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갈피 속의 오늘]1912년 로켓 발명 브라운 출생

  • 입력 2006년 3월 23일 03시 08분


“나 한 사람의 작은 걸음이지만 인류 전체에는 위대한 도약이다.”

미국의 우주비행사 닐 암스트롱은 떨리는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다. 1969년 7월 20일 달에 첫 발걸음을 내디딜 때였다.

인간의 달 착륙은 모두가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다. 꿈이 아니면 이룰 수 없는 일이라고….

이를 가능하게 만든 인물은 베르너 폰 브라운이었다. 그가 만든 새턴로켓의 힘으로 아폴로 11호는 달까지 날아갈 수 있었다.

브라운은 1912년 3월 23일 독일 비르지츠의 부유한 귀족집안에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밤하늘을 바라보며 우주에 심취했다. 로켓 이론을 이해하기 위해 수학에도 몰두했다.

17세의 어린 나이에 독일 우주여행협회에 가입해 동료들과 2년간 80여 차례나 로켓 발사실험을 하는 등 남다른 열정을 보였다. 이때 독일 육군 로켓연구소의 드룬베르거 소장을 만난 게 그의 운명을 바꿔놓았다.

드룬베르거 소장의 권유로 베를린 공대에 들어간 브라운은 액체연료 로켓을 전공하며 연구소 연구원으로 로켓 실험을 계속했다.

이들의 로켓 연구는 독일 육군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전쟁을 준비 중이던 히틀러는 브라운과 드룬베르거 소장에게 강력한 로켓동력 병기(兵器)를 만들 것을 비밀리에 지시했다.

브라운은 1942년 최초의 탄도 미사일 ‘V-2’ 로켓 개발에 성공했다.

현대로켓의 ‘원조’로 평가받는 ‘V-2’는 1t의 폭약을 탄두에 싣고 약 360km를 날 수 있었다. 제2차 세계대전 동안 적국에 1300기가 발사된 ‘공포의 무기’였다.

2차 대전에서 독일이 패망한 뒤 브라운을 포함한 독일 로켓 연구팀은 미군에 투항했다.

미국으로 건너가 귀화한 브라운은 이후 아폴로 11호의 달 탐사를 주도하는 등 미국의 항공우주사업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하다 1977년 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인류의 진일보(進一步)를 가능하게 만든 ‘로켓의 아버지’ 브라운. 긍정적 평가와 함께 한편에서는 악마에게 영혼을 판 ‘20세기의 파우스트’로도 불린다. 그가 개발한 탄도 미사일에 수많은 사람이 목숨을 잃었기 때문이다.

만약 브라운이 태어나지 않았다면 인류는 어떻게 변했을까.

김상수 기자 sso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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