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수기업, 이것이 달랐다]금호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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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09년 12월 1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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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개표’로 조명시장 주도… 차세대 산업 LED 개발 나서

외국브랜드-외환위기로 한때 고전
LCD광원 경쟁력 키워 위기 극복

금호전기라는 이름은 몰라도 ‘번개표’라는 상표에는 고개를 끄덕이는 사람이 많다. 하지만 이들도 금호전기가 수도계량기를 만들던 ‘청엽제작소’란 작은 공장으로 시작했다는 건 잘 모른다. 게다가 금호전기가 1935년 처음 세워졌고 74년 동안 전쟁과 각종 경제위기를 견디며 끈질기게 살아남은 회사라는 사실은 더더욱 알려지지 않은 얘기다.

금호전기는 금호아시아나그룹의 창업주인 고 박인천 회장의 동생 동복 씨가 설립했다. 지금은 창업자의 막내아들인 박명구 부회장이 최고경영자(CEO)를 맡고 있다.

이 회사는 74년의 세월 동안 자신들과 비교조차 되지 않는 해외 대기업과의 경쟁을 뚫고 살아남았다. 또 점점 치열해지는 신기술 경쟁에도 버텨냈다. 위기 때마다 회사의 운명을 걸고 과감히 모험을 벌였고 여유가 생길 때면 한눈팔지 않고 기술 개발에 매진한 덕분이었다.

○ 운명을 건 도박

금호전기가 조명기기를 처음 만든 건 1963년이다. 그전까지는 수도와 가스계량기를 만들던 영세업체였다. 하지만 이때 처음 KS인증을 받은 백열전구를 만들어 내면서 이전과 전혀 다른 회사로 성장하기 시작했다. 이 회사의 ‘번개표’ 브랜드는 1980년대 후반부터 1990년대 초반까지 한때 국내 조명시장 점유율의 60% 이상을 차지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런 시기는 오래가지 못했다. 1990년대 이후 한국 경제가 크게 성장하면서 국내 조명 시장의 규모가 커지자 미국의 GE와 독일의 오스람 등 세계적인 조명업체들이 한국 시장 공략에 나섰기 때문이다. 당시 국내업체들의 매출은 수백억 원대에 불과했다. 하지만 이런 외국 기업들은 연간 수조∼수십조 원의 매출을 올리는 거대기업이었다. 이들은 기술에서 금호전기를 앞선 데다 정부가 무역 장벽을 낮춘 덕분에 가격 경쟁력까지 갖추고 있었다. 이러자 금호전기의 시장점유율은 순식간에 40%대로 떨어졌다. 1997년 말에는 외환위기까지 닥쳤다.

방법이 없었다. 남은 것이란 가지 않았던 길을 가는 무모함뿐이었다. 회사 경영을 맡았던 박 부회장은 서울 마포구 본사 사옥까지 팔아가며 신제품 개발 자금을 마련했다. 그리고 냉음극형광램프(CCFL) 개발에 나섰다. 박 부회장 스스로가 조명 전문 벤처기업까지 세워가며 기술개발에 열의를 보였던 엔지니어 출신이었다. 막 열리는 시장이라면 기술력으로 경쟁해 볼 만하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금호전기가 개발에 나선 CCFL은 일종의 형광등이지만 저온에서도 켤 수 있는 제품이라 추운 겨울에도 옥외에서 사용되는 네온사인 등에 쓰였다. 그런데 1990년대 말부터 새로운 수요가 생겼다. 노트북컴퓨터와 휴대전화 등 액정표시장치(LCD)를 쓰는 정보기술(IT) 기기였다.

LCD는 스스로 빛을 내지 못해 늘 뒤에서 빛을 밝혀주는 광원(光源)이 필요했는데 CCFL은 어디서나 쓸 수 있어 이런 LCD의 광원으로 가장 적합했다. 금호전기는 CCFL 수요가 늘 것으로 예상했고, 이 도박은 성공했다. 2000년 CCFL 생산 라인을 처음 지을 때만 해도 이 회사의 매출은 608억 원에 불과했지만 2002년 매출은 CCFL 덕분에 1004억 원으로 크게 늘었다.

국내에서 처음으로 KS 인증을 받은 백열전구인 ‘번개표 전구’ 케이스. 사진 제공 금호전기
국내에서 처음으로 KS 인증을 받은 백열전구인 ‘번개표 전구’ 케이스. 사진 제공 금호전기
○ 기술로 밝은 세상 만들기

금호전기는 최근 발광다이오드(LED) 조명 개발에 집중하고 있다. LED는 CCFL보다 전기를 적게 쓰고 밝기가 뛰어난 데다 더 작게 만들 수 있어 LCD TV 등 다양한 기기에 사용되기 시작했다. 조명기기로서의 효율도 형광등과 백열전구보다 뛰어나다.

금호전기는 이런 추세를 따라잡기 위해 다양한 LED 제품을 개발 중이다. 이 회사는 올해 LED 관련 생산라인을 완벽히 갖추기 위해 LED 가공과정인 ‘패키징’ 전문업체인 루미마이크로와 LED칩을 전문적으로 만드는 더리즈라는 회사도 인수했다. 직접 LED 조명 완제품과 TV 모듈 등 LED 부품 등을 생산해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서다.

금호전기의 본사는 서울 마포에 있다. 재무담당 부서 등 주요 지원부서가 모두 본사에 있지만 하나 없는 게 있다. CEO인 박 부회장의 사무실이다. 박 부회장은 경기 오산시에 있는 오산공장에 머문다. 오산과 수원, 용인의 주력 공장 인근에서 현장을 둘러보고 연구개발을 지휘하기 위해서다.

박 부회장은 “돈 되는 사업, 유행을 타는 사업을 하는 기업은 오래가지 못한다”며 “우리는 조명 한 길만을 걸어온 덕분에 노하우와 기술을 쌓을 수 있었고 이런 전문성을 소비자들이 인정하고 신뢰한 덕에 지금까지 회사를 이어올 수 있었다”고 말했다.

김상훈 기자 sanhkim@donga.com

금호전기 약사

―1935년 5월 서울 용산구에 수도계량기 회사 청엽제작소 설립
―1963년 11월 백열전구로 KS마크 획득
―1966년 11월 일본 도시바와 합작해 형광등 생산
―1978년 2월 금호전기로 상호 변경
―1989년 5월 조명분야 전 제품 Q마크 획득
―2000년 10월 냉음극형광램프(CCFL) 양산 라인 준공
―2006년 11월 1억불 수출의 탑 수상
―2008년 12월 발광다이오드(LED) 형광등 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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