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어플레이를 합시다]양은정/응급 사이렌 울려도 못들은 척

  • 입력 2002년 8월 26일 17시 52분


딩동댕…. “구급출동!! 구급출동!! 호흡곤란 환자 구급출동!!!”

여유있게 손놀림하던 저녁 식탁이 갑자기 바빠졌다. 숟가락을 그냥 놓고 계단을 오른다. 호흡곤란 환자라니. 급히 오른 차에 사이렌을 켜고 차고를 나온다. 환자의 상황은 어떨까. 빨리 도착해야 할텐데…. 호흡곤란이라는 말에 촌각을 다투는 심각한 상황이 아닐까 신경이 쓰인다.

머릿속에서 상황을 정리하며 이것저것 필요한 장비를 준비하는데, 퇴근시간의 도로는 꽉 막혀 있다. 다급한 마음에 사이렌을 울리면서 “구급출동합니다. 차로 양보하세요”하고 몇 번이나 방송해도 양보해주기는커녕 오히려 끼어들기까지 한다.

그 순간 몇 달 전에 있었던 일이 생각 나 더욱 긴장이 되었다. 집에서 갑자기 호흡과 맥박이 없어진 환자를 급히 심폐소생술을 하며 병원으로 이송하고 있었는데 길은 막히고 차들은 양보할 줄을 몰랐다. 심지어 뒤에서 구급차가 오는 줄 뻔히 알면서도 좁은 골목길에서 택시가 손님을 태우고 내리는가 하면, 무심한 듯 횡단보도를 건너는 사람들까지…. 자신의 가족이나 친척이 구급차가 필요한 응급 상황이라면 과연 그렇게 나몰라라 하지는 않았을 텐데, 아쉬운 마음뿐이었다.

나중에 그 병원에 다시 들렀을 때 그 환자가 다음날 새벽 심폐소생술을 받던 중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접하고 무척 속이 상했다.

지하철역에서 갑자기 가슴이 아프다고 호소하며 쓰러진 사람이 있어 구조하러 가는 경우도 종종 있다. 수많은 사람들이 오고가는 환승역의 경우 왜 그렇게 갈길이 바쁜 분들이 많은지. 환자의 위치를 가르쳐주는 사람도 있지만 엘리베이터나 계단에는 자신의 갈 길만 바쁜 분들로 가득차 뚫고 들어가기가 쉽지 않다. 얼마 전 사설 응급차량이 환자도 없이 장비를 운반하며 사이렌을 울리는 사례가 많다는 보도를 본 적이 있는데 그런 탓일까. 길은 막히고, 가슴은 바짝바짝 타 들어간다. 심장마비나 뇌출혈 환자에게는 시간은 곧 생명이다. 우리를 기다리는 환자와 가족들은 일 초가 일 분, 아니 십 분처럼 느껴질 것이다.

그렇게 마음을 졸이며 도착했는데, 막상 환자를 만나고 보니 우려했던 심각한 호흡곤란 환자는 아니었다. 호흡곤란 증상도 있긴 했지만 다음날 수술을 받기 위해 저녁에 입원을 해야 한다며 짐까지 싸 놓고 119에 신고를 한 거였다. 긴장이 풀리며 온몸의 힘이 빠졌다. 구급차는 신속한 응급처치나 병원의 전문적인 치료를 받지 않으면 생명에 위협을 받거나 신체상 중대한 위해를 입게 되는 환자가 이용하는 것인데….

낮과 밤도 없이 응급환자가 있는 곳에 출동하기 위해 24시간 대기하며 긴장 속에 생활하는 구급대원으로서 긴급한 상황도 아니면서 택시를 부르듯 119구급대를 이용하는 시민들, 아무리 사이렌을 울리고 양보해 달라는 방송을 해도 자신의 길만 가는 사람들을 보면 안타까운 마음을 금할 수 없다. 자신의 일이 아니면 그만이라는 듯한 이런 무관심과 장난 허위신고 때문에 소중한 생명이 꺼져갈 수 있다는 사실을 생각해야 하지 않을까.

양은정 서울 종로소방서 세종로파출소 소방사·119구급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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