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메드] 야간근무자 탐방기, 밤을 잊은 그대에게

  • 입력 2015년 11월 24일 09시 2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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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새 잠을 자지 못한다. 불면도 아니고, 유흥가를 전전하는 것도 아니다. 먹고 살기 위해 일을 한다. 낮에 잠을 자는 사람들. 그들이 살아가는 세상을 탐방해 보았다.

에디터 임준 포토그래퍼 윤동길

세상엔 밤을 새우는 직업이 꽤 많다. 야간 응급실의 의료진, 새벽 귀가를 돕는 택시 기사, 야시장의 상인들, 각종 24시간 영업 업소의 야간근무자, 경찰, 군인, 소방관, 상담원……. 끝이 없을 정도다. 사람들이 잠들어 있을 때 이들은 깨어서 일하고 있다. 밤을 새우는 건 분명 고된 일이다. 그 고된 일 때문에 이들의 몸과 마음이 상할 수도 있다. 누군가의 가족일 꺼라 생각하면 쉽게 넘어갈 수가 없는 일이다.


가족, 일, 나에 대해 다시 생각하다

경기도의 한 24시 편의점. 야간 근무조인 홍동희(44) 씨는 오늘도 밤샘 근무를 하고 있다. 40대 중반인 홍 씨는 결혼 13년차, 샐러리맨인 한 남자의 아내이자, 초등학생인 두 아이의 엄마다. 그녀가 편의점 야간 근무를 시작한 것은 작년 초. 달수로 20개월 정도다. 한밤에 출근해 아침까지 밤샘 근무를 하는 홍 씨. 그녀의 하루가 궁금했다.

남들이 일어나 출근할 시간, 그녀는 퇴근해 집에 돌아간다. 집에 오면 이미 남편과 아이들은 아침을 챙겨 먹고 나간 상태. 아이들은 새벽에 일어난 남편이 씻기고 아침밥을 챙겨 먹여서 학교에 보낸다.

홍 씨는 집에 오면서 장을 본 식료품과 생활용품을 정리한다. 그리고 세탁기를 돌리고 청소를 시작한다. 건조대의 마른빨래를 걷어 정리하고, 밑반찬을 만들어 놓으면 오전이 훌쩍 지난다.

정오 즈음에 자리에 눕는다. 햇빛 때문에 잠이 쉽게 들지 않는다. 지친 몸을 누이고 뒤척이다 잠이 든다. 아이들이 학교에서 학원을 거쳐 집에 돌아오고 학습지 등을 끝마칠 6시경까지 휴식을 취한다.

저녁 6시에 일어나 저녁식사를 준비하고, 아이들 숙제, 준비물을 챙긴다. 남편이 7시 30분쯤 귀가하면 가족이 같이 식사를 하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한다. 가족들과 하루 중 보낼 수 있는 귀중한 시간. 그리고 씻고 출근을 한다.

홍 씨가 야간 밤샘 일을 하는 것은 낮에 집에 있을 수 있고 아직 초등 저학년인 아이들을 챙길 수 있기 때문이다. 두 사람이 다 낮 근무면 낮에 아이들만 집에 있어야 한다.

저녁에는 애 아빠가 퇴근해 돌아오니까 교대할 수도 있다. 밤샘 근무가 결코 쉬운 것은 아니지만, 홍 씨는 당분간 가족을 위해 이게 최선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의 밤은 당신의 낮만큼 아름답다

편의점은 밤에 손님이 제법 있다. 잠을 이루지 못하는 사람도 있고, 출출한 수험생이나 독신들도 자주 찾아와 이용한다. 차를 몰고 지나가다 들리는 단골들도 꽤 있다. 새벽에 일을 마치고 귀가하는 이들도 많이 이용한다. 아침 즈음엔 일찍 출근하는 사람들로 다시 붐빈다.

편의점 근무라는 것이 쉬워 보여도 청소하고, 물건 들어오면 정리하고, 유통기한 지난 것들 다 빼내고, 판매금 맞춰 정산하고, 물건 주문하는 일 이외에도 자질구레한 일들이 많은 편이다. 육체적인 노동을 많이 하지 않지만, 워낙 취급하는 상품의 종류가 많다 보니까 신경 써서 체크하고 관리해야 하는 일도 만만치 않다. 그래도 제일 힘든 일은 역시 밤을 새우는 것이 아니냐고 물었다.

“물론 잠을 좀 설쳐요. 낮에는 아무래도 숙면하기 어렵긴 해요. 자고나도 완전히 개운치 않고 컨디션이 제대로 돌아오지 않긴 하죠. 그래도 처음에 비하면 지금은 체질이 바뀌어서 괜찮아요. 오히려 쉬는 날 집에 있으면 낮에 꾸벅꾸벅 졸아요.”

홍 씨는 새벽에 육체노동을 하는 분들이나, 위험한 일을 하시는 사람들에 비해 자신은 쉽고 편한 일이라며 웃는다. 단지 밤에 하는 일이기에 힘들고 어렵다는 것은 선입견이라는 것이다.

한때 아침형 인간이 유행처럼 번질 때가 있었지만 홍 씨는 밤에 깨어 활동하는 게 더 생리적으로 맞는 사람들도 많고 밤에 할 수 있는 일들이 꽤 많다고 생각한다.

때론 취객도 있고, 진상 이용자도 간혹 방문하지만, 밤에 편의점이 정말 필요한 사람들이 와서 이용할 때, 홍 씨는 보람을 느낀다고 한다. 홍 씨도 밤에 이렇게 많은 사람이 움직이고 일하고 깨어있는 줄 몰랐었다고 한다.

무엇보다도 밤손님들을 위해 물건을 진열하고, 정리하고, 청소하고 하면서 반갑게 그들을 맞이하는 이 공간이 좋다고 홍 씨는 만족해했다.

편의점은 작은 공간이지만, 없는 것이 없는 매장이고 원하는 것도 사람마다 제각각인 재미있는 곳이다. 사람들이 방문하고 필요로 하는 물건들을 판매하면서 홍 씨는 스스로도 가치 있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든다고 했다.

“세상에 꼭 남들에게 내보이기 위한 직업만 있는 건 아니라고 생각해요. 힘든 일이지만 이렇게 필요로 하는 공간에서 사람들에게 도움이 된다는 게 좋아요.”

한국편의점협회가 2013년 발표한 편의점 운영 동향 보고서에 따르면 전국에 편의점은 2만5,000개 이상이라고 한다. 매일 밤샘 근무를 하는 편의점 근무자가 2만5,000명 이상이 될 것이라는 말인데, 결코 적지 않은 수치다.

“물론 가족들과 밤에 떨어져 있는 건 힘들어요. 하지만 주위를 둘러보면 다들 힘들지만, 열심히 살아가잖아요. 희망을 가지고 미래를 꿈꾸면서 노력하며 사는 게 중요하다고 봐요.”

그들은 밤에 깨어있으면서 꿈을 꾼다. 그 꿈이 더 달콤한 꿈이었으면 좋겠다

편의점 밤샘 근무는 데스크에 앉아서 편하게 물건 계산이나 할 것이라는 생각과는 달리, 홍 씨는 부지런히 왔다 갔다 하며 정리하고, 치우고, 계산하고 점검하며 열심히 일하고 있었다.

손님이 뜸한 한가한 시간에 홍 씨는 밖에 나가 잠시 스트레칭을 하며 휴식을 취하기도 한다. 그리고 손님들을 대하며 밝게 웃는 홍 씨의 환한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열심히 돈 모아서 아이들 키우고, 행복하게 살고 싶어요. 아이들 키워 독립시키면 남편하고 시골에 내려가 살고 싶어요. 원래 시골 출신이라 자연이 좋아요. 그때까지 저나 애 아빠나 열심히 살아야겠죠. 저와 같이 밤에 일하는 많은 분이 모두 건강하고 행복했으면 좋겠어요.”

세상에는 밤을 잊는 많은 사람이 일하고 있다. 밤을 새우는 것만으로도 쉬운 일은 아니다. 그것을 받아들이고 열심히 사는 이유는 제각각이지만 미래에 대한 꿈과 희망을 품고 있다는 점에서는 같을 것이다. 그들은 밤에 깨어있으면서 꿈을 꾼다. 그 꿈이 더 달콤한 꿈이었으면 좋겠다.


수면장애가 삶에 미치는 영향

밤샘 직업을 가진 사람들이 제일 많이 고통을 호소하는 것이 수면장애다. 흔히 교대근무자라 불리는 이 직업군은 야간에 심한 졸음을 느낄 수 있다. 그리고 다음 날 낮에 수면을 취할 때는 깊은 잠을 제대로 잘 수 없고 수면시간도 1~2시간 정도로 짧다. 그 결과 만성적인 수면장애가 생기게 된다. 만성 수면장애가 심각해지면 우울증, 알코올 남용, 그리고 지나친 흡연 등의 문제가 생길 수 있다.

수면의학의 권위자인 코슬립수면의원 신홍범 원장은 현대인들이 너무 바쁘다고 말했다. 상대적으로 수면시간이 적어지고 그로 인해 장애가 발생할 수 있다고 말한다. 덧붙여 스트레스, 비만, 환경오염 등도 수면장애의 원인이 될 수 있다고 말한다.

“세상이 사람들을 가만두지 않잖아요. 할 것이 너무 많아요. 뇌가 쉴 틈이 없습니다. 워낙 다양한 경로로 수면
장애가 발생하니까 치료가 쉽지 않아요. 수술도 하고, 비수술적 요법도 실시해서 장애를 극복하게 해주죠. 하지만 증상이 심각한 경우에는 수면클리닉만으로 한계가 있습니다. 그렇기에 종합적인 진료를 하고 있어요. 정신과, 이비인후과, 소아과, 치과 등 다양한 협진을 통해 장애를 치료해 나가고 있습니다.”

생각보다 코슬립수면의원은 수면장애를 호소하는 많은 환자가 대기하고 있었다. 진료를 기다리고 있는 대기자들의 피곤한 면면을 보면서 그 심각성이 느껴졌다.

수면부족으로 정상적인 일상이 어려운 환자들도 꽤 있었다. 자고 싶어도 잘 수 없는 사람들. 자도 제대로 자지 못하는 사람들, 수면제까지 복용해야 잠을 자는 사람들. 같이 잠을 자지 못한 그들의 가족들, 안타까움이 묻어나는 그들에게 신 원장은 휴식의 중요성을 말한다.

“아까 말씀드린 듯이 제일 중요
한 것은 쉬는 것입니다. 여유 있는 삶으로 바꾸면 웬만한 수면장애는 고쳐져요. 치료는 그다음이라고 생각해요. 마음의 여유가 없으니까 몸을 혹사하고 그걸 견디고 싶어서 각성제나 술, 담배, 카페인 등 정신을 자극하는 것을 먹게 됩니다. 결국, 계속 몸이 깨어있는 것입니다. 나중에는 돌아오지 못하고 심각한 상황까지 전개되는 것을 많이 봤습니다. 특히 밤샘 교대근무자중에 많이 있지요. 늦기 전에 와서 검진을 받아야 합니다.”

신홍범 원장은 수면장애를 겪고
있는 밤샘 교대근무자를 위해 쉽게 할 수 있는 치료방법을 소개해주었다.


적극적으로 수면치료를 활용하라

수면 장애가 병이라는 인식이 생긴 것도 얼마 되지 않는다. 심각한 불면의 경우를 제외하면 수면장애는 병도 아니라는 인식이 지배적이었다. 코를 고는 무호흡증은 남자다움으로 여겼고, 잠을 못 자면 그 시간에 공부를 하면 되지 않겠느냐고 웃으며 농담을 하던 시대도 있었다. 그러나 주변에 수면장애로 고생하는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자가 치료가 어려운 질병임을 인식하게 되었다.

편의점 밤샘 교대근
무자 홍동희 씨는 자신을 수면장애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성격도 쾌활하고 일에 대한 거부감도 없는 편이어서 더 그렇게 생각한 듯싶었다. 교대근무자의 대부분이 이렇게 생각할 것이라 판단돼서 홍 씨를 데리고 신홍범 원장을 만났다. 확실히 낮에 보니 홍 씨의 안색은 며칠 전 밤에 보았을 때보다 좋지 않아 보였다. 신 원장의 안내로 수면다원검사를 통해 낮 시간대 홍 씨의 수면 패턴을 분석해 보았다.

“이분 같은 경우에는 생각보다 수면 장애가 심하지 않습니다. 수면상태도 1단계의 얕은 잠보다 정상인인 2단계 수면이 많은 편입니다. 3단계의 서파 수면이 많아야 깊은 잠을 자고 호르몬 분비가 되어 손상된 세포와 조직이 살고 면역기능이 강화되어 피로가 풀리게 되죠. 하지만 성인들의 경우 3단계 수면은 매우 적죠. 대부분 2단계인데 이분도 수면의 질이 아주 나쁘지는 않습니다.”

대부분의 밤샘 교대근무자들이 본인은 단지 잠이 좀 모자랄 뿐 큰 문제는 없을 것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신 원장은 수면장애로 인한 신체 이상이 있을 가능성이 크다고 경고한다. 신 원장은 홍 씨의 생활 습관 중에 커피를 줄이고 규칙적인 운동을 할 것을 권했다. 출퇴근 거리도 가급적 줄이고, 아침에 퇴근할 때 대중교통을 이용하며, 선글라스를 착용하라고 권했다. 그리고 신 원장은 홍 씨에게 몸에 이상이 생기면 바로 병원에 가서 검진을 받으란 말을 잊지 않고 했다.

꿈을 가지고 행복하게 살면 되지 않겠느냐는 홍 씨의 말에 신 원장은 쾌활한 웃음으로 답했다. 신 원장은 세상에 웃을 일이 별로 없고, 바쁘게 살아가는 세상이 불행하다고 했다. 그리고 자신이 임상에서 직접 밤샘 교대근무자들을 치료하며 집필한 <교대근무 수면장애 극복하기>란 저서를 선물로 주었다.

오늘 밤에도 밤샘 교대근무자들은 어김없이 일터로 향한다. 누군가는 해야 하는 일이기에, 남들이 다 잠의 달콤함에 빠져있을 때, 성실하게 자리를 지키며 밤을 지새우고 있다. 밤을 잊은 그들이 있기에 우리는 오늘도 편안히 잘 수가 있다. 모든 것을 잊고 말이다.


밤샘 교대근무자 수
면장애 예방법

1. 낮에 수면 시 완전히 차광하고, 소음도 차단한다.
2. 베개는 머리가 조금 뒤로 젖혀줘 목을 받치도록 하여 긴장을 완화한다.
3. 매트리스는 무게가 잘 분산된 것으로 자극이 없는 것을 사용한다.
4. 침실 온도
는 18~20˚c 서늘한 게 좋고, 침실 습도를 50% 내외로 유지한다.
5. 퇴근 시 졸음으로 인한 사고예방을 위해 출퇴근 거리를 짧게, 대중교통을 이용하라.
6. 아침 퇴근길에 선글라스를 착용하는 것도 좋다.
7. 퇴근 후 탄수화물이 많은
음식 적당량을 잠자기 1시간 전에 섭취하라.
8. 규칙적인 운동을 하라.
9. 가족이나 주변 지인과 좋은 인간관계를 유지하라.


기사제공 = 엠미디어(M MEDIA) 라메드 편집부(www.ramede.net)

* 본 기사의 내용은 동아닷컴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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