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백산맥의 대암산과 도솔산 줄기가 만나는 해발 1천2백80m 산마루에 펼쳐진 용늪. 국내 유일의 고층습지인 이곳이 죽어가고 있다.4천2백년의 유구한 세월이 흐르면서 만들어진 용늪은 지난 67년 발견돼 사람의 손길이 닿은지 30년만에 절반이 뭍으로 변하고 있다. 용늪의 총 면적은 9천2백평.
정부는 89년12월 이곳을 자연생태계보호지역으로 지정하고 94년 이후로는 일반인의 출입을 금하고 있지만 훼손의 속도를 늦추지는 못했다.
강원 인제의 대암산 입구에서 군용 트럭으로 50분만에 다다른 용늪은 짙은 안개와 서늘하고 축축한 공기속에 가려져 별천지를 이루고 있었다. 이틀에 하루는 안개가 끼고 5개월동안 영하의 날씨가 계속되는 독특한 기후 탓이다.
무릎 높이로 자란 산새풀을 헤치고 한 발 한 발 내디딜 때마다 물먹은 스펀지같은 늪 속으로 발이 쑥쑥 빠졌다.
그러나 용늪 가운데로 다가가자 굵은 모래로 덮인 단단한 바닥이 허옇게 드러났다.인근 군부대에서 20년전 늪 한가운데에 길이 90m의 스케이트장을 만들면서 반만년동안 쌓여온 지층을 마구 긁어내는 바람에 질퍽해야할 늪이 단단한 뭍으로 변하고 있는 것.
이곳에는 물이 흘러내려가지 않도록 지층을 덮고 있는 용늪 특유의 물이끼도 끼어있지 않았다. 습지에 살며 벌레를 잡아먹는 식물인 끈끈이주걱과 북통발, 백두산처럼 높은 산에만 사는 비로용담 등 용늪에서만은 지천으로 볼 수 있던 희귀식물들도 자취를 감추었다. 대신 육지에서 볼 수 있는 철쭉과 신갈나무가 침투해 이들을 밀어내고 있었다.
완만한 경사를 이루고 펼쳐져 있던 용늪은 스케이트장을 만든다고 가운데를 움푹 파놓는 바람에 물이 가운데로 모이고 아래쪽으로는 흐르지 않는다. 자연히 용늪 아래쪽도 서서히 말라가고 있다.
설상가상으로 인근에 도로를 내는 바람에 토사가 흘러들어 용늪의 훼손을 부채질하고 있다. 용늪 맨 위쪽에 자리잡고 있는 소용늪은 토사유입으로 먼저 메워져 이미 습지의 흔적을 찾아볼 수 없을 정도가 됐다. 소용늪을 뒤덮은 토사는 다시 큰용늪으로 흘러들어 이곳의 생태계를 위협하고 있다.
용늪 훼손의 징후는 토양의 산도(酸度) 측정에서도 드러났다.
용늪은 춥고 습한 곳에서 식물체가 분해되면서 유기산이 많이 나와 훼손되지 않은 상태에서는 토양이 강한 산성을 띤다. 일반 토양의 PH농도(낮을수록 산도 높음)가 5.7인데 비해 발견당시 이곳의 산도는 PH 4.3을 유지했다. 그러나 최근 환경부가 훼손된 곳의 산도를 조사한 결과 PH 5.5로 낮아졌다.
용늪을 30년째 연구해온 충북대 과학교육과 강상준(康祥俊)교수는 『용늪의 절반 이상이 습지 본래의 모습을 잃고 건조해지고 있다』며 『복원작업을 하면 속도는 늦출 수 있겠지만 건조화를 막지는 못할 것』이라고 안타까워했다.
〈인제〓이진영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