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황장애 미룰수록 치료 어려워져… “두려워 말고 맞서라”[베스트 닥터의 베스트 건강법]

  • 동아일보
  • 입력 2023년 12월 23일 01시 4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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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수희 서울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발작했다고 모두 공황장애 아냐… 한 달 이상 지속 반복되면 진단 내려
‘가짜’ 현실에 대한 두려움-공포가 핵심… 술 공황발작 유발할 수 있어 줄여야
다이어트-ADHD 약도 신중히 먹어야… 약물-인지행동치료 병행 효과 있어

최수희 서울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공황장애의 핵심은 발작보다는 발작에 대한 두려움과 공포라고 말했다. 그 두려움과 공포로 
인해 일상생활이 어려워진다는 뜻이다. 최 교수는 공황장애를 미룰수록 치료 결과가 좋지 않을 수 있어 신속하게 의사를 찾을 것을 
권했다. 서울대병원 제공
최수희 서울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공황장애의 핵심은 발작보다는 발작에 대한 두려움과 공포라고 말했다. 그 두려움과 공포로 인해 일상생활이 어려워진다는 뜻이다. 최 교수는 공황장애를 미룰수록 치료 결과가 좋지 않을 수 있어 신속하게 의사를 찾을 것을 권했다. 서울대병원 제공
50대 여성 A 씨는 5층에 산다. 엘리베이터가 없어 계단으로 오른다. 언젠가부터 4층까지 오르면 심장이 두근거렸다. 처음에는 대수롭지 않게 여겼지만, 점차 심장이 튀어나올 것 같았다. 심장마비에 대한 두려움도 생겼다. ‘이러다가 죽는 거 아냐?’라는 생각도 했다. 꼬리에 꼬리를 물던 생각은 ‘아무도 내 시신을 찾지 못해 백골이 되어서야 발견되는 건 아닐까?’ 하는 상상으로 이어졌다. 이후 A 씨는 웬만하면 외출을 삼갔다.

50대 남성 B 씨는 얼마 전에 극심한 어지럼증을 느꼈다. 바닥이 천장으로 솟구쳤다. 사물의 경계가 뭉개졌다. 멀미와 구역질이 느껴졌다. 말도 어눌해진 것 같았다. B 씨는 뇌졸중(뇌중풍)이나 심장질환을 의심하며 응급실을 찾았다. 하지만 검사 결과 아무런 이상이 없었다. 이후 증세가 천천히 사라지면서 B 씨는 예전의 몸 상태로 돌아가고 있다.

A 씨와 B 씨가 보인 증세는 비슷하지만 병명은 다르다. 최수희 서울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A 씨는 공황장애다. B 씨는 불안증일 수도 있고, 자율신경계 문제일 수도 있다”고 말했다.

● 모든 발작이 공황장애로 이어지진 않아
갑자기 심장이 빨리 뛰거나 어지럼증이 나타나며, 두통이 생기거나 죽을 것 같은 공포를 느끼는 것은 모두 ‘발작’ 증세다. 엄밀히 말하면 이런 반응 자체가 병은 아니다. 스트레스 상황에 놓이게 되면 우리 몸이 취하는 정상적인 ‘전투태세’이기도 하다. 다만 그 정도가 심하면 잘 관찰해야 한다.


모든 발작이 공황장애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간단한 테스트를 해 보자. 13개의 발작 증세 가운데 4개 이상이 나타나고, 10분 이내에 최고조에 이르며, 30분 이내에 사라지면 공황과 관련된 ‘공황발작’이다. 공황발작은 증세가 지속되는 시간이 짧아 응급실에 도착하면 사라질 때가 종종 있다. ‘공황발작 자가진단표’를 참고하면 된다.

다른 병이 원인이 되어 공황발작과 유사한 형태의 발작이 나타날 수 있다. 최 교수는 “천식, 갑상샘(갑상선) 기능 항진증의 경우 교감신경계가 지나치게 활성화해서 가슴 두근거림, 호흡곤란 등의 발작 증세가 나타날 수 있다”고 말했다. 최 교수에 따르면 우울증도 발작을 유발할 수 있다. 자율신경계에 이상이 생겼을 때도 공황발작과 유사한 발작이 일어난다. 다만 이 경우에는 감염, 눈물이나 땀 마름, 기립성 저혈압 등이 동반한다. 따라서 공황발작인지, 다른 질병에 의한 발작인지를 먼저 확인해야 제대로 치료할 수 있다.

● 공황장애 핵심은 ‘가짜에 대한 두려움’
공황발작이 나타났다고 해서 곧바로 공황장애 진단을 받는 건 아니다. 공황발작이 한 달 이상 반복적으로 나타나면 공황장애로 진단한다. 최 교수는 “발작도 문제지만, 발작이 생길까 봐 두려움과 공포를 느끼다가 결국에는 일상생활이 어려워지는 질병”이라고 정의했다.

최 교수는 곰을 만난 상황을 예로 들었다. 이 경우 심장이 뛰는 건 당연하다. 그것은 전투태세를 갖추라는 뇌의 정상적인 경고음이다. 하지만 곰을 만나지 않았고, 만날 가능성이 없는데도, 곰을 만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심장 박동이 치솟는다면? 그것이 바로 공황발작이다. 일어나지도 않은 ‘가짜’ 현실에 대해 경고음이 울린 것. 최 교수는 “이처럼 경고음 장치가 고장 나 두려움을 느끼는 게 공황장애의 핵심”이라고 말했다.

이 두려움과 공포는 행동을 위축시키고 변화시킨다. 그 결과 일상생활을 어렵게 한다. 이를테면 지하철에서 질식할 것 같은 공황발작을 여러 번 했다면 지하철 탑승을 꺼리게 되고, 나중에는 ‘지하철을 타면 죽어’라고 생각하며 공포에 빠진다. A 씨가 외출을 삼가고 자신을 방 안에 스스로 가둔 것도 같은 이유다. 반면 B 씨는 점차 증세가 개선됐고, 발작이 반복되지 않았기에 공포나 두려움을 느끼지 않았다. 따라서 공황장애 진단을 받지 않은 것이다.

최 교수는 “공황장애 환자의 상당수가 광장공포증에 빠진다”고 말했다. 여러 사람이 있는 곳에 섣불리 가지 못한다는 뜻이다. 이유는 다양하다. 발작이 일어나는 상황이 창피해서 그럴 수도 있고, 쓰러진 자신을 사람들이 발견하지 못해 죽을지 모른다고 생각해서일 수도 있다. 이들은 영화관이나 콘서트장에 가도 언제든 빠져나올 수 있는 맨 바깥 자리에만 앉는다. 이런 상태인지라 직장생활이나 사회생활이 무척 어려워진다.

● 공황장애를 유발하는 요소들
한때 연예인들이 이 병에 많이 걸렸기에 ‘연예인 병’이라 여겨졌다. 전혀 그렇지 않다. 일반적으로 나이와 상관없이 병에 걸릴 수 있다. 다만 20대와 30대의 젊은층, 40대의 중년 초반에 많이 발병하는 편이다. 또 남성보다는 여성 환자가 많다.

왜 공황장애에 걸리는지, 공황발작은 어떤 상황에서 발생하는지에 대해서는 명확하게 밝혀진 게 없다. 다만 공황발작이 일어나기 전에 극심한 스트레스와 만성피로를 경험한 비율이 70%를 넘는다는 연구 결과가 있는 만큼 스트레스와 피로에 대한 적절한 대비가 필요하다.

술은 공황장애 위험을 높인다. 알코올이 뇌 기능을 떨어뜨리기 때문이다. 최 교수는 “술 먹으면 목소리가 커지니까 뇌가 활발히 활동한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실제로는 뇌 기능이 떨어지면서 경고음 장치가 고장 나기 쉬운 환경이 된다”고 말했다. 그런 환경에서 잠을 못 자거나 초조한 순간, 스트레스가 커지는 상황에 맞닥뜨리면 공황발작이 일어난다. 1회 발생하면 반복될 가능성은 커져서 공황장애로 악화할 확률이 높다.

다이어트약을 먹을 때도 신중해야 한다. 이런 약물이 교감신경계를 지나치게 활성화하면서 발작을 유발할 수 있기 때문이다. 만약 약물을 끊었을 때 발작 증세가 사라진다면 불안증에 더 가깝다. 그래도 증세가 계속된다면 이미 공황장애로 악화했다고 볼 수 있다. 신경안정제를 먹다가 끊을 때도 금단 증세와 함께 비슷한 상황이 나올 수 있다. 이럴 경우 의사와 상의하는 게 좋다.

카페인 함량이 높은 음료를 자주, 많이 마실 때도 똑같은 이유로 공황발작이 생길 수 있다. 마찬가지로 집중력을 높이거나 살을 빼겠다며 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ADHD) 치료제를 남용할 때도 뇌에 영향을 미쳐 공황장애를 일으킬 수 있다. 최 교수는 “불필요한 음식이나 약물은 무조건 피해야 공황장애의 발생 위험을 조금이라도 줄일 수 있다”고 말했다.

● 치료는 어떻게 하나
약물 치료가 일반적이다. 대체로 한두 달 이내에 효과가 나타난다. 다만 이후로도 6개월 정도는 용량을 낮춰서 약을 먹어야 한다. 최 교수는 “신경전달물질을 조절해 주는 약을 계속 먹지 않으면 재발할 수 있다. 증세가 심했다면 약 복용 기간은 1년 내외로 길어질 수도 있다”고 말했다.

약물치료 외에 인지행동치료도 함께 한다. ‘가짜’에 대한 두려움이 병의 원인이란 점을 환자 스스로 인식하게 하고 행동 변화를 유도하는 방법이다. A 씨에게도 이 치료가 꽤 도움이 됐다.

A 씨는 계단 오를 때 발작이 일어나자, 그 후로 ‘계단 오르기=심장마비’라는 식으로 왜곡되게 인지했다. 급기야 외출을 포기했다. 최 교수는 A 씨에게 △평소에도 활동하면 심장 박동수가 높아질 수 있다는 점 △계단 오를 때 심장마비로 사망할 확률이 지극히 낮다는 점을 일깨워 줬다. 또 의료진이 함께 계단이나 엘리베이터를 오르면서 A 씨가 불필요한 걱정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치도록 했다. 이런 훈련을 통해 A 씨는 두려움과 공포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공황장애 탈출의 계기가 만들어진 것.

최 교수는 “공황장애 환자의 30%가 치료 후에 확실히 좋아진다. 나빠지는 확률은 10%가 안 된다”고 말했다. 공황장애의 경우 경증이냐 중증이냐를 구분하는 것도 큰 의미가 없다. 중요한 것은 방치한 기간이 길면 치료 기간도 그만큼 길어진다는 점이다.


김상훈 기자 corekim@donga.com
#공황장애#가짜 현실#두려움#치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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