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진우 칼럼]강금실 장관의 팔자

  • 입력 2004년 1월 26일 19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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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주일 전 강금실 법무부 장관은 기자들이 총선출마설에 대해 묻자 “아이고 내 팔자야. 그냥 ‘에이∼’ 하고 해 버릴까요”라고 한 뒤 “호호호” 웃었다고 한다.

강 장관이야 ‘호호호’ 웃을 수 있을지 모르지만 열린우리당은 따라 웃을 형편이 못 된다. 강금실(서울)-문재인(부산)-정찬용(광주)의 ‘3톱’을 내세워 바람을 일으켜야 할 텐데 ‘호호호’라니. 속이 탈 노릇일 게다. 강 장관이 이래서야 문재인 대통령민정수석비서관을 끌어내기도 쉽지 않다. 정찬용 대통령인사수석비서관이야 좀 더 당기면 될 듯싶지만 강(康), 문(文)이 없는 정(鄭)만으로는 바람을 기대하기 어렵다.

노무현 대통령도 그 속내야 어떻든 대놓고 나가라고 하기는 어렵게 됐다. “(강 장관과 나 같은) 사정 담당자들이 곧바로 정치에 입문하는 것은 모양이 좋지 않다”는 문 수석비서관의 말이 옳은 데다 본인 의사에 맡기기로 이미 공언했으니 말이다.

▼나라와 국민 팔자도 필까 ▼

아무튼 강 장관의 ‘내 팔자야’에는 여권의 이른바 총선 ‘올인(all-in) 전략’이 함축돼 있다. 한마디로 팔자는 무슨 팔자, 총선에서 이길 수만 있다면 그보다 좋은 팔자가 어디 있겠느냐는 얘기다.

그러나 그거야 어디까지나 그쪽 사정이지 나라와 국민의 팔자까지 피리라는 보장은 없다. 하기에 정동영 의장이 지금 해야 할 일은 강-문-정에게 매달리기보다 우리당에 표를 주면 국민과 나라의 팔자도 필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예컨대 대통령이 경제 살리기에 나서기로 했다면 당에서도 구체적 안(案)으로 뒷받침할 수 있어야 한다. 그게 당장 어렵다면 ‘청년 백수’를 줄일 수 있는 한 가지 대책이라도 분명하게 내놓아야 한다. 그런 것 없이 ‘몽골 기병(騎兵)’식 이벤트 정치와 ‘올인 전략’에나 매달려서야 나라와 국민의 팔자가 필 수 있을까. 유감스럽게도 별로 그럴 것 같지 않다.

정치권력에 절대선이 존재할 수 없다는 것쯤은 이제 국민도 알 만큼 안다. 정치인이 종종 공익(公益)보다는 사적(私的) 또는 집단이익을 추구한다는 사실도 드러날 만큼 드러났다. 그런 터에 ‘올인’을 해서라도 우리가 이겨야만 개혁이 된다는 논리는 또 다른 도그마(독단)일 수 있다.

현실을 봐도 그렇다. 조순형 민주당 대표가 대구 출마의 배수진까지 친 마당에 민주당과 우리당이 다시 합칠 수 있다는 가설은 물 건너갔다. 우리당이야 한나라당과의 총선 양강(兩强) 구도를 희망하고, 또 그렇게 몰아갈 수 있다고 하겠지만 다수당 체제에서 여소야대(與小野大)는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노태우 정부 이래 이어져 온 분점정부가 그를 입증한다. 따라서 해법은 경쟁 속에 설득하고 타협하는 상생(相生) 정치일 수밖에 없다. 쉽지는 않더라도 그 길이 정도(正道)다.

무리한 ‘올인’은 오히려 유권자의 거부감을 일으킬 수 있다. 각료를 끌어 모아 ‘올 베팅’하면서 경제 살리기는 누가 한다는 건가. 내각이 총선용이어서야 국정의 일관성, 안정성이 지속될 수 있겠는가. 그러니 대통령이 “경제의 활력을 북돋워 민생 안정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다짐한들 민심은 이를 미더워하지 못하는 것이다.

▼'약자 콤플렉스'와 '난폭운전' ▼

여권이 특히 주목해야 할 것은 ‘올인 전략’은 그들의 총선 승리가 권력의 ‘난폭운전’을 불러올지 모른다는 의구심을 증폭시킬 수 있다는 점이다. 여기에는 물론 현 정권의 ‘약자(弱者) 콤플렉스’가 초래한 역효과의 측면이 있다. 그러나 통합보다는 편 가르기에 기울었던 노 정권의 지난 1년을 돌아보면 이를 근거 없는 불안심리라고 폄훼할 수만은 없을 것이다. 의회 권력은 정부 권력을 견제할 때 의미가 있다. 정략적인 ‘발목잡기’는 안 되지만 의회가 제 구실을 못해서는 대의(代議)민주주의가 존재할 수 없다. 그럴 때 권력은 ‘난폭운전’의 유혹을 받는다. 그것은 87년 이전 체제로의 후퇴다.

여권은 국정을 먼저 생각하고 그 결과로 민의의 지지를 받겠다는 겸허하고도 당당한 자세를 보여야 한다. 그나저나 강금실 장관의 팔자는 어찌될까.

전진우 논설위원장 youngj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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