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홍찬식]맥아더 공격과 역사청산은 닮았다

  • 입력 2005년 9월 16일 03시 0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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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글러스 맥아더 장군 동상을 둘러싼 논쟁은 일단 잠잠해질 것이다. 무엇보다 6·25전쟁을 체험한 세대가 생존해 있다. 그들은 동상 철거가 뭘 상징하는지 잘 안다. 일제의 굴레에서 벗어나 가난을 극복하고 오늘에 이른 한국 사회와 그들 자신을 송두리째 부정하는 일이다.

그러나 일단락된 건 아니다. 어떻게든 이 문제를 수면 위로 끌어올리려는 세력이 있다. 사람들이 맥아더를 잊고 있는 동안 그들은 맥아더를 철저하게 분석했다. 그들의 단순명료한 논리는 반미(反美) 정서에 젖어 있는 젊은 세대에 솔깃하게 들린다. 맥아더 신화(神話)를 뒤집어 그들이 얻을 수 있는 소득은 엄청나다. 이런 호재를 포기할 리 없다.

‘역사를 바로 봐야 한다.’ 그들은 대중을 향해 넌지시 말문을 연다. 한국은 맥아더를 영웅으로 알고 있지만 미국에선 평가가 엇갈린다는 것이다. 6·25전쟁에서의 몇 차례 전략적 오류와 제2차 세계대전 중 필리핀에서의 실패를 내세운다. 맥아더를 살인자로 묘사한 박성환 밴드의 노래 ‘맥아더’는 이 점을 홍보한다. ‘남의 나라 인천바다 바라보며 무슨 생각 그리 하시나/고향에선 천대받고 내가 여기 왜 서 있나 묻고 계시나.’

다음으론 맥아더가 광복 직후 남한에서 발표한 포고문과 소련군의 포고문을 함께 제시한다. 맥아더의 포고문 중에서 ‘남한 주민은 본관(맥아더) 명의로 발표된 명령에 복종해야 한다’ ‘군정 기간에는 영어를 공용어로 한다’는 내용을 앞세운다. 북한을 점령한 소련군의 포고문은 ‘조선은 자유국이다. 당신들은 자유와 독립을 찾았다’는 내용을 내놓는다. 미국의 사무적인 문서 스타일과 소련의 정치선전 문구를 나란히 놓고 한쪽은 점령군, 한쪽은 해방군의 이미지를 띄우는 것이다.

감성을 자극하는 일도 빼놓지 않는다. 맥아더가 인천상륙작전에 앞서 ‘서울에는 아가씨도, 부인도 있다. 3일간 서울은 제군의 것이 될 것이다’라고 말했다고 전한다. 그래서 맥아더는 전쟁 범죄자이고 분단의 책임자이며 미국 식민통치의 상징이라는 결론이다. 6·25전쟁이 어떤 전쟁인지도 잘 모르는 젊은이들에겐 충격적이고, 어떤 측면에선 흥미로운 얘기가 아닐 수 없다.

이것이 왜곡과 허구라는 건 금방 드러난다. 미국에서 맥아더에 대한 평가는 ‘자유세계의 수호자’였다는 게 지배적이다. 부분적인 과(過)만 내세우는 것은 왜곡이다. 또한 우리가 맥아더 동상을 세운 것은 한국과 맥아더의 인연 때문이지 미국에서의 맥아더 평가와는 직접 관련이 없다.

포고문 비교는 기록의 한계와 맹점을 보여 준다. 북한에 들어온 소련군의 약탈과 강간이 극심했다는 증언은 너무도 많다. ‘서울에 아가씨도, 부인도 있다’고 맥아더가 말했다는 건 학자들도 모르는 일이다. 침략자를 지칭하는 ‘전범’이라는 말을 유엔군 총사령관에게 붙이는 건 얼토당토않다.

‘맥아더 끌어내리기’에 앞장서는 쪽의 전략은 역사를 바로잡자는 명분을 앞세우고 역사를 과장하거나 왜곡해 대중의 감성에 호소하는 것이다. ‘반미’와 ‘자유민주주의 부정’이라는 특정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정치운동’이 그 본질이다.

최근의 ‘역사 청산’에도 같은 함정이 있다. ‘바른 역사’를 강조하는 명분에는 아무도 이의를 달 수 없다. 문제는 역사를 잘 모르는 사람을 앞에 놓고 역사적 근거를 짜깁기하고 자료를 들이대면 역사는 얼마든지 재단될 수 있다는 점이다. 학술적 차원이 아닌 정치적 성격을 띠고 있는 것도 흡사하다.

역사적 진실이 반드시 승리한다는 보장은 없다. 젊은 세대가 벌써 맥아더에 대해 반신반의하고 있는 것은 진실이 위협받고 있음을 뜻한다. 참으로 기막힌 일이지만 진실을 수호하려면 철저한 준비와 치밀한 대응 이외에 다른 방법은 없다.

홍찬식 논설위원 chansi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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