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스타트업] 플라잎 정태영 대표 "산업 현장의 반쪽짜리 자동화, 로봇 AI로 해결합니다"

동아닷컴 입력 2021-10-22 17:44수정 2021-10-23 1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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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남산업진흥원] 플라잎 (1)

성남시가 2001년에 설립한 성남산업진흥원은 지난 20년간 성남의 중소·벤처기업이 성장할 수 있도록 기술 개발, 네트워크, 입주 공간 등을 지원하는 기업 지원 전문 기관입니다. 성남시가 약 6만 6천여 개의 기업과 46만여 명의 근로자, 창업한 벤처 기업 수가 1631개에 이르는 경쟁력을 갖출 수 있었던 배경엔 성남산업진흥원의 다양한 지원이 있습니다.

이러한 성남산업진흥원이 2003년부터 진행 중인 ‘성남창업경연대회’(도전! S-스타트업)은 우수한 사업 아이템을 발굴하고 창업에 날개를 달아주는 주요 행사로 자리매김했습니다. 지금까지 누계로 218개의 기업이 성남창업경연대회에 참여했습니다. 이에 IT동아는 성남산업진흥원과 함께 올해 성남창업경연대회 최종 평가에서 우수팀으로 선정된 6개 기업을 소개하고, 그들이 고민을 해결해가는 과정을 담는 기획을 준비했습니다.

자동화된 제조 현장에서 발견한 모순에 주목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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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라잎 정태영 대표 (출처=IT동아)

자동화된 제조 현장의 모습을 담은 영상은 종종 ‘힐링 영상’처럼 소비되곤 한다. 그럴 만도 한 게, 오차 없이 일정하게 움직이는 기계의 모습을 보다 보면 묘한 안정감이 느껴진다. 원재료가 컨베이어 벨트를 타고 이동하며 기계를 하나하나 거칠 때마다 점점 제품의 형태를 갖춘다. 원래라면 사람이 해야 할 단순 반복 작업도 사람 팔처럼 여러 관절을 지닌 산업용 로봇들이 절제된 움직임으로 척척 해낸다. 보고 있으면 사람의 손이 필요 없는 완전 무인화 시대가 멀지 않은 듯한 기분도 든다.

그러나 질서정연하게 자동화된 제조 현장을 유지하는 데에는 ‘힐링’이란 말과는 거리가 먼 지난한 노력이 필요하다. 물론 사람의 손길도 여전히 필요하다. 전통적 산업용 로봇은 스스로 판단해서 움직이는 게 아니라 사전에 프로그래밍 된 대로 작업을 반복할 뿐이다. 이때 로봇을 프로그래밍하는 과정을 교시(Teaching, 티칭)라고 한다. 사람은 직관적으로 할 수 있는 행동도 로봇에게는 하나부터 열까지 가르쳐 줘야 한다. 예를 들어 바로 앞 책상에 놓인 스마트폰을 손으로 집어 들 때, 인간은 직관적으로 어떻게 팔을 뻗는 게 가장 빠르고 효율적인지 알 수 있다. 하지만 로봇에게는 팔을 뻗을 경로를 일일이 알려줘야 한다.

제조 현장에서 시간은 곧 돈이기에 0.1초라도 더 빠른 최적의 경로를 설정하는 게 관건이다. 그래서 교시에는 엔지니어의 노력과 시간이 결코 적지 않게 든다. 한 번으로 끝나는 것도 아니다. 시간이 흐르며 자연스레 로봇의 유격이 발생하거나, 생산 제품이나 환경이 바뀔 때, 혹은 예기치 못한 문제가 발생했을 때 이를 조정하는 작업을 반복해야 한다. 노동의 형태만 달라졌을 뿐, 여전히 단순 반복 작업은 사라지지 않았다. 그렇다면 이걸 진정한 의미에서 자동화라고 할 수 있을까?

케바 재직 시절 정태영 대표(오른쪽 가운데) (제공=플라잎)

플라잎(PLAIF)의 정태영 대표가 의문을 품은 것도 이 지점이다. 정태영 대표는 오스트리아 산업 자동화 솔루션 업체인 케바(KEBA) 한국 지사 창립 멤버로 산업용 로봇 분야에 처음 발을 들였다. 적은 인원 탓에 기술 연구부터 프로덕트 매니저, 엔지니어까지 여러 역할을 도맡았다. 그렇게 8년 동안 일을 하다가 문뜩 제조 현장에서의 ‘자동화’라는 말에서 모순을 느꼈다.

자동화를 위해 로봇을 사용하는데, 그 자동화를 구현하기 위해서 알게 모르게 엔지니어 인력이 갈려 나가고 있었다. 그뿐만 아니다. 간단한 변경 작업이나 문제 해결이라도 하려면 생산 라인을 멈춰야 하는데, 그만큼 생산량이 줄면서 비용 손실로 이어진다. 효율성과 편리함을 위한 자동화지만, 그 안에는 여전히 여러 비효율과 불편함이 남아있었다.

이러한 비효율 문제의 해결법을 고민하던 때, 정 대표는 마침 서울과학기술대학교 재학 시절부터 알고 지내던 동료들을 통해서 인공지능(Artificial intelligence, 이하 AI)을 접하게 됐다. 메커트로닉스(Mechatronics) 전공자로서 로봇에 정통한 정 대표에게도 AI는 미지의 영역에 가까웠다. 흥미를 느낀 정 대표는 동료들이 진행하던 스터디 그룹에 참여하며 AI를 공부하게 됐다. 그러면서 AI가 산업용 로봇의 문제를 해결할 실마리라고 직감하게 된다. 이를 계기로 스터디 그룹 구성원들과 함께 산업용 로봇에 AI를 적용하는 걸 목표로 플라잎을 창업했다.

정태영 대표와 AI 스터디 동료들 (제공=플라잎)

플라잎은 기존 산업용 로봇에 인간의 신경망을 모사하는 딥 러닝(인공신경망)과 시행착오를 반복하며 최적의 방법을 학습하는 강화 학습을 적용한 AI 소프트웨어를 탑재함으로써 이 문제를 풀고자 했다. 물체 인식 AI 즉, 로봇의 눈뿐만 아니라 행동에도 AI를 적용한 게 가장 큰 특징이다. 로봇의 눈에 적용된 AI도 기존 제조 현장에서 흔히 쓰이는 이미지 프로세싱(영상 처리)과는 다르다. 이미지 프로세싱은 엔지니어가 각 상황에 맞게 프로그래밍한 대로 제품을 구별하고 인식하는 기술이다. 예를 들어 미세한 균열(Crack)을 인식해 불량품을 선별해내는 식으로 활용될 수 있다. 플라잎은 이러한 프로그램 방식이 아닌 AI 학습 방법을 적용해 물체의 2D를 넘어선 3D까지 인식함으로써 물체의 자세를 추정(6D Pose Estimation)할 수 있다.

비슷한 기술이 존재하긴 하지만 정 대표는 플라잎 기술이 기존 기술보다 앞선다고 자신한다. 플라잎만의 딥 러닝(인공신경망)을 적용해 인식 속도가 0.3초에 불과해 작업 시간을 줄여준다. 고가 카메라가 아닌 저가 카메라로도 구현할 수 있다는 점도 장점이다. 이러한 물체 인식 AI에 시행착오를 거치며 스스로 최적의 경로를 찾는 강화 학습 방식의 로봇 행동 AI가 더해지면 교시 없이도 로봇이 기존 기술로는 쉽게 구현하기 힘든 복잡한 동작을 쉽게 해낼 수 있다. 그 덕분에 기존 프로그램 방식으로는 로봇이 물체를 집을 수 없는 경우도 쉽게 집을 수 있는 상태로 만들 수 있다. 예를 들어 제품이 상자 벽면에 선 채로 붙어있는 상태라면 로봇은 해당 물체를 집어내지 못 한다. 이럴 때 기존 로봇이 추가적인 장치를 쓰거나 상자 자체를 흔들어 물체를 쓰러뜨리는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했다면, 플라잎의 AI를 적용한 로봇은 벽에 붙은 물체를 밀어 넘어뜨리면 쉽게 집을 수 있는 상태로 만들 수 있다는 사실을 스스로 터득한다.

스스로 최적의 경로를 찾는 플라잎의 '로봇 행동 AI' (출처=플라잎)

정 대표는 플라잎이 추구하는 목표가 “단순 반복 작업은 플라잎의 AI 로봇이 하고, 사람은 더 가치 있는 일을 하게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로봇에 AI를 적용하는 것만으로 단순 반복 작업이 당장 모두 사라지는 건 아니다. 로봇에 AI를 적용하면 반복적인 교시 작업으로부터 엔지니어를 해방할 수 있지만, 풍선 효과처럼 또 다른 과정에서 반복 작업을 발생시킨다. 바로 AI 학습을 위한 반복 작업이다. AI를 학습시키기 위해선 방대한 데이터를 마련하고, AI가 데이터를 이해할 수 있도록 이름을 붙이는 작업이 필요하다. 비숙련 단순 노동이라는 점에서 ‘인형 눈알 붙이기’에 흔히 비유되기도 한다. 결국 단순히 AI를 도입하는 것만으로는 근본적인 문제는 그대로 남는다.

이 문제를 해결하는 기술도 플라잎의 차별점 중 하나다. 플라잎은 지도 학습(Supervised Learning)이 아닌 비지도 학습(Unsupervised Learning)을 통해 로봇을 학습시킬 때 발생하는 반복 작업도 대체하고자 한다. 예를 들어, AI에게 사물 하나를 학습시키기 위해선 수백 장의 이미지가 필요하다. 이러한 이미지를 마련하는 데에도 많은 시간과 비용이 든다. 하지만 플라잎은 합성 데이터 생성 네트워크(Synthetic data generation Network)라는 걸 활용해서 이미지 한 장만으로 수백 만장의 학습 데이터를 만들 수 있게 했다. 학습 데이터에 이름을 붙여주는 작업도 AI가 스스로 군집화(Clustering)하는 방식으로 해결한다. 또한 사람이 로봇에게 행동을 시연하면 로봇이 이를 모방하는 ‘모방 학습’ 또한 개발 중이다. 이러한 기술을 적용하면 AI 학습에 드는 인력, 시간, 비용까지 모두 아낄 수 있다.

AI가 적용되지 않은 산업용 로봇은 티치 펜던트(Teach Pendant)라는 조작기를 활용해 엔지니어가 직접 프로그래밍을 해야하는 어려움이 있다(출처=셔터스톡)

미국의 벤처 투자 회사인 루프 벤처스에 따르면 일반적인 산업용 로봇 한 대를 기존 방식대로 자동화한다고 가정했을 때 설정과 유지보수에 드는 비용은 최대 약 10만 달러(약 1억 2천만 원)다. 정 대표는 플라잎의 AI 소프트웨어로 그 비용을 10분의 1 이하로 줄일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궁극적으로는 그 비용을 0으로 만드는 게 저희 목표”라고 덧붙였다.

시장조사기관 마켓앤마켓은 전 세계 산업용 로봇 시장은 지난 2018년 약 18조 7천억 원 규모에서 2024년에는 약 35조 400억 원 규모로 성장할 것으로 전망했다. 국내 시장도 2018년 약 2조 8천억 원에서 2024년까지 약 5조 4천억원으로 성장할 전망이다. 연 10%가 넘는 성장이다. 이처럼 시장 규모가 커질수록 산업용 로봇을 위한 AI 솔루션 수요도 커질 수밖에 없다. 플라잎은 이에 맞춰 AI 소프트웨어를 플러그인 방식으로 제공할 계획이다. 기존 산업용 로봇에 랜 케이블만 꽂으면 제조사와 기종과 무관하게 AI 로봇으로 사용할 수 있는 방식이다. 많은 산업용 로봇에 적용된 운영체제인 ROS(Robot Operating System)를 활용했기 때문이다. ROS가 탑재되지 않은 제조사의 로봇이라도 간단한 소프트웨어 업데이트만으로 호환성을 확보하는 게 가능하다. AI 도입이 필요한 공장주라면 누구나 플라잎의 소프트웨어를 구매해 기존 설비에 그대로 적용할 수 있다.

플라잎 사무실에 있는 '유니버설 로봇' 사의 협동로봇 팔. 플라잎의 AI 소프트웨어는 로봇 제조사, 기종에 무관하게 랜 케이블만 연결하면 적용할 수 있다 (출처=IT동아)

미래를 준비하는 기술

“단순 반복 작업은 로봇이 하고, 사람은 더 가치 있는 일을 하게 하자”는 플라잎의 목표를 듣고 한 가지 생각난 게 있었다. 바로 테슬라 창업자 일론 머스크다. 일론 머스크도 지난 8월 테슬라 ‘AI 데이’ 행사에서 인간형 로봇 ‘테슬라 봇’ 개발 계획을 공개하면서 비슷한 얘기를 했다. 아니나 다를까 정 대표도 궁극적으로는 산업 현장뿐만 아니라 일상에서 활약하는 서비스 로봇 분야까지 진출하는 미래를 이미 그리고 있었다.

그는 “미래에 1가족 1로봇 시대는 분명 옵니다. 5년 후가 될지, 10년 후가 될지, 100년 후가 될지는 모르겠지만요. 하지만 그런 시대가 온다는 건 기정사실이죠. 그 시대가 오고 나서 준비를 하는 게 아니라, 미리 준비해야죠. 저희 기술들도 사실은 서비스 로봇을 위한 준비라고 할 수 있습니다. 기술 하나하나를 조합하면 결국 서비스 로봇을 위한 기술이거든요. 하지만 지금 당장 서비스 로봇의 시대가 아니기 때문에 이 기술들을 먼저 산업용 로봇에 적용해서 제조 현장의 불편함을 해결하려는 겁니다”라고 말했다.

지난해 5월 퓨처플레이로부터 초기 투자를 받으며 출발한 플라잎은 창업 3개월 만에 민간 주도형 기술창업 투자 프로그램인 팁스(TIPS)에 선정되는가 하면, 지난해 10월에는 '만도'로부터 투자를 유치했다. 올해는 성남창업경연대회(도전! S-스타트업)에서 대상을 받으며 그 가치와 가능성을 인정받았다. 현재도 수많은 곳에서 투자 문의를 받고 있지만 당장은 고사하고 있다. 매출이라는 눈에 보이는 성과가 나오는 내년 이후 투자를 받는 게 기업 가치를 높이는 데 도움이 될 것이란 판단 때문이다. 정 대표는 구체적으로 밝힐 수는 없지만 단순 개념 증명(POC)이 아닌 매출이 발생하는 계약이 여러 건 잡혀있다고 귀띔했다.

플라잎 사무실 모습 (출처=IT동아)

플라잎의 남은 과제, 인재 영입

지금 플라잎의 가장 큰 고민은 뭘까. 정 대표는 인재 영입을 꼽았다. 당장 플라잎에 필요한 건 산업용 로봇에 대한 이해와 AI에 대한 전문성을 모두 갖춘 인재다. 하지만 단순히 AI 개발자만 해도 인력난이 심각한 상황이라 두 분야의 교집합에 있는 인재를 구하는 건 모래사장에서 바늘 찾기 수준이다. 설령 그런 인재를 찾더라도 내로라하는 대기업이 아닌 스타트업으로 끌어들이는 건 쉽지 않다. 스타트업은 현재가 아닌 미래를 바라보고 달리는 곳이기 때문이다.

정 대표는 지금 플라잎에 있는 직원들도 마음만 먹으면 어느 대기업이든 들어갈 수 있을 정도의 인재라고 말했다. 그런 이들이 플라잎에 남아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정 대표는 거창한 비전을 강요하는 대신 가장 원초적이면서 현실적인 약속을 했다. 바로 “날 믿고 따라오면 부자로 만들어 주겠다”는 약속이다.

※이번 기사에 이어 플라잎이 산학협력을 통해 인재 영입을 모색하는 얘기를 다루는 2부가 게재될 예정입니다.

동아닷컴 IT전문 권택경 기자 (tikitak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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