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분권정책 현주소]<3>“수사권 안주면 반쪽경찰”

  • 입력 2004년 12월 14일 18시 0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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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한 지방자치가 이뤄질 경우 주민들이 가장 먼저 피부로 느낄 수 있는 게 바로 자치경찰의 치안서비스다. 자치경찰은 일괄적으로 집행되는 중앙집권적 경찰 행정에서 벗어나 그 지역에 맞는 ‘맞춤형 치안서비스’를 주민들에게 제공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제주 경찰의 ‘헛고생’=육지와 다른 인문지리적 환경을 갖고 있는 제주 경찰은 종종 경찰청에서 내려오는 일제 지시에 곤혹스러움을 느낄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집창촌이라고 할 만한 곳도 없는데 집창촌 일제단속 지시가 내려오는가 하면 서울에서 대규모 촛불시위가 벌어지면 제주도도 상부 지시에 따라 지구당사나 공공기관 경비를 강화해야 한다.

제주경찰청의 고위 관계자는 “지명수배의 경우엔 제주 역시 공조체제를 강화해야 하지만 제주의 특성은 아랑곳 않고 시도 때도 없이 내리는 일제단속이나 지시에 경찰력 낭비가 이만저만이 아니다”며 “정작 주민을 위한 치안서비스는 소홀한 실정”이라고 푸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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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진 과정=자치경찰제는 손을 대야 할 대상 기관이 엄청남에도 불구하고 다른 특별지방행정기관의 이관 작업보다 비교적 빠르게 추진돼 왔다. 올해 1월 지방분권특별법이 공포된 이후 정부혁신지방분권위원회는 관계부처 실국장 회의(8월 13일)와 장관 회의(8월 19일), 학계와 시도지사협의회 관계자, 시민단체 등이 참여하는 국민대토론회(9월 10일) 등을 거쳐 9월 16일엔 자치경찰제안을 확정해 발표했다.

분권위는 내년 상반기 관련 법령(법률 41개, 대통령령 48개, 부령 38개)을 개정해 하반기엔 시범적으로 실시하고 그 일년 뒤엔 전면 실시할 예정이다.

▽분권위의 자치경찰제 시안=분권위가 현재 추진 중인 자치경찰제는 먼저 수사와 정보, 외사, 보안 등 대부분의 업무는 국가경찰이 맡고 방범과 교통, 위생, 환경 등 주민생활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분야만 자치경찰이 맡는 식으로 역할분담을 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시군구 등 일선 자치단체는 국 또는 과 단위의 자치경찰을 두되 자치경찰과 국가경찰의 원활한 업무 협조를 위해 시도치안행정위원회와 시군자치구치안협의회를 추가로 설치해 운영할 예정이다.

분권위는 또 자치경찰 인력의 50%를 국가경찰에서 이관하고 예산 역시 제도가 정착될 때까지 일정 부분 지원하도록 할 방침이다.

▽지자체 반발=지방자치단체들은 정부가 추진하는 개선안은 자치경찰제가 아닌 ‘경찰보조원제’라고 폄훼하고 있다.

정부가 자치경찰에 주겠다고 한 사무 가운데 보건·위생 및 교통, 환경, 경제 등 20개 사무는 이미 지자체가 갖고 있는 특별사법경찰 사무라는 것. 정작 경찰의 가장 주요 업무인 일반범죄에 대한 수사권은 주지 않고 방범, 교통법규 위반 단속, 집회시위 주변 교통정리 등 ‘허드렛일’만 준 꼴이라는 지적이다.

지자체들은 명실상부한 자치경찰제를 실시하기 위해서는 시도지사 밑에 지방경찰청을 두고 시군구 밑에 경찰서를 두어 자치경찰에 경찰업무 수행에 필요한 모든 사법경찰권을 부여해야 한다고 말한다. 한 마디로 경찰청을 제외한 모든 나머지 경찰기관을 지방으로 넘기라는 취지다.

학자들도 대부분 이 의견에 동조하는 편이다.

한국공공자치연구원장인 명지대 정세욱(鄭世煜) 명예교수는 “정부가 현재 추진하는 안으로는 자치경찰이 할 수 있는 게 별로 없다”며 “시군구와 시도에 각각 자치경찰과 광역경찰을 설치해 기초단위에서 할 수 없는 수사는 광역이, 광역단위에서 할 수 없는 수사는 국가경찰이 하는 식으로 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전망=분권위 역시 지자체들의 주장에 대해 일부 수긍하고 있다.

분권위의 고위 관계자는 “지방경찰청이나 경찰서를 자치경찰에 주기는 어렵다 하더라도 치안센터는 일선 시군구가 넘겨받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이런 방안이 관철될지는 아직 미지수다. 왜냐하면 치안센터를 넘겨줘야 할 경찰청의 반대가 심한 데다 경찰청의 상급기관인 행정자치부 역시 경찰청 의견에 동조하고 있기 때문이다.

행자부 산하 자치경찰실무추진단 김갑수(金甲洙) 총괄지원팀장은 “치안센터를 자치경찰에 넘긴다는 얘기는 처음 듣는 소리”라며 “전혀 검토한 바 없다”고 일축했다.

하종대 기자 orionha@donga.com

제주=임재영 기자 jy788@donga.com

▼美-英 지역경찰제…日은 지방에 ‘업무 위임’ 형식▼

일본은 현재 광역단위인 도(都), 도(道), 부(府), 현(縣)에 자치경찰을 두고 있다. 1948년 기초단위의 자치경찰제를 먼저 실시했으나 자치단체 간의 공조가 잘 안 되는 등 문제점이 나타나자 6년 뒤 자치경찰의 형태를 광역단위로 바꿨다. 다만 일본의 자치경찰은 국가경찰의 사무를 위임받아 처리하는 형태인데다 자치경찰의 간부급은 여전히 국가직 공무원이다. 미국은 기초단위의 경찰뿐 아니라 주와 연방정부 모두 경찰기관을 갖고 있는 철저한 자치경찰제를 실시하고 있다. 자치경찰은 포괄적인 사무를 수행하며 기초단위에서 할 수 없는 것만 주 경찰이, 주 경찰이 해결할 수 없는 것만 연방 경찰이 해결하는 식으로 운영되고 있다.

영국 역시 지역별로 경찰위원회가 있어 산하의 지역 경찰이 대부분의 경찰 사무를 수행한다.

그러나 중앙집권적 경향이 강한 프랑스, 이탈리아, 스페인 등은 생활위험방지, 교통, 방범, 기초질서, 행정집행 지원 등 행정경찰의 기능만 기초자치단체에서 수행하며 나머지는 모두 국가경찰이 맡고 있다.

자치경찰제에 대한 정부혁신지방분권위원회와 시도지사협의회 구상안
구분정부혁신지방분권위원회 안시도지사협의회 안
실시단위시군구시도
조직-현행 국가경찰 그대로 유지
-시군구에 자치경찰 신설
-광역 및 기초단위에 치안협의회 신설
-시도 경찰청과 일선 경찰서를 일선 시도 산하로 이관
-의결기관으로 시도경찰위원회 설치
인사권-경찰청장 시도경찰청장 경찰서장 모두 현행 유지
-자치경찰은 시장 군수 구청장이 임명
-시도경찰청장은 시도경찰위원회 제청으로 시도지사가 임명
-경찰서장은 시도경찰청장 제청으로 시도지사가 임명
기능-국가경찰 : 수사 정보 외사 보안 등
-자치경찰 : 방범 교통 위생 환경 등
-국가경찰 : 수사 정보 외사 보안 등
-자치경찰 : 방범 교통 경비 일반수사 등
광역 치안수요자치경찰과 국가경찰 상호 업무 협의 및 조정시도경찰청에서 직접 수행
권한특별사법경찰사무 범위(보건 환경 경제 등 20개 항목)에 사법경찰권 부여모든 자치경찰업무 수행에 필요한 사법경찰권 부여
재정부담제도 정착될 때까지 국가에서 일정부분 지원현 경찰예산의 일정비율(예 80%) 수준으로 국가에서 지원토록 제도화

하종대 기자 orionh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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