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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현의 우리거리 읽기]군산, 濁流에 휩쓸려간 1백년사

입력 1999-06-07 19:49업데이트 2009-09-24 0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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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러운 장미를 아시는지. 4월이 오면 오히려 벚꽃향기가 가득한 그런 장미를 아시는지.

전북 군산은 쌀의 군산이었다. 군산의 장미는 쌀을 쌓아두던 장미. 장미동(藏米洞), 미장동(米場洞), 미성동(米星洞), 미원동(米原洞), 미룡동(米龍洞). 동네 이름에 이처럼 쌀이 많은 도시가 또 있을까. 계룡산, 낙화암, 그리고 기름진 평야를 다 거친 백마강이 금강으로 바뀌어 그 탁류(濁流)가 바다에 흘러드는 곳, 그리하여 항로가 시작되는 곳이 군산이다.

1899년 군산은 개항을 했다. 가렴주구(苛斂誅求)의 탐관오리 대신 일본인들이 몰려왔다. 호남은 일본인들의 엘도라도였다. 금 대신 쌀이 나왔다. 토지수탈과 간척으로 일본인들의 거대한 농장이 속속 형성되었다. 조선인들은 여전히 소작농일 뿐이었다. 소작료로 나간 쌀은 군산항에 모여 일본 오사카(大阪)로 향했다. 전형적인 식민지형 무역구도가 형성된 것이다. 이 땅의 민초들은 중국 만저우(滿洲)에서 들여온 조, 수수로 허기를 속였다. 일본의 쌀값이 떨어지면 군산항에는 면화가 쌓였다.

빼앗긴 들에도 봄은 왔다. 가을도 오고 세월이 지나 광복이 되었다. 군산항에는 빈 쌀 창고만 남았다. 군산에 임해공단이 들어섰다. 서해안 시대가 왔다고도 했다. 더 큰 배가 닿으라고 따로 외항을 만들었으니 가을이면 북적거리던 내항은 흔적기관처럼 남게 되었다. 군산에서는 이제 쌀이 아니고 자동차가 수출되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미두장(米豆場)이 아니고 증권시장에서 돈을 걸었다.

1백년의 세월이 지났다. 개항 1백주년 기념사업이 성대하게 계획되었다. 다양한 기념식과 축제도 있었고 조각공원, 기념탑도 기념사업에 들어갔다. 항구에는 개항 1백주년 기념광장도 만들어졌다. 그러나 1백주년 기념광장은 1백년이라는 시간의 흔적을 지우면서 만들어졌다. 쌀 저장하던 창고를 무너뜨리고 그 자리에는 자동차를 세워놓기 시작했다. 녹슨 철길 옆으로 만든 광장에는 휑한 분수대와 열주(列柱)만 늘어서 있다. 분수가 가동되는 날은 과연 1년에 며칠이나 되며 섣부른 디자인의 조명을 머리에 인 돌기둥들이 들어선 이유는 무엇일까. 이 광장은 도대체 어떤 방법으로 1백년의 세월을 기념하고 있는 걸까. 바다바람 부는 이 광장은 황량한 1백년의 표현이라고 하는지도 모를 일이다.

군산을 배경으로 한 소설 ‘탁류’의 작가 채만식. 그 채만식의 문학기념관도 세워질 예정이다. 기념관은 어디에 세워지는가가 가장 중요한 문제다. 그러나 채만식 문학기념관 건물이 세워질 땅은 위생환경사업소 이전부지. 소설 속에 둔뱀이, 흙구더기, 콩나물고개라는 지명은 나와도 위생환경사업소라는 이름은 없다. 충남 목천의 산속에서 독립을 기념하자고 공허한 메아리만 울리는 어떤 기념관의 전철을 군산은 되풀이하고 싶은 것일까. 짓는 것은 기념관인가, 자료 창고인가. 기념관은 두 개를 짓지는 않는다. 지을 때 그만큼 신중해야 한다. 기념관은 주택이 아니다. 쓰다가 맘에 안 들면 이사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들어설 자리부터 제대로 잡아야 한다. 예산이 부족하면 예산이 확보될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올해 착공을 못하면 예산이 사라지니 대강이라도 지어야 한다는 사고로 과연 우리가 지어낼 수 있는 건물은 어떤 모양일까. 값싼 빈 땅을 골라 서둘러 건물을 짓는 것이 제대로 채만식의 문학적 성취를 기념하는 우리의 방법인가. 1백년 뒤에 후손들이 그 건물을 보고 우리 시대를 어떻게 평가할까.

군산은 허물어지고 있다. 다른 도시에 있는 모든 것들, 먹고 마시고 입고 노는 것들을 다 들여오면서 군산만이 가진 것들은 가랑비에 옷이 젖듯 하나둘씩 무너져 나가고 있다. 일제시대에도 있었던 도시계획이 지금 군산에는 있는가. 주거지 한가운데 대형할인매장이 들어서기 시작했다.

나가사키(長崎)십팔은행은 알뜰종합백화점으로 바뀌었다. ‘탁류’에 등장하는 은행이던 조선은행 군산지점에는 성인나이트클럽, 노래연습장, 록카페가 들어섰고 그나마 이제는 문을 닫아 흉가처럼 을씨년스럽기만 하다. 그 앞에는 채만식 소설비가 서 있다. 양쪽에 글을 새긴 소설비는 인도의 모서리에 서 있어서 한쪽을 읽으려면 자동차가 씽씽 질주하는 차도에 내려서야 한다.

이 땅에 일본 에도(江戶)시대풍의 창살이 남아있는 도시는 거의 없다. 많이 사라지긴 했지만 아직 남아있는 군산의 일식 건물들은 보존되어야 한다. 아름다워서가 아니고 서럽던 우리의 1백년, 그 전반부를 고스란히 이야기하는 증거물이기 때문에 그렇다. 이들조차 다 지워내면 군산은 이 땅 어디에나 있는 지방도시와 다를 게 무엇인가. 군산의 일식 건물들은 대한민국의 안방 아랫목에 앉아 있던 조선 총독부청사는 아니다. 이들은 제대로 된 역사의 사료로 보존해야 한다.

군산상고가 야구대회에서 우승했다고, 군산제일고가 축구대회에서 우승했다고 거리에 가득 현수막 내거는 것만으로 군산사랑을 이야기하지 말자. 동양 최대라는 횟집의 존재가 군산이 바깥에 이야기할 것의 전부가 되어서는 안 된다. 일제시대가 배경인 영화를 찍으려면 모두 이곳에 와서 아쉬운 소리를 하게 만들어야 한다. 바다와 역사와 문학을 모두 갖춘 도시가 한국 어디에 또 있는가. 이들을 두고도 제대로 된 관광상품 하나 만들어내지 못함은 게으름 때문인가, 무심함 때문인가.

이 땅에서 가장 먼저 아스팔트 포장이 된 길은 군산과 전주, 군산과 김제를 잇는 도로. 서울 광화문 앞길보다도, 종로보다도 빨랐다. 더 많은 쌀을 더 신속히 실어 나르기 위해 훌륭한 길은 당연히 필요했다. 조선인들에게는 분노의 포도(鋪道)였다. 1백리 길 가에는 벚나무를 심었다. 4월이면 취할 만큼 눈부신 벚꽃의 도열 끝에 자리잡은 군산의 의미가 무엇인지 이 도시는 이야기해야 한다. 정주사네 맏딸 초봉이(‘탁류’의 주인공)의 서럽고 가슴저린 인생을 도시는 읽어주어야 한다. 이 땅에 살다 스러진 이름 없는 들꽃들의 고단하던 모습을 증언하여야 한다.

흘러라, 탁류여. 씻어도 씻기지 않는 서러운 역사의 이야기를 들려 주어라. 다가올 1백년의 끝에는 기쁨과 영광의 노래를 부르게 해달라고 하라.

서현(hyun1029@chollian.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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