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큰바람 불고 구름 일더니<268>卷四. 흙먼지말아 일으키며

  • 입력 2004년 9월 30일 18시 3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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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신은 조참과 관영에게 보기(步騎) 5000을 주고 전군(前軍)으로 세웠다. 그리고 자신은 중군(中軍)이 되어, 각기 군사 1만을 거느린 번쾌와 주발을 좌우익(左右翼)으로 삼고, 5000 갑병(甲兵)으로 한왕 유방을 호위하며 전군의 뒤를 받쳤다. 그때 한왕은 태복(太僕) 하후영이 모는 수레를 타고 있었으며, 그 곁을 장량과 장이가 여러 장수들과 함께 말을 타고 따랐다. 그런 중군의 뒤를 다시 한왕(韓王) 신(信)이 맡았다. 한왕 신은 정창(鄭昌)의 항복을 받아낼 때부터 이끌고 다니던 한군(韓軍) 1만으로 중군의 든든한 울타리가 되어주었다. 그 밖에 주가(周苛)와 기신(紀信)이 이끄는 2만이 후군(後軍)으로 유군(遊軍)을 겸했다.

한군(漢軍)이 규모와 위세를 아울러 뽐내며 10리쯤 나아갔을 때였다. 갑자기 전군에서 전령이 달려와 대장군 한신에게 조참과 관영의 말을 전했다.

“위군(魏軍)과 곧 마주치게 되었는데, 알 수 없는 일은 위나라의 삼군(三軍) 오병(五兵)이 한 덩이가 되어 몰려오고 있는 점입니다. 어떻게 보면 전군이 거대한 유성추(流星鎚)처럼 한꺼번에 치고 들어 결판을 내겠다는 것 같기도 하고, 또 어떻게 보면 그저 어지럽게 떼 지어 몰려오고 있을 뿐인 듯도 합니다. 두 분 장군께서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대장군의 분부를 기다리십니다.”

“조(趙) 관(灌) 두 장군께 잠시 기다려 달라고 하라. 내 곧 대왕을 모시고 그리로 가겠다.”

한신은 조참과 관영에게 그런 명을 전하게 하고, 곧 한왕 유방에게 전군에서 온 전갈을 알렸다. 그 말을 들은 한왕은 하후영에게 급히 수레를 몰게 해 전군쪽으로 달려갔다. 오래잖아 한신과 함께 전군에 이른 한왕은 장졸들을 헤치고 나가 위군쪽을 바라보았다. 어찌된 셈인지 위군은 행군을 멈추고 있었는데, 기치나 대오는 멀리서 보기에도 전혀 흐트러짐이 없었다.

“선생이 보기에는 어떻소?”

말을 탄 채 수레 곁을 따르고 있던 장량을 쳐다보며 한왕이 물었다. 장량이 한 번 더 적진을 살펴본 뒤에 가만히 말했다.

“글쎄요. 왠지 싸우려고 온 군대 같지는 않습니다. 북과 징 소리가 전혀 들리지 않을 뿐더러 한 가닥 살기(殺氣)조차 느껴지지 않습니다.”

“기치는 정연하지만 높이 들려 휘날리지 아니하고, 창칼은 날카로워도 그 끝이 모두 앞을 향하고 있지 않습니다. 싸우러 온 군사가 아닌 듯합니다.”

한신도 나지막한 소리로 그렇게 맞장구를 쳤다.

그때 위군의 문기(門旗)가 열리며 은빛 갑주를 걸치고 백마를 탄 장수 하나가 부장(部將) 두엇을 뒤딸리고 나왔다. 한군(漢軍)쪽을 찬찬히 살펴보던 장수가 한신의 수자기(帥字旗)를 알아보고 크게 소리쳐 물었다.

“나는 서위왕(西魏王) 위표라 하오. 장군의 높으신 성과 크신 이름은 어찌 되오?”

“나는 한(漢) 대장군 한신(韓信)이라 하오. 우리 대왕의 명을 받들고 하동(河東) 땅을 거두러왔소!”

한신이 짐짓 목소리에 힘을 실어 그렇게 대답했다. 그러자 서위왕 위표가 가볍게 손을 모아 한신에게 예를 표하고 말했다.

글 이문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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