한 또 하나의 인물이 있는데 바로 <동경 러브스토리>의 켄이치이다.

히로카네 켄시의 <시마과장>은 40대 초반의 대기업 과장인 시마 코사쿠의 일상을 담은 작품. 시마의 일상은 크게 낮 동안의 오피스 신과 밤의 베드 신 두 부분으로 나뉜다. 샐러리맨들이 무릎을 칠만한 사실적인 직장생활 묘사와 환상적인 여성편력이 적절하게 배합되어 줄거리를 이끌어 간다. 시마과장을 둘러싼 외부의 상황과 그에 대응하는 시마의 내면이 생생하게 묘사되어있기 때문에 만화를 읽다보면 시마가 오랫동안 알고 지낸 사람처럼 느껴지기까지 한다. 단행본은 (주)서울문화사에서 12권까지 나와있다.

후미 사이몬의 <동경 러브 스토리>는 동경에 살고 있는 평범한 20대들의 연애담을 담은 수작이다. 대학을 갓 졸업하고 중소기업에 취직한 칸지, 칸지의 여자 동료 리카, 칸지의 중학교 동창인 의대생 켄이치, 칸지와 켄이치의 동창이자 유치원 선생님인 사토미가 주인공. 칸지와 사토미는 일편단심형, 리카와 켄이치는 바람둥이형이다. 서로 다른 개성을 지닌 이 네 명이 사랑을 느끼고, 애인이 되었다가 헤어지고 또 다른 사랑을 하게 되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작가는 '사랑'이란 감정을 사람들이 어떻게 느끼는지, 어떻게 사랑의 상처를 입고 입히는지를 구체적으로 묘사해 많은 연애경험자들의 심금을 울린다. 서울문화사에서 단행본 4권으로 완결된 이 작품은 일본에서 큰 인기를 얻어 <시마과장>과 마찬가지로 드라마로 제작되기도 했다. 두 작품은 모두 19세 이상만 볼 수 있는 성인물이다.

시마와 켄이치는 혼자 자는 날 보다 같이 자는 날이 더 많고, 상대해 본 여자의 수를 일일이 헤아리지 않는 바람둥이들이다. 그럼에도 시마와 켄이치가 다른 만화의 주인공들에 비해 훨씬 독자들의 공감을 얻는 이유는 이들이 지닌 '평범함' 때문. 막대한 부도, 비범한 능력도, 사연 많은 과거도, 화려한 명예도 없는 이들은 거리감을 주지 않는다.

시마는 평범한 샐러리맨이고, 켄이치는 고시에 합격하지 못한 의대생. 상사의 눈에 들어 승진하고자 하는 욕구나 의사가 되어 떵떵거리겠다는 야심도 별로 없다. 단지 남다른 게 있다면 단지 남들보다 많이도 아니고 '조금' 더 잘생겼다는 것 정도.

이들은 특별히 호색한도 아니고, 여자를 꼬시기 위해 불철주야 고심하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여자들이 먼저 유혹하고, 이들을 잊지 못해 또 찾아오곤 한다.

여기서 잠깐, 이들과 하룻밤을 함께 한 여자들의 소감을 들어보자. 시마를 유혹했던 한 요정의 마담은 사무실로 전화를 해 "당신이랑 한번 더 자고 싶어요. 나는 그날 이후로 당신을 잊을 수가 없어요"라고 말해 시마를 당황시킨다. 켄이치에게 차인 술집 종업원은 "그 숨결, 손끝 하나하나에 애정이 어려있고...어떻게 해야 여자를 즐겁게 만들지 너무 잘 아는 사람이에요."라며 울먹인다.

그렇다면 대체 비결은 무엇일까. 여자들의 마음을 끄는 것은 이들의 준수한 외모보다는 외로운 분위기와 다정한 태도일 것이다. 시마는 아내와 딸이 있지만 별거 중이다. 집에 가도 따뜻하게 대화할 사람이 없다. 이래저래 알게 된 여러 여자들에게 직장 생활의 스트레스를 토로하고, 또 그녀들의 이야기를 친절하게 들어주다 보면 모두 시마와 자고 싶어한다. 사람 좋은 시마는 그녀들을 거절하지 못하고(거절할 이유도 없다), 어느새 바람둥이가 되어버린다.

켄이치는 어린 시절 부모의 사랑을 받지 못해 늘 외롭게 자랐다. 고향을 떠나 동경에서 혼자 살며 대학을 다니는 그는 끊임없이 여자들을 사귀는 걸로 외로움을 달랜다. 중학교 때부터 좋아하던 사토미와 동거를 시작해 독자들은 잠시 켄이치의 편력도 여기서 끝인가 생각하게 된다. 그러나 켄이치 역시 오는 여자 막지 않는 성격이기에 사토미를 두고도 켄이치는 바람을 피운다.

시마의 파트너는 매우 다양하다. 회사의 부하직원, 상사의 정부, 술집 마담, 거래 업체의 담당 직원, 출장차 방문한 라스베가스의 카지노 딜러 등등. 좀 예쁘게 그려진 여자 인물이 등장한다 싶으면 '몇 페이지 후에 베드신이 펼쳐지겠군'하는 생각이 든다.

켄이치는 주로 술집 등에서 눈이 맞은 여자들과 밤을 보내며, 의대생이니만큼 병원의 동료들도 소홀히 하지 않는다. 그러나 시마와 달리 켄이치는 적나라한 베드신을 펼쳐 보이지 않는다. 독자들은 불순한 기대를 품고 <동경러브스토리>를 보지 마시길.

이들을 더욱더 부럽게 만드는 것은 그렇게 바람을 피우면서도 큰 화를 당하지 않는다는 것. 시마는 별거하던 아내와 순조롭게 이혼하고 애인들도 시마를 독점하려 하지 않는다. 오히려 곤경에 빠진 시마를 '몸바쳐' 도와주기에 회사에서도 혁혁한 공을 세운다.

사토미 역시 켄이치가 바람피우는 걸 알면서도 조용히 견디기만 할 뿐 탓하지 않는다. 새로 좋아하게된 병원 동료 쇼우코에게 차이고 돌아온 켄이치에게 사토미는 "그 사람에게 차였구나?"하며 미소를 짓는다. 정말이지 배우고 싶은(?) 내공들이다.

바람을 피우는 것과 연애를 하는 것은 어떤 차이가 있는 것일까? 연애에서 애틋한 감정을 빼고 순간적인 쾌락을 더한 게 '바람'은 아닐까?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스캔들'이란 말처럼 바람과 연애를 제 3자가 섣불리 구분할 일은 아니다. 서로 다른 사람들이 또 다른 사람들을 만나 갖게 되는 감정은 어차피 똑같지 않을 테니까. 바람둥이라고 표현하긴 했지만 시마와 켄이치는 남들보다 좀 스피디하고 동시다발적인 연애를 즐기는 건지도 모른다.

이재연<동아닷컴 객원기자> skiola@unite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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