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0년 공연계 트렌드를 가늠할 세 가지 키워드가 꼽혔다. 젠더를 넘어 세대, 장애, 계층 등으로 주제가 확장하며 어느 때보다 관객에게 다채로운 선택지가 주어진다. 무대와 객석의 경계를 허무는 ‘이머시브(관객참여형)’ 공연과 공연장 문턱을 낮추려는 시도도 눈에 띈다. 국내외 검증을 마친 작품의 강세가 예상되는 가운데, 새로운 10년을 위한 창작 작품 개발이 본격화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평론가, 전문가 20명에게 올해 공연계 향방을 들어봤다.
○ 소수자 돌아보고 관객과 가까이
두산아트센터는 연극 ‘문 밖에서’를 통해 미군 기지촌 여성 노인들의 이야기를 무대로 끌어왔다. 음식을 주제로 한 기획 공연 3편도 선보인다. ‘젠더 프리’ 캐스팅도 여전하다. 국립극단의 ‘파우스트’에는 김성녀 전 국립창극단 예술감독이 파우스트 박사 역으로 출연해 기대감을 높이고 있다. 이경미 평론가는 “여성, 신진 연출가 중심으로 소외계층을 조명하는 다양한 형태의 작품이 쏟아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박병성 더뮤지컬 편집장은 “비주류 소재, 형태의 작품이 급부상했다. 마니아층을 사로잡기 위한 제작사들의 선택”이라고 분석했다. 예주열 CJ ENM 공연사업본부장은 “기존 흥행 공식과 차별화한 주제의 작품들이 무대에 오르는 올해가 국내 공연계의 다양성 수용 정도를 가늠해볼 기점”이라고 했다.
관객에게 더 가까이 다가가 소통하고 잠재 관객을 끌어오려는 시도도 이와 맥을 같이한다. 세종문화회관은 지난해 말 공공 공연장 최초로 주류 반입을 허용했으며, ‘스마트폰 프리’ 공연도 논의 중이다.
검증된 인기작도 관객과 만난다. 영국 국립극단의 ‘워호스’가 단연 1등으로 꼽힌다. 창작 13년 만에 처음 내한하는 작품으로, 제1차 세계대전 당시 기마대 말과 소년의 우정, 전쟁의 아픔을 그린 수작이다. 단순한 도구로 무대를 역동적으로 변화시키는 상상력, 인형의 활용모두 빼어나다.
인기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 ‘웃는 남자’ ‘드라큘라’ ‘킹키부츠’도 돌아온다. 국내 창작 뮤지컬 ‘베르테르’ ‘서편제’도 공연한다. 신춘수 오디컴퍼니 대표는 “안정적 대형 뮤지컬을 기반으로 다양한 창작공연을 개발하는 과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 무용 천재들의 내한 잇따라
매슈 본, 아크람 칸, 크리스털 파이트, 로이드 뉴슨, 마린스키 발레단….
세계 정상급 안무가와 무용단의 공연이 무대를 수놓는다. 매슈 본은 신작 ‘레드 슈즈’를 선보이며, 무용에 연극적 요소를 채운 크리스털 파이트의 인기작 ‘검찰관’도 무대에 오른다. 무용수 은퇴를 선언한 영국 안무가 아크람 칸의 마지막 장편 솔로 ‘제노스’도 국내 팬들의 궁금증을 낳고 있다.
마린스키 발레단의 ‘젊은이와 죽음’도 공연한다. 마린스키 발레단 수석무용수 김기민도 고국을 찾는다. 국립발레단은 ‘해적’ ‘로미오와 줄리엣’ ‘호두까기 인형’을 선보이고 유니버설발레단(UBC)은 ‘잠자는 숲 속의 미녀’ 전막을 올린 뒤 ‘돈키호테’ ‘오네긴’을 공연한다.
국립극장은 창설 70주년 기념공연으로 신작 무용 ‘산조’, 발레 ‘베스트 컬렉션’, 창극 ‘춘향’을 선보인다. 역시 70주년을 맞는 국립극단은 연극 ‘만선’ 등을 무대에 올린다.
설문 응답자(20명·가나다순)
원종원 이경미 장광열 허순자 황승경(이상 공연 평론가), 김요안 두산아트센터 수석PD, 김선희 한국예술종합학교 무용원 교수, 김신아 예술경영지원센터 전문위원, 박병성 더뮤지컬 편집장, 백새미 인터파크 공연사업부장, 서미정 우란문화재단 PD, 손인영 국립무용단 예술감독, 신춘수 오디컴퍼니 대표, 엄홍현 EMK뮤지컬컴퍼니 대표, 예주열 CJ ENM 공연사업본부장, 우연 남산예술센터 극장운영실장, 이동현 국립극장 공연기획팀장, 이양희 세종문화회관 공연예술본부장, 이유리 한국뮤지컬협회 이사장, 조남규 한국무용협회 이사장
김기윤 기자 pep@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