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메드] (인터뷰) 알고 보면 마음의 병, 폭식증 2

  • 입력 2014년 12월 9일 14시 24분


온 국민 정신건강 프로젝트
알고 보면 마음의 병, 폭식증 ‘두번째 이야기’

이보람 씨(가명, 24세)는 다이어트에 성공하고 난 뒤 몸과 몸무게에 집착하기 시작했다. 그러다 2년 전인 2012년부터 시작된 폭식증이 심해져 올해 3월부터 집에서 가까운 심리상담 전문병원을 찾아 치료를 받고 있다. 처음에는 가볍게 넘어갈 것이라고 생각한 증상은 시간이 지날수록 심각해졌다. 폭식증이 심해지자 우울증까지 왔다.

EDITOR 곽은영 PHOTOGRAPHER 권오경

Q. 폭식증이 시작된 원인이 뭐였나요?

제가 어렸을 때는 굉장히 통통한 편이었어요. 그러다 고3이 지났을 때 약 20kg 정도 체중감량을 했는데, 그 후 다시 살이 찔까봐 몸무게에 집착하기 시작했어요. 뭔가 먹을 때마다 스트레스를 받고, 사람들이 “괜찮아, 날씬해”라고 말을 해도 제가 보기엔 살이 찐 것 같았어요. 그렇게 스트레스를 받으니까 음식을 더 찾게 되더라고요. 많이 먹고 나면 죄책감에 화장실로 가서 토를 했어요. 그게 폭식증의 시작이었어요.

Q. 상담치료는 언제부터 받으시기 시작하셨나요?

증상은 2012년부터 시작됐는데 갈수록 증상이 더 심각해져서 치료의 필요성을 느끼고 올해 3월부터 병원에 다니고 있어요. 치료는 우울증과 식욕억제에 도움이 되는 약 처방과 심리 상담으로 이뤄져요. 치료를 시작한 지 8개월 정도 됐는데, 얼마 전부터는 상태가 많이 호전돼서 약 복용은 중단했어요.

치료 자체가 많은 도움이 된 것 같아요. 아직도 스트레스를 받으면 많이 먹는 증상이 있어서 폭식증이 완벽하게 사라졌다고 할 수는 없지만, 예전에 비해서 크게 좋아졌어요. 예전에는 심할 경우 일주일 내내 먹고 토하고를 반복했는데, 요즘은 그런 증상이 거의 한 달에 한 번 있을까 말까 해요. 이제는 많이 먹더라도 토하지는 않아요.

Q. 많이 먹을 땐 얼마만큼 먹었나요?

폭식증 증세가 가장 심했을 때는 미국에 있을 때였어요. 미국 과자봉지는 크잖아요. 그 과자를 식후에 한 봉지씩 먹었어요. 먹으면서 ‘이게 한 봉지에 1500kcal니까 내가 세 끼 칼로리를 한 번에 먹고 있는 거구나’ 하면서 계산을 해요. 그러면 또 스트레스를 받고 토를 하기 위해 화장실로 달려가요. 심할 땐 식후에 케이크 한 판을 다 먹었어요. 먹고 나면 ‘이게 다 살이 되겠지’라는 죄책감이 들어 못 견디게 힘들어요. 이런 생활의 반복이었어요.

Q. 상담이 많은 도움이 되던가요?

폭식증이란 게 음식과 나의 문제일 수도 있지만, 사실 심리적인 문제가 가장 커요. 스트레스를 받으면 건전한 방식으로 풀어야 하는데, 저 같은 경우는 가장 쉽게 접할 수 있는 음식을 통해 풀려고 한 거예요.

저는 특히 단 음식과 과자를 많이 찾았는데, 상담을 통해 내가 받는 스트레스를 객관적으로 자각하고 스트레스를 푸는 다른 방법에 대해 많이 의논했어요. 무엇보다 심리상담을 통해 다른 사람에게는 할 수 없는 속 이야기를 할 수 있어서 좋았어요. 이야기하는 것 자체로 심리가 안정되고 스트레스가 완화되는 것 같아요.

Q. 오늘도 인터뷰가 끝나고 나면 바로 심리상담을 하러 가실 텐데, 대화의 주제는 정해져 있나요?

어느 정도 정해져 있긴 한데, 항상 시작하기 전에 혹시 다른 것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은 게 있는지, 최근 경험 중 스트레스를 받은 문제가 있는지 물어보세요. 딱히 없으면 선생님이 제안한 주제로 이야기하고, 제가 풀고 싶은 문제가 있으면 그것에 대해서 이야기해요.

저는 주로 가족관계에서 받는 스트레스가 많아요. 알게 모르게 가족 내에는 신경 쓰이는 일들이 많이 일어나요. 그런데 그런 이야기는 다른 사람들과 나누기에는 민감한 부분이라 그동안은 속으로만 끙끙 앓고 있었어요. 상담을 통해 제가 “얼마 전 가족들과 이런 일이 있었다”고 말하면 선생님이 필요에 따라 코멘트를 해주거나 묵묵히 들어주는 편이에요.

Q. 가장 친밀하기 때문에 가장 많이 부딪치는 것이 가족이지요. 그 외에 상담 시에 어떤 고민을 나누나요?

주로 인간관계에 관한 것이에요. 상담할 때 제가 어떤 이야기를 꺼내면 선생님은 무엇 때문에 제가 그런 생각을 하게 됐는지, 그것을 바꾸려면 제가 어떻게 해야 할지에 대해 조언을 해주세요. 저 같은 경우 다른 사람이 부탁했을 때 거절을 잘 못해요. 내가 손해를 보더라도 그냥 들어주는 편인데, 껄끄러운 상황을 만들기 싫기 때문이에요.

내가 거절했을 때 상대가 어떤 반응을 보일지가 두렵고, 상대가 극단적으로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을 때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를 모르겠어요. 하지만 결국 거절하지 못한 부탁으로 제 시간을 뺏기고 몸이 피곤해지면 자학하게 되고 스트레스를 받아요.

이런 문제를 상담 때 말하자 선생님께서 “상대의 부정적인 반응을 견뎌야 한다”고 하셨어요. 내가 싫다고 했을 때, 그 사람은 내가 생각한 것처럼 극단적인 반응을 보일 수도 있고 보이지 않을 수도 있어요. 그냥 순순히 넘어갈 가능성도 많은데 단지 반응이 두려워서 제가 피해를 보는 건 비합리적인 거라고요. 힘들더라도 거절하는 법을 연습하고 불안함을 견디는 방법을 배워야 한다는 걸 알았어요.

Q. 상담 이후 주변의 부탁을 거절해보셨어요?

거절해봤어요. 솔직히 똑같이 불안하긴 했어요. ‘이래도 되나?’ 하는 생각도 들었는데, 막상 거절을 해보고 나니 생각했던 것만큼 힘든 게 아니었고 ‘거절해도 되는구나’ 하는 걸 깨달았어요. 물론, 지금도 제 의지대로 완벽하게 사람들의 부탁을 거절하지는 못해요. 그래도 예전보다 훨씬 나아진 것 같아요.

Q. 폭식증 극복에 도움이 되는 자신만의 마인드컨트롤 방법이 있나요?

폭식이 심할 때 행동의 순서는 이래요. 자연스럽게 머릿속에 음식이 떠올라요. 그다음에는 그 음식을 먹으면 안 된다는 생각이 떠올라요. 그래서 참아보려고 하지만 참는 건 오히려 역효과를 내요. 스트레스가 커지고 결국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많은 양의 음식을 먹게 돼요. 그리고 죄책감이 밀려오고 구토로 이어져요.

이런 과정을 선생님께 말씀드리니까 해결안을 하나 주셨어요. 뭔가 먹고 싶다는 생각이 들면 ‘먹으면 안 돼’라는 생각을 하는 게 아니라 ‘먹을 수도 있다’고 생각하라는 거였어요.

먹으면 안 된다고 스스로를 얽매고 있으면 더 큰 폭식을 하게 되기 때문에 먹고 나서 살이 찔 것 같으면 운동하고 그다음부터 조심하면 된대요. 스스로를 덜 학대하는 법을 배운 거지요. 확실히 먹으면 안 된다고 생각했을 때보다 먹어도 괜찮다고 생각했을 때 음식을 덜 먹게 돼요.

Q. 폭식증으로 힘들어하는 사람들에게 꼭 하고 싶은 말이 있으신가요?

저희 학교가 여대인데, 학부 1~2학년 때 화장실 벽에 “구토하지 마세요. 폭식증에는 심리적 치료가 필요합니다”라는 메시지가 붙어있는 걸 본적 있어요. 그때는 저런 사람들도 있구나, 참 이상하다고만 생각했는데, 그게 제 이야기가 될 줄은 몰랐어요. 저는 제게 폭식증이 생기기 전까지 폭식증 환자들은 비정상적인 사람들이라고 생각했어요.

다이어트에 대한 강박이 있으면 운동을 해서 살을 빼면 되지, 결국 의지력 부족이 불러온 증상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랬기 때문에 처음 제게 그런 증상이 시작됐을 때는 많이 당황스러웠어요. 내가 왜 이러지, 어디 아픈 건가, 죽을병에 걸렸나 등 별별 생각이 다 들어서 자꾸만 숨기게 됐지요.

그런데 숨기면 숨길수록 혼자 있게 되고, 음식도 혼자 먹게 되고, 보는 눈이 없다 보니 더 많이 먹게 되더라고요. 사람들과 만나서 살쪄서 스트레스 받는다고 말하면 이해하지를 못해요.

“너는 먹는 것도 없는 애가 왜 그래”라고 말해요. 폭식증은 숨기면 숨길수록 증상이 점점 더 심해져요. 그래서 누군가에게 말을 하고, 치료가 필요하면 치료를 받아야 해요. 친구들과 이야기하다 보면 이런 증상이 있는 친구가 종종 있어요. 그런데 치료를 받아야 한다는 것은 자각하지 못해요.

‘치료까지 필요해? 그냥 두면 낫지 않을까?’ 하지만 폭식증은 미루면 미룰수록 고생만 하고 상태만 더 심해져요. 저는 비슷한 증상을 갖고 있는 분들에게 심리상담이나 전문적인 치료를 받으라고 권해드리고 싶어요.

Q. 앞으로의 계획이나 꿈이 있다면?

이건 가끔 심리상담할 때도 이야기하는데, 사실 저는 아직 제가 뭘 하고 싶은지, 어떤 인생을 살고 싶은지, 제 꿈이 뭔지 잘 모르겠어요. 저는 현재 심리학 전공으로 대학원에서 공부하고 있어요. 지금은 심리공부를 하고 있으니까 공부를 계속하고 싶어요.

심리도 분야가 다양한데 저는 상담심리 쪽이 아니라 인지심리를 공부하고 있어요. 심리학이라는 공부도 처음에는 ‘나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겠지’라는 마음으로 시작했는데, 나중에는 저를 이해하는 걸 넘어서 타인을 이해하고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는 일로 확장됐으면 좋겠어요.


기사제공 = 엠미디어(M MEDIA) 라메드 편집부(www.remede.net ), 취재 곽은영 기자(kss@egihu.com) 촬영 권오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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