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동아 x 고려대학교] 고려대학교는 연구부총장 직속 스타트업 창업·보육 기관 ‘크림슨창업지원단’을 운영합니다. 크림슨창업지원단과 함께 성장하며 변화와 혁신을 꿈꾸는 고려대학교 소속 유망 스타트업을 소개합니다.
숙면은 개인의 문제로 취급돼 왔다. 피곤하면 일찍 취침하거나 커피를 줄이면 된다는 식으로 대응했다. 하지만 수면 부족은 더 이상 개인의 컨디션 관리로만 치부하기 어렵다.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가 2022년 행동 위험 요인 감시 시스템(BRFSS) 자료를 바탕으로 정리한 통계에 따르면, 성인 36.8%가 충분한 수면을 취하지 못한 것으로 조사됐다.
불면증도 예외가 아니다. 미국수면의학회(AASM)가 2024년 5월 실시한 설문 자료에 따르면, 미국 성인 12%가 만성 불면증 진단 경험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AASM 측은 일시적 불면 증상까지 포함하면 30~35% 수준으로 확대된다고 덧붙였다.
이처럼 스트레스와 불면의 늪에 빠져 숙면을 갈망하는 사람들이 증가하자, 정보기술(IT)을 접목해 수면의 질을 끌어올리는 슬립테크(SleepTech) 시장이 성장세를 보인다. 시장조사기업 글로벌 마켓 인사이트(Global Market Insights)는 2025년 293억 달러 규모였던 전 세계 슬립테크 디바이스 시장이 2034년에는 약 1347억 달러 규모가 될 것으로 내다봤다.
노승표 슬립웨이브 대표 / 출처=IT동아
문제는 슬립테크 관련 제품·서비스 다수가 수면 질 측정에 머문다는 점이다. 얼마나 잘 잤는지 알려주지만, 그 정보를 어떻게 활용해야 하는지는 사용자 몫으로 남겨졌다. 하지만, 슬립웨이브는 측정부터 수면 유도까지 해결하기 위한 솔루션을 제안하며 슬립테크 시장의 변화를 이끈다. 어떤 기술을 가지고 최적의 수면 환경을 만드는 것일까? 노승표 슬립웨이브 대표를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수면 장애 해결에 대한 생각이 창업으로 이어지다
“기존의 수면 측정 기기들은 사용자에게 ‘어제 잠을 설쳤네요’ 정도의 피드백만 줄 뿐입니다. 하지만 사용자에게 필요한 것은 결과 보고서가 아니라 당장의 숙면이죠. 우리는 뇌가 빛과 소리에 가장 민감하게 반응한다는 원리를 이용합니다. 뇌파를 수면 모드로 동조시켜 자연스럽게 깊은 잠에 빠져들게 만드는 것이 슬립웨이브의 목표입니다.”
헬스케어 스타트업 슬립웨이브는 2020년 LG전자 사내 벤처 프로그램에서 출발했다. 노승표 대표는 LG전자에서 모바일과 웨어러블 분야를 연구한 엔지니어 출신으로 슬립테크 시장의 한계를 극복하고자 창업에 나섰다. 구성원 다수가 LG전자에서 15년 이상 함께 일한 베테랑 엔지니어일 정도로 하드웨어·소프트웨어 개발 능력을 갖춘 스타트업이다.
팀원 중 대부분이 산전수전을 다 겪은 기술 전문가들이다 보니, 하드웨어 설계부터 소프트웨어 알고리즘 개발, 앱 서비스 구축까지 외부 의존 없이 독자적으로 수행할 수 있는 탄탄한 인프라를 갖췄다. 아이디어만 앞세운 스타트업과 다른 실행력을 보장하는 슬립웨이브만의 핵심 역량이다.
노승표 대표는 편하게 숙면이 가능하도록 돕는 방법에 주목했다. 웨어러블 기기 대부분 수면 패턴을 꼼꼼하게 기록하지만, 그 다음은 없었다. 수면에 대한 궁금증이 해결되지 않은 채 데이터만 계속 쌓이는 구조인 셈이다. 측정 데이터를 토대로 수면 환경을 조절, 수면의 질을 높이는 솔루션 개발에 집중한 이유다.
빛과 소리로 숙면을 위한 ‘페이스메이커’ 만든다
슬립웨이브의 첫 번째 결과물은 완전 무선 이어폰 형태의 ‘포미버즈(For me buds)’다. 이 제품은 일반적인 무선 이어폰처럼 음악을 들려주지만, 심박 측정 센서를 품어 기술적 차별화를 구현했다. 사용자가 귀에 꽂고만 있어도 실시간으로 심박 변이도(HRV)와 긴장도, 스트레스 지수를 측정한다.
“포미버즈는 사용자의 상태를 실시간으로 모니터링하고, 그 데이터에 맞춰 뇌파를 안정시키는 특수 사운드를 즉각 생성해 들려줍니다. 미리 저장된 백색 소음을 재생하는 게 아니에요. 사용자의 심박이 빠르면 그에 맞춰 페이스를 조절하며 주파수를 차근차근 내려주는 ‘페이스메이커’ 역할을 수행합니다. 사용자의 생체 신호와 기기가 실시간으로 대화하며 수면의 길을 안내하는 셈이죠.”
빛과 소리로 뇌파를 안정시킨다는 원리는 오래 전부터 사용된 개념이다. 과거 국내에서 큰 인기를 끌었던 뇌파 사운드 기반 제품들과 같은 맥락이다. 다만 슬립웨이브가 다른 점은, 사전에 정해진 음원을 틀어주는 것이 아니라 사용자의 실시간 생체 신호를 읽어 맞춤형 사운드를 생성한다는 점이다.
슬립웨이브는 ‘폐쇄 루프(Closed-loop) 시스템’을 도입해 차별화를 꾀했다. 대부분의 수면 측정 기기가 측정·결과 보고로 이어지는 단방향 구조다. 반면, 슬립웨이브는 측정·실시간 분석·맞춤형 자극·재측정의 유기적인 순환 방식을 도입했다. 사용자가 잠들기 위해 누웠을 때, 뇌의 각성도가 높으면 이를 감지해 더 낮은 주파수의 소리를 들려주고, 심박이 안정되면 서서히 소리를 줄이거나 수면 유도 신호로 전환한다. 이러한 동적인 대응은 사용자가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 자연스럽게 수면의 단계로 진입하게 돕는다.
슬립웨이브의 포미버즈 이어폰. 심박 측정 센서 기술을 활용한다 / 출처=슬립웨이브
또한, 하드웨어 제조 역량을 바탕으로 한 높은 심박 측정 정확도는 슬립웨이브의 자부심이다. 노승표 대표는 “우리는 모바일 기기를 수천만 대씩 설계하고 양산해본 경험이 있습니다. 미세한 생체 신호를 잡음 없이 걸러내고 이를 유의미한 데이터로 변환하는 노하우는 단기간에 따라잡을 수 없는 슬립웨이브 만의 무기입니다”라고 설명했다.
최근 슬립웨이브는 이 기술을 이어폰이라는 틀 밖으로 확장하고 있다. 이어폰을 끼고 자는 것이 불편한 이들을 위해 스마트 워치 데이터와 연동해 스마트폰 스피커로 사운드를 송출하거나, 특수 파장의 조명을 제어해 수면 루틴을 만드는 플랫폼으로 진화 중이다.
멜라토닌 분비를 방해하지 않는 조명 솔루션은 침실 공간 전체를 수면 친화적으로 바꾸기 위한 슬립웨이브의 미래 먹거리 중 하나다. 현재 호반건설과 협업해 수면 특화 IoT(사물인터넷) 공간 구성을 위한 개념 검증(PoC) 작업을 진행 중이다. 조명·소리·공조·온도를 통합 관리하는 플랫폼을 호텔 및 리조트 수면 객실에 적용하는 구조다.
슬립웨이브가 구축한 수면 케어 워크플로우 / 출처=슬립웨이브
노승표 대표는 집중력 강화 부문에도 주목했다. 뇌파 안정 기술을 반대로 적용하면 집중력 향상으로 이어진다는 점에 착안했다. 슬립웨이브는 집중력 향상 모드에 대한 임상 검증을 완료했으며, 진학사와 함께 제품 개발을 진행 중이다.
브랜드 인지도 구축은 스타트업의 현실적 고민
아무리 뛰어난 기술도 시장에서 선택받지 못하면 무용지물이다. 노승표 대표는 창업 후 가장 큰 어려움으로 ‘신뢰 구축’을 꼽았다. 신생 스타트업으로써 소비자에게 직접 브랜드를 알리는 B2C(소비자 대상 사업) 시장은 만만치 않은 도전이었다.
“소비자들은 대기업의 브랜드는 믿지만, 스타트업의 혁신 기술에는 의구심을 갖습니다. 정말 효과가 있냐는 의문에 답하기 위해 우리는 더 많은 데이터가 필요했습니다. 수면은 개인차가 크기 때문에 보편적인 신뢰를 얻는 과정이 매우 고단했습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노승표 대표는 정공법을 택했다. 기술력을 증명하고자 대기업과의 협업을 통한 B2B(기업 대상 사업) 레퍼런스 구축에 집중했다. 분당서울대병원을 포함한 의료기관과의 임상 협력으로 객관적인 데이터도 쌓았다. 임상 평가 결과, 포미버즈 사용 시 입면 시간이 기존 ASMR 사용자 대비 약 30% 이상 단축되고, 수면 중 깨는 횟수가 유의미하게 감소하는 성과를 거뒀다.
사람이 바로 체감하는 기술에 집중할 것
슬립웨이브는 2024년 대비 두 배 이상 매출을 기록하며 꾸준한 성장세를 이어가는 중이다. 매출 구조는 포미버즈 제품 판매와 소프트웨어 솔루션 매출이 6:4 정도다. 소프트웨어 솔루션 매출은 타 이어폰 제조사에 측정·사운드 알고리듬을 공급하거나, LG전자 가전 제품군에 콘텐츠 패키지를 제공하는 방식으로 이룬 성과다.
슬립웨이브의 기술적 도약과 시장 안착에는 고려대학교 크림슨 창업지원단의 초기창업패키지 프로그램이 든든한 버팀목이 됐다. 슬립웨이브는 프로그램을 통해 특허 출원 지원과 두바이 전시회를 포함한 해외 진출 기회를 얻었다. 인플루언서 마케팅 지원은 부족했던 브랜드 노출을 보완하며 제품 판매 실적을 올리는 성과로 이어졌다.
“스타트업이 시제품을 완성하고 실제 판매 경로를 찾는 과정은 가시밭길입니다. 고려대학교 크림슨창업지원단은 슬립웨이브에 마케팅 전략 수립과 투자 유치 멘토링을 제공해 주었습니다. 인플루언서 마케팅과 해외 전시회 참가 지원 역시 전 세계 수면 시장 트렌드를 파악하고 수면 관리 기술의 수출 가능성을 확인한 소중한 기회였습니다.”
노승표 대표는 “일회성 지원에서 끝나는 게 아니라, 스타트업이 시장에서 자생하기 위한 생존 근육을 키워주는 데 많은 도움을 줬습니다”라고 말했다.
노승표 슬립웨이브 대표 / 출처=IT동아
슬립웨이브는 수면에서 멘탈 케어 전반으로 사업 영역을 확장할 계획이다. 수험생 집중력 향상 사운드, 직장인을 위한 짧고 깊은 휴식(Power Nap) 솔루션 구축 등이 그 예다. 밤의 평화뿐만 아니라 낮의 활력까지 책임지는 라이프 케어 기업으로 거듭나겠다는 포부다.
그럼에도 기술에만 매몰되는 기업이 되지 않겠다는 게 노승표 대표의 설명이다. 그는 “한 분야에 오래 매달리면 기술 자체가 목적이 되기 쉬워요. 얼마나 정교하게 측정하는지, 얼마나 많은 데이터를 분석하는지에 매몰되면 정작 사용자가 뭘 원하는지 놓칠 수 있거든요. 슬립웨이브가 만드는 건 결국 사람이 잘 자게 도와주는 것입니다. 그게 느껴져야 해요.”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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