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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1년 3월 6일 20시 2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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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Sidney Lumet
출연: Henry Fonda, Lee J. Cobb 등
미국 자유주의 이상의 대변자로 알려진 시드니 루멧 감독의 데뷔작, '12인의 성난 사람들' (Twelve Angry Men)은 미국법정 영화의 최대 고전으로 많은 배심영화의 정전(正典)이 된다. 배심제도의 본질에 대한 성찰과 함께 미국적 자유주의에 대한 확신을 담은 작품이다. 국민이 나라의 주인이며, 사법도 주권자인 국민의 몫이다. 판사가 아닌 '보통사람'이 사법제도를 운영하는 배심제도는 미국 자유주의의 핵심이다. 열 두 사람의 배심은 토론을 통해 합의된 결론에 이른다. 중죄사건(felony)에서는 전원이 합의하지 아니면 그 합의는 무효다. 이 영화는 진실은 참여와 토론을 통해 발견된다는 자유주의의 이상을 충실하게 전달하는 작품이다.
영화는 시작과 끝을 제외하고는 폐쇄된 공간 속에서 벌어지는 진지한 토론의 연속이다. 시선보다 정신을 흡입하는 흑백영화의 장점을 최대한으로 이용한 작품이다. 무료한 표정의 판사가 배심에게 설시(說示, instruction)를 내린다. 아버지를 죽인 1급살인죄 (first degree murder) 사건으로 유죄 평결이 내려지면 전기의자로 직행한다는 것이다. 겁먹은 푸에르토리코 청년 피고의 얼굴이 비친다. 열 여덟이라고 하나 소년 테를 벗어나지 못한 앳된 모습이다.
배심이 즉시 토의(deliberation)에 들어간다. 열 두 사람은 백인 남자뿐이다. 중년, 노인, 갓 이민 온 사람, 사무원, 노동자. 제작 당시의 기준으로는 미국사회의 보통인의 집단이다. 재판 중에 제시되었던 모든 증거가 의심 없는 유죄로 비친다. 결정적으로 불리한 증언들이 많다. 사건이 발생한 곳은 기차길 옆 빈민 아파트. 철로를 사이에 두고 건너편의 아파트에 사는 할머니가 자신의 침실 유리창을 통해 살인현장을 목격했다고 증언했다. 살인 장소 바로 아래층의 할아버지는 "당신을 죽이겠어요"( I will kill you)라는 피고인의 목소리에 이어 마루 바닥에서 둔탁한 소리가 났으며, 곧바로 피고인이 계단을 황급히 뛰어내려가는 것을 자신의 아파트 현관문을 통해 보았노라고 증언했다. 범행에 사용된 것으로 제시된 재크나이프( switchblade)는 최근에 피고인에게 팔았다는 점원의 증언도 있다.
피고인이 내세우는 알리바이는 허약하다. 그날 밤 11시부터 이튿날 새벽 3시까지 영화관에 있었다고 하나 영화제목도, 주연배우의 이름도 똑바로 기억하지 못한다. 배심장이 선출되고 즉시 예비투표에 들어간다. 11 대 1이다. 유일한 반대자는 중년의 건축기사 (헨리 폰다 扮), 모두가 경악에 가까운 반응은 보인다.
그의 주장인즉, 즉시 살인을 평결하기에는 약간 석연치 않은 점이 있다는 것이다. 대립하는 양쪽 당사자 중에 조금이라도 '증거가 우세'(preponderence of evidence)한 쪽이 승리하는 민사사건과는 달리 '죄'(crime)를 다루는 형사사건에서는 이른바 "합리적 의심"을 넘는(beyond reasonable doubt) 강력한 증거가 없으면 무죄가 된다.
그의 외로운 반대의견은 무더운 여름날씨에 짜증난 사람들을 더욱 피곤하게 만든다. 모두가 성이 나있다. 열 두 사람은 저마다 성이 난 이유가 다르다. 대중의 예단과 편견에 성이 난 폰다, 예상보다 길어진 토의 때문에 끝내 야구구경을 놓친 것이 화가 난 야구광, 빈민가 젊은 놈들의 파렴치에 분노하는 중산층 아저씨, 모두가 나름대로의 불만이 있다.
그러나 자욱한 담배연기 속에 이름 대신 번호로 통용되는 열띤 익명의 설득과 논쟁은 계속된다. 외로운 반대자로서 의연한 자세를 견지하는 폰다에 감명받은 노인이 동조함으로써 시작된 '반란의 과정'은 인간사에 가장 원초적인 감정들을 미국사회 전체의 취약점과 함께 엮음으로써 사회의 축약도로서의 영화의 역할을 십분 수행하고 있다. 계층적, 인종적 편견과 함께 자신의 일신에 고유한 편견, 이 모든 판단자의 편견이 판단 받을 사건에 직접, 간접으로 투영된다. 폰다의 진지한 의문의 제기와 논리적인 설득에 각종 편견이 차례차례 무너진다. 수 차례의 투표 끝에 1대 11로 역전되고 아들에게 버림받고 난 후 이 세상 모든 젊은 놈을 적으로 여겼던 최후의 반대자마저 입장을 바꾼 새로운 다수의 압력에 굴복한다. 전기의자 코끝까지 내몰렸던 패륜아가 대명천지를 보게된 것이다.
영화는 무성의하고 안일한 대중의 편견과 예단이 얼마나 무서운가를 보여줌과 동시에 이러한 오류는 진지한 참여와 토론을 극복할 수 있다는 참여민주주의의 이상을 전한다. 이른바 '전문가' 관료가 운영을 독점하는 사법제도를 가진 나라 사람들에서는 낯설기만 한 영화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반드시 경청해야 할 본질적인 메시지가 그득히 담긴 명화이다.
<서울대 법대 교수>
ahnkw@plaza.s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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