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창희의 행복한 100세]퇴직 후에도 일할 수밖에 없는 이유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5월 1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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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창희 트러스톤자산운용연금포럼 대표
강창희 트러스톤자산운용연금포럼 대표
“어, 노후설계 강사님 아니세요? 작년 봄 천안에서 퇴직 예정자 연수 때 강의를 들은 사람입니다. 지금은 이 건물에서 경비 일을 하고 있지요.”

“그러세요? 정말 반갑습니다. 그럼 퇴직하시고 바로 이 일을 시작하신 거예요?”

“봄에 퇴직하고 두어 달 쉬다가 이 일을 시작했어요. 그때 그렇게 말씀하셨잖아요. 지금과 같은 저금리시대에는 어떤 허드렛일을 해서라도 한 달에 50만 원을 벌면 정기예금 2억 원을 갖고 있는 것보다 훨씬 더 가치 있는 거라고. 그 말에 쇼크를 받고 바로 일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지요.”

○ 베이비붐 세대 순자산 3억5000만 원


이상은 얼마 전 한 기업연수원에서 강의를 마치고 나오다 그곳에서 경비 일을 하는 분을 만나 나눈 이야기이다. 작년 봄에 이분들에게 어떤 강의를 했었던가? 현재 대부분의 시중은행 정기예금 금리는 2%도 되지 않는다. 2억 원의 정기예금을 보유하고 있다 해도 월 33만 원의 금리 수입을 얻기가 힘들다. 또 2억 원의 정기예금에서 매달 50만 원씩 인출해서 생활비에 보탠다면 몇 년을 버틸 수 있겠는가. 금리를 2%로, 물가상승률을 2%로 가정한다면 33년이면 원리금이 소진되고 만다. 이런 시기에 허드렛일을 해서라도 월 50만 원이라도 근로소득을 얻을 수 있다면 그 가치가 얼마나 소중한가. 대략 이런 내용이었다. 이분이 원래는 정년퇴직하면 여행도 좀 하고 쉬면서 그 후에 할 일을 찾아보려고 했는데 퇴직연수를 받는 과정에서 생각이 바뀌어 바로 경비 일을 시작했다는 것이다. 최근 들어 노후설계 강의를 하면서 이런 분들을 자주 보게 된다. 가장 큰 이유는 많은 직장인이 조기 퇴직을 하는 데다 모아둔 노후자금이 100세 시대를 살아가기에 턱없이 부족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2014년에 통계청이 발표한 가계금융조사 결과에 따르면 우리나라 베이비붐 세대(1955∼1963년생)의 가구당 평균 총자산은 4억3000만 원 정도인 것으로 나타났다. 여기에서 가구당 평균 부채액 8000만 원을 빼면 가구당 평균 순자산은 3억5000만 원 정도이다. 50대 후반에 3억5000만 원 정도의 재산을 갖고 있으면 그럭저럭 살아갈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을 할 수도 있다. 그런데 문제는 순자산 3억5000만 원 중 살고 있는 집을 포함한 부동산 가액이 3억2000만 원에 이른다는 것이다. 결국 가용 순금융자산은 3000만 원 정도밖에 안 된다. 3000만 원 정도로 어떻게 30∼40년을 살아갈 수 있겠는가. 3000만 원으로 재테크를 해서 재산을 늘려 보려 할 수도 있겠지만 요즘 같은 저성장·저금리시대에 말처럼 쉽지 않다.

○ 6억 예금 이자 月100만 원도 안 돼

복지 선진국에서는 모아둔 재산이 없더라도 최소 생활비 정도는 연금으로 받아 생활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공무원이나 군인, 학교 교직원을 제외하면 거의 연금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 2014년 말 현재 2113만 명이 가입하고 있는 국민연금에서 노령연금으로 받을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되는 금액은 부부 합산 월평균 58만 원밖에 안 된다. 반면에 이분들이 생각하는 월 최소 생활비는 부부 합산 월평균 133만 원, 적정 생활비는 월평균 181만 원 정도이다. 노령연금 예상 수령액은 최소 생활비의 절반, 적정 생활비의 3분의 1에도 미치지 못하는 것이다.

모자라는 연금은 퇴직연금으로라도 보완할 수 있어야 하는데 퇴직연금은 도입된 지 몇 년 안 되는 데다 도입 시에 그동안 쌓아둔 퇴직금을 중간정산 받아 자녀교육비, 결혼자금, 주택 구입자금 등의 다른 용도로 써버린 이들이 대부분이다. 개인연금 또한 연말세액공제 혜택을 받기 위해 불입한 정도여서 2012년 말 현재 계좌당 불입금액이 1230만 원밖에 안 된다. 그 후 추가 불입을 했다 하더라도 그 금액은 1년 생활비를 충당하기에도 어려울 것이다.

물론 노후자금으로 몇 억 원씩 저축해 놓고 퇴직하는 분들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그런 분들은 노후자금을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가. 고금리시대에는 약간의 예금만 있어도 금리 수입이 쏠쏠했다. 예를 들어 1년 만기 정기예금 금리가 10%였을 때는 1억2000만 원의 예금만 있으면 매월 100만 원의 금리 수입을 얻을 수 있었다. 그러나 현재는 대부분의 시중은행 정기예금 금리가 2%에도 이르지 못한다. 6억 원의 예금이 있다 해도 월 100만 원의 금리수입을 얻을 수 없는 것이다. 금리 수입으로 노후생활비를 쓰려고 생각했던 분들에게는 정말 답답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집을 줄이거나 팔아서 노후생활비를 조달하는 방법을 생각해 볼 수도 있지만 716만 베이비붐 세대가 사는 집을 팔려고 내놓기 시작하면 우리나라 집값은 또 어떻게 되겠는가. 지난 몇 년 사이 수도권 집값이 크게 하락한 이유 중의 하나는 이런 사정이 반영되어 있기 때문일 것이다.

결국 지금과 같은 저성장·저금리·고령화시대를 살아가기 위해서는 대부분의 직장인이 퇴직 후에도 뭔가 수입을 얻을 수 있는 일을 할 수밖에 없다고 해야 할 것이다.

강창희 트러스톤자산운용연금포럼 대표
#퇴직#일#노후자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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