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기자의 인증샷] ‘미미’ 김지우 “내가 하의실종을 좋아하는 이유는”

“보시다시피 정신없죠 뭐. 이번 주 일요일에는 공연이 없어서 좀 쉬겠다 싶었는데, 무대인사하러 부산 내려가야 해요.”

야심한 시각. 뮤지컬 ‘렌트’ 공연을 마치고 인터뷰 장소인 서울 중구 신당동 떡볶이타운에 나타난 김지우는 놀랍게도 화장기 하나 없는 ‘생얼’이었다. ‘렌트’에서 섹시한 열아홉 댄서 ‘미미’를 맡고 있는 김지우는 영화 ‘가문의 영광4-가문의 수난’에서 ‘모리’로 출연했다.

개봉 초기인 까닭에 ‘렌트’ 스케줄을 피해 전국을 돌며 다른 배우들과 부지런히 무대인사를 하러 다니고 있단다.

‘렌트’는 뮤지컬 팬사이에서도 마니아적 성향이 강한 작품이다. 푸치니의 오페라 ‘라보엠’을 모티프로 요절한 천재 작곡가 조나단 라슨이 남긴 유작이다. 등장인물 대부분이 후천성면역결핍증후군(HIV) 환자들. “내일은 몰라, 오늘 사랑하자”를 외치며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얘기이다.

김지우는 2001년 MBC 드라마 ‘맛있는 청혼’으로 데뷔했지만 2005년 뮤지컬 ‘사랑은 비를 타고’ 이후 뮤지컬 무대에도 꾸준히 서 왔다. ‘금발이 너무해’, ‘싱글즈’, ‘젊음의 행진’ 등 주로 가벼운 작품에서 주연을 맡았다.

“‘미미’는 정말 하고 싶었어요. 연락이 왔을 때 ‘무조건 할 게요’했죠. 그런데 막상 연습에 들어가니 막막하더라고요. 괜한 욕심을 부렸나 싶기도 하고. (박)칼린 선생님이 ‘그런 걱정할 시간에 연습해!’하고 버럭하셨죠.”

‘렌트’는 음악감독이 본업인 박칼린이 연출을 맡아 화제가 된 작품이기도 하다. 김지우는 “칼린 선생님은 첫 인상이 굉장히 무서웠는데, 연습을 하면서 의외의 모습을 많이 봤다. 이런 말은 좀 그렇지만, 귀여우시다”라며 하하하 웃었다.

시작은 방송이었지만 김지우는 “원래 뮤지컬 배우 지망생”이라고 했다. 중학생 시절부터 뮤지컬을 좋아하는 어머니를 따라 공연장을 다녔다. 첫 뮤지컬인 ‘그리스’를 보면서 ‘나는 객석에 앉아 있으면 안 될 사람’이라는 느낌이 팍 왔단다.

고1 때 명동에서 길거리 캐스팅돼 연예활동을 시작했다. 딸을 첼리스트로 키우고 싶어 했던 어머니의 반대가 심했다. 어머니는 딸의 눈앞에서 첼로를 부숴버렸다.

모든 것을 접고 가족과 함께 미국으로 떠났던 김지우는, 그러나 결국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 미국 고등학교 입학식 날 홀로 한국행 비행기를 탔다. 지금은 가족 모두 최고의 관객이자 지원군이다.

“가끔 ‘어, 이제 내가 진짜 뮤지컬 배우가 된 건가’싶은 생각이 들어요. 물론 연예인 활동도 소중하죠. 모두 잘 하고 싶어요. 지켜 봐 주세요.”

○ 못 다한 이야기

▲ 춤, 노래, 연기에 모두 능숙한 윤공주와 ‘미미’ 더블 캐스팅이라는 점이 부담스럽지는 않은지요.

“걱정이 많았죠. 저보다 정말 잘 하거든요. 제가 약간 힘들어서 호흡이 딸리는 부분도 언니는 너무 스무드하게 불러요. 부럽죠. 나도 그렇게 하고 싶은데. 하루는 언니한테 이런 얘기를 했더니 ‘내가 안 갖고 있는 걸 너는 갖고 있고, 네가 안 갖고 있는 걸 내가 갖고 있는 거야. 서로 다르니까 우리를 더블로 뽑아 놨을 거다’라고 했어요. 그 얘기를 듣고 용기를 얻었죠. 그런데 언니는 잘 하는 게 그냥 잘 하는 게 아니에요. 진짜 열심히 해요. 남들 밥 먹을 때, 잘 때도 연습하죠. 반성 많이 했어요. 나는 진짜 열심히 하는 게 아니었구나 … 저렇게 잘 하는 사람도 저렇게 하는데 …. 사람이 누군가를 평가한다는 건 좀 그렇지만, 누가 평가하든 언니는 ‘열심히 하면서 잘 하는 배우’로 평가할 것 같아요.”

▲ 역대 쟁쟁한 여배우들이 ‘미미’를 거쳐 갔죠. ‘김지우표 미미’는 어떤 느낌일까요.

“(정)선아가 ‘미미’로 데뷔한 게 열아홉 살 때였죠. 극중 ‘미미’가 열아홉이고요. 선아한테 전화를 해서 ‘너 이때 뭘 안다고 그렇게 했니?’하고 물어봤어요. 자기도 모르겠대요. 무슨 정신으로 했는지. 저는 당당하고 싶었어요. 당당한 미미. 그런데 연습을 하면서 어느 순간 당당한 미미가 아니라 ‘당당한 척하는’ 미미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상처가 많은데 아닌 척하고. 자꾸 거짓말하는 느낌. 칼린쌤과 정말 얘기를 많이 나누었죠. 칼린샘은 강한 미미를 원했어요. 고난과 역경을 거친, 열아홉살이지만 해탈에 이른 경지. 전 칼린샘에게 ‘그래도 아직 여자고, 어린애인데 … 무조건 강하게만 나갈 수는 없을 것 같다’라고 했죠.”

▲ 뮤지컬 데뷔 때 얘기를 조금 더 해 볼까요.

“사무실 실장 언니가 ‘사랑은 비를 타고’ PD님과 친분이 있었어요. 하루는 저한테 ‘새로운 유미리를 찾고 있다니 오디션 한 번 볼래?’하더라고요. 제가 노래를 좋아하고 뮤지컬 하고 싶어 하는 걸 알고 있었거든요. 오디션을 봤는데 한 달이 지나도 연락이 없는 거예요. ‘떨어졌구나’ 생각했죠. 그런데 연락이 왔어요. 오디션을 또 보자고. 하고 싶으니까 가서 또 봤죠. 그런데 한 달 동안 또 연락이 없어요. 어린 마음에 ‘사람을 오라가라해놓고 이게 뭐냐. 정확하게 얘기를 해 줘야지. 난 애간장 타 죽겠는데’ 싶었죠. 그리고 또 연락이 왔어요. 마지막으로 한 번 더 오디션을 하자고. 가서 죽기 살기로 했죠. 나중에 알고 보니 내부적으로 다 반대했대요. 유일하게 한 분만이 ‘그래도 한 번 만들어보자’하셨다네요. 그렇게 해서 뮤지컬을 하게 된 거죠.”

▲ 연기자니까 연기는 문제가 안 되겠지만, 노래는 원래 잘 하는 편이었나요.

“제가 사립초등학교를 다녔어요. 엄마들 치맛바람이 장난이 아닌 곳이었죠. ‘금발이 너무해’를 같이 한 (이)하늬가 저와 같은 학교였어요. 학교에서는 교내 가창대회, 영어말하기 대회, 바이올린대회 같은 걸 자주 열었는데 1학년 때 가창대회 나가서 대상을 받은 거죠. 아직도 기억이 나요. 노래하고 ‘안 됐을 거다’하고 엄마, 아빠랑 집에 왔거든요. 제 본명이 김정은인데, 아무리 ‘대상 김정은!’하고 외쳐도 수상자가 없었던 거죠. 어쨌든 어려서 상을 받으니까 괜히 자신감이 붙었나 봐요. 그런데 사실은 제 남동생이 저보다 노래를 더 잘 해요. 키는 186에 덩치도 큰 데, 목소리는 성시경이에요. 하하하! 지금 미국에서 사업을 하고 있어요.”

▲ 드디어 본인이 했던 뮤지컬 ‘싱글즈’의 나이(29세)가 되었군요. 올해도 몇 달 안 남았는데, 뭔가 노력(?)은 하고 있습니까?

“그러네요. 딱 스물아홉. 근데요 … 느낌이 별로 없는 것 같아요. 무뎌서 그런가. 진짜 중요한 건, 동생이 결혼한다니까 엄마가 조급해지셨어요. 빨리 남자 만나라고. 친구분들에게 이것저것 알아 오시고 난리가 난 거예요. 입버릇처럼 ‘외로워, 외로워’하지만 사실은 같이 공연하는 언니, 오빠들이랑 놀러 다니는 게 더 재밌어요. 다들 시집 장가가서 같이 놀 사람이 없어져봐야 하나. 아직까지는 놀아줄 사람 많아요. 제가 (남자가) 없는지가 좀 됐더니… 우하하하!”

▲ ‘미미’는 댄서죠. 당연히 춤을 잘 추어야 합니다. 춤에도 소질이 있는 편인가요?

“(최)인숙쌤(안무감독)께 정말 감사드려요. 저는요, 어려서부터 안무의 기본기가 있는 사람이 아니잖아요. 턴도 못 돌아요. 턴 돌다 토할 뻔한 사람이에요. 턴 연습하다가 30분씩 누워 있고. (윤)공주 언니는 한 번 보면 다 따라 하잖아요. 사실 못 하면 쌤이 포기하실 줄 알았어요. ‘안무 (쉽게)바꿔줄게’하실 줄 알았죠. 그런데 끝까지 절 붙잡고 연습을 하셨어요. 심지어 쌤 쉬는 날인데도 나오셔서. 어제까지도 공연장에 오셔서 따로 가르쳐주실 정도였죠. 모셔놓고 절해야 한다니까요. ‘렌트’는 지금까지 제가 한 작품 중 춤이 가장 어려워요. ‘금발이 너무해’보다 더 힘들어요.”

▲ 트위터를 통해 한 의상디자이너께서 ‘평소 즐겨입는 패션 스타일’에 대해 질문을 하셨는데요. 설마 ‘미미’ 의상을 즐겨 입는 건 아니겠죠?

“우하하! 설마요. 전 되게 편안한 스타일을 좋아해요. 막 꾸미고 그런 스타일은 아니에요. 입어서 편한 스타일. 저의 콤플렉스가 있기 때문에 맞춰서 가려입죠. (-콤플렉스가 뭡니까?) 하체에 비해 상체에 살이 찌는 스타일이에요. ‘젊음의 행진’할 때부터 제 별명이 ‘지우새’였어요. 상체는 이런데, 다리는 가늘어서. 참새가 뛰어다니는 것 같다고. 그래서 상체 딱 붙는 거 안 입어요. 상체는 항상 편하게, 하체는 타이트하게. 제가 제일 좋아하는 것은 하의실종 패션이랍니다. 제 체형을 가장 커버해줄 수 있는 패션이니까요. 하하하!”

▲ ‘금발이 너무해’ 때 ‘엘은 딱 김지우’란 얘기가 많았죠. 그런 점에서 어두운 ‘미미’는 좀 거리감이 느껴지는데요.

“제가 ‘엘’처럼 진짜 밝아요. 근데요, 이면에 굉장히 우울한 면도 있어요. 친한 언니들이 저보고 조울증 환자같다고 해요. 제가 여자B형입니다. 감정기복이 엄청 심해요. 아침에 좋았다가 점심에 바빠지고, 그랬다가 다시 저녁에 좋아지고. 옆에 누군가 사람이 있으면 안 그래요. 힘을 받아요. 그런데 혼자 있으면 한없이 땅 파고 들어가죠. 저는 가족이 모두 미국에 있어요. 엄마가미국과 한국을 왔다갔다하시죠. 저를 혼자 두고 가실 때 늘 걱정을 하세요. 어려서부터 키운 강아지도 제 성격을 알아요. 집에 혼자 가만히 있으면 와서 발로 저를 자꾸 긁어요. 놀자고. 가끔 속상해서 울고 있으면 와서 제 팔 위에 발을 올려놓고 가만히 쳐다봐요. 밝은 면과 어두운 면이 다 있어서인지, 저를 보고 ‘밝은 애’라는 분과 ‘별로야 …’하는 분들이 확 나누어져요.”

▲ 사랑하는 스타일은 ‘엘’과 ‘미미’ 중 어느 쪽에 가까울까요.

“‘엘’ 스타일 같아요. 좋아하면, 그 사람 밖에는 아무 것도 안 보이죠. 좋으면 좋고, 보고 싶으면 봐야하고. 엄마가 저보고 철이 안 들어서 그렇대요.”

▲ “내가 뮤지컬 배우 다 됐구나” 싶었던 때라면 언제였을까요.

“‘금발이 너무해’ 시즌2를 하면서였죠. 그러니까 작년 말이네요. ‘어, 이제 나 뮤지컬배우인가? 맞나?’싶었어요. 본의 아니게 제가 초반에 3주 동안 ‘원캐(원캐스팅)’로 서게 됐거든요. 못한다고 했어요. 말이 안 된다 … 날 죽여라. 바다(최성희) 언니는 ‘브로드웨이 42번가’ 지방공연이 있고, 루나는 후반에 투입되기로 돼 있어서 연습이 충분하지 않은 상황이었거든요. 그런데 웃기게 정말 3주가 가더라고요. ‘어 … 하게 되는구나. 나 뮤지컬 배우 된 건가?’. 이렇게 된 거죠.”

▲ 무대에서 공연할 때 관객의 시선을 의식하는 편인지요. 예를 들어 지인이 왔다거나 하면 ….

“전 봐요. 쳐다봐요. 기자님도 오늘 무대 올라가자마자 발견했어요. 전 관객들과 눈 마주치는 일에 별 부담 안 가져요. 오히려 재밌어요. 제가 아는 사람이 왔을 때 쳐다보면 오히려 그쪽이 당황하거든요. 전 그게 재밌어요. ‘잘 보고 있나’, ‘집중해서 보고있나’ 살펴보죠. 다 보여요.”

스포츠동아 양형모 기자 ranbi@donga.com 트위터 @ranbi36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