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기의 즐거움 20선]<7>지리산 둘레길 걷기 여행

  • 입력 2009년 7월 31일 02시 58분


《산 둘레의 작은 길을 걸으면서 느꼈다. 그간 내가 산을 올랐던 행위도 자동차의 가속페달을 밟는 것과 다르지 않았다는 생각. 내 욕망을 채우려고 대상의 특정 부분만을 선택적으로 취한다는 면에서 오르기와 달리기는 겉모습만 달랐지 속성에서는 같았다. 주변과의 넉넉한 교감을 권장하는, 또한 그럴 수밖에 없는 지리산 걷기는 여행자와 여행지의 관계를 평등하게 조직했다.》

오르기와 달리기에 질렸다면…

지리산 둘레길은 800리, 300km 정도 된다. 6월 현재 전북 남원시 주천∼운봉∼인월∼경남 함양군 금계∼동강∼산청군 수철 구간의 70km만 개통됐다. 지리산길은 사단법인 숲길이 2007년 1월 산림청의 지원을 받아 만들기 시작해 2008년 처음 열렸다. 2011년이면 산청 하동 구례군 구간도 뚫려 순환로가 완성된다. 현재 하동과 구례는 길의 윤곽이 나왔다.

저자는 틈만 나면 지리산에 오른 마니아. 산 능선을 타고 오르는 상쾌함에서 생활의 활력을 느꼈다. 그가 둘레길이 생겼다는 말을 듣고 호기심만 들고 찾아간 지리산은 뜻밖의 선물을 안겨 준다.

“음식으로 치면 신선한 산나물과 잘 말린 묵나물을 조물조물 무쳐서 비벼낸 산채 비빔밥이었다.”

둘레길에선 산을 오를 때는 맛볼 수 없는 즐거움을 느꼈다. 우선 사람이 있었다. 산에 오르면 등산객이나 등산객을 상대로 한 상인밖에 볼 수 없었지만 둘레길에선 길을 안고 사는 사람들을 볼 수 있었다. 천왕봉 아래 마을에 시집와 평생 그 산을 한 번도 올라본 적이 없는 할머니도 있고 논에 물을 댄 뒤 캔 맥주를 마시며 농사 이야기를 들려주는 귀농 아저씨도 있었다. 산길이 예쁘다는 저자의 말에 “피란 간다고 이 길로 달구지를 끌고…”라며 6·25전쟁 당시 고생담을 어제 일어난 일인 것처럼 들려주는 할아버지도 있었다.

산에 오르는 것이 팍팍한 도시 생활에서 벗어나 안식처를 찾는 것이었다면 둘레길을 걷는 것은 또 다른 일상과의 만남이었다. 내 현실보다 더 좋다고 혹은 더 나쁘다고 할 수 없는, 있는 그대로의 현실이었다.

산에 오를 때처럼 각종 장비로 중무장을 하거나 체력을 비축할 필요가 없었다. 그저 지도 하나와 간단한 배낭을 들고 저 멀리 구름이 걸린 산세나 밭두렁의 콩, 야생화를 눈여겨볼 여유만 챙기면 된다.

저자는 둘레길을 둘러싼 역사의 흔적도 되새긴다. 예를 들면 전북 남원시 운봉 지역의 둘레길을 가면서 이 지역의 역사적 사건과 현재 남아있는 흔적들을 연결한다. 운봉 고원에는 돌장승이 유독 많다. 이곳은 이성계가 왜구의 전설적 장수였던 아지발도를 크게 이긴 황산대첩의 현장. 왜구가 물러간 뒤 사람들은 마을의 안녕을 빌기 위해 장승을 세웠다는 것이다. 세월이 흘러 조선 말 운봉 지역의 유지였던 박봉양은 1894년 전북 지역에서 동학농민군이 관군을 상대로 잇달아 승리한 뒤 운봉지역으로 진출하려고 하자 민보군을 조직했다. 그해 9월과 11월 두 번의 전투에서 박봉양은 대승을 거두며 동학군에게 큰 피해를 안겼다. 박 씨 문중은 ‘역적’을 물리친 공로를 기려 기념비를 세웠다. 하지만 동학농민운동에 대한 평가가 달라지자 기념비는 누군가에 의해 일부가 깨지고 넘어졌다. 이 비는 다시 세워지긴 했지만 깨진 흔적은 여전히 남아있다. 이처럼 둘레길에 얽힌 역사를 하나씩 짚어가며 그 속살들을 꺼내놓는다.

총 3부로 나눈 이 책은 1부에서 개통된 둘레길, 2부 미개통된 둘레길, 3부 제주 올레길을 다루고 있다. 자세한 길 안내는 물론이고 교통편 숙박시설 식당 등도 부록으로 소개했으며 각 지역마다 둘러보거나 알아야할 포인트를 제시했다.

서정보 기자 suhcho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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