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첫 부정맥 여성전문의… 환자와 적극 소통 정확한 진단

김상훈 기자 입력 2020-09-19 03:00수정 2020-09-19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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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오르는 베스트 닥터]<13> 진은선 강동경희대병원 심장혈관내과 교수
레지던트때 심장환자 소생에 감명… 남성영역 ‘부정맥’ 분야 뛰어들어
“환자가 병 제대로 알아야 치료효과”
증세 경청한 뒤 충분한 정보제공
진은선 강동경희대병원 심장혈관내과 교수는 부정맥 분야 국내 1호 여성 전문의다. 진 교수는 정확한 진단을 위해 진료실에서 오래 소통하는 의사로 널리 알려져 있다. 강동경희대병원 제공
20여 년 전, 레지던트 1년 차 여의사가 당직을 서고 있었다. 급성심근경색증 환자가 쇼크 상태로 실려 왔다. 관상동맥(심장동맥)이 완전히 막혀 있었다. 레지던트는 서둘러 교수를 ‘콜’했다. 교수는 능숙하게 스텐트 시술로 막힌 혈관을 뚫었다. 죽음 문턱에 갔던 환자가 되살아났다.

의학 드라마의 한 장면을 연상케 하는 현장. 그 레지던트는 경이로움을 느꼈다. 심장 분야가 자신이 가야 할 길이라고 직감했고, 스스로의 표현대로 ‘심장과의 사랑’에 빠졌다.

레지던트 과정을 마친 후 전임의 과정에 들어갔다. 심장학 2년을 끝낸 후 추가로 부정맥학 2년을 더 공부했다. 그 레지던트는 부정맥 분야에서 국내 최초의 여성 심장 전문의가 됐다. 바로 진은선 강동경희대병원 심장혈관내과 교수(46)다.

지금은 이 분야에도 여의사가 적지 않지만 과거에는 남자 의사들만의 영역이었다. 전임의 면접 때였다. 면접관이 체력 소모가 크니 힘들지 않겠느냐고 물었다. 진 교수는 “쌀가마니를 지라고만 하지 않는다면 뭐든지 거뜬하다”고 답했다. 게다가 질병의 난도까지 높아 여의사들의 지원이 적었던 거라고 진 교수는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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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술 없이 약물치료로 충분할 때도 많아”


진 교수는 “심장은 아름다우면서도 치명적인 기관”이라고 했다. 근육과 혈관, 전기 시스템이 완벽한 균형 상태에서 작동한다. 단 몇 분만 박동을 멈춰도 인간은 쓰러진다. 급사할 수도 있다. 심장을 구성하는 요소들 사이의 균형이 깨지면 맥박이 비정상적으로 뛴다. 너무 느리게 뛰는 서맥, 너무 빠르게 뛰는 빈맥이 발생한다. 때로는 서맥과 빈맥이 뒤섞여 나타난다. 이게 부정맥이다.

증세에 따라 약물 치료 혹은 다양한 시술을 한다. 진 교수는 “시술이 무조건 좋은 건 아니다. 약물 치료가 충분할 때도 많다. 오히려 시술할 경우 재발 확률이 높을 수 있다”고 말했다. 요컨대 가장 적절하고 정확하며 신속한 처치가 더 중요하다는 얘기다.

50대 중반의 중년 여성 A 씨가 대표적 사례다. A 씨는 가슴이 두근거리고, 저 안쪽에서 무언가 치밀어 오르면서, 불안한 느낌까지 들어 상당히 괴로웠다. 동네 내과에서 심전도 검사를 받았지만 별문제는 발견되지 않았다.

심리적 문제인가 싶어 정신건강의학과에 갔더니 불안장애와 우울증 진단을 받았다. 3년 가까이 약을 먹었지만 증세는 좀처럼 나아지지 않았다. 마음을 편히 먹으라는, 뻔한 이야기만 들었다. 마침내 A 씨는 지인의 추천으로 진 교수를 찾았다. 진 교수는 심방세동 부정맥이란 진단을 내렸다. 부정맥 중에서 가장 위험한 유형이다. 심방세동 부정맥은 뇌중풍(뇌졸중) 위험을 5배, 치매 위험을 2배 높인다. 진 교수는 스텐트 시술을 시행했고, A 씨는 불안감에서 해방됐다.

○ 환자에 병명 적어줘 충분한 이해 도와


대학병원에서는 3분 진료하기 위해 30분은 기다려야 한다는 말이 있다. 항상 그렇지는 않지만 전혀 틀린 이야기도 아니다. 환자들이 너무 몰리니 의사들은 서둘러 진료를 끝내야 한다. 진 교수는 다르다. 진료 시간이 긴 편이다. 특히 초진 환자라면 10∼15분 정도가 걸린다. 진료 시간이 길어지는 까닭이 있다. 환자가 말하는 단편적 내용만으로 병을 제대로 진단하지 않기 때문이다. 특히 부정맥은 증세가 나타났다 사라지기를 반복하는 경우가 많아 환자가 병을 눈치 채지 못할 때가 많다.

진 교수는 이야기를 충분히 듣고 나서 질문을 던진다. 답변을 듣고 나서 또 질문을 한다. 이 과정을 통해 의학 정보를 충분히 전달한다. 그러면 환자들이 자신의 몸 상태를 가늠할 수 있고, 숨어있는 질병도 찾아낸다. 환자 스스로 맥박을 체크할 수 있도록 진료실에서 방법을 가르쳐 주기도 한다. 진료가 끝나면 진단 병명을 메모지에 적어준다. 충분히 설명했다고는 하나 환자가 완벽하게 이해하지 못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진료실을 나서면 어려운 의학 정보를 금세 잊어버릴 수도 있다. 귀가한 후 인터넷으로 관련 정보를 더 찾아보라는 의도다. 진 교수는 “환자가 병을 제대로 이해해야만 치료 효과를 높일 수 있다”고 말했다.

○“연구도 중요하지만 환자 살리는 게 우선”

대학병원의 교수들은 연구와 진료, 두 가지를 모두 잘해야 한다. 진 교수는 지금까지 유명한 국제저널에 11편의 논문을 발표했다. 이를 통해 새로운 치료법을 제시하기도 했다. 요즘에는 새로운 약물이나 의료기기들의 안전성을 검증하는 연구 일부를 진행하고 있고, 일부는 계획 중이다.

다만 진 교수는 연구 때문에 진료가 소홀해지는 일이 없어야 한다고 했다. 만약 연구와 진료 중 한 가지에 더 몰입해야 한다면 진 교수는 “단연 환자 진료에 방점을 두겠다”고 했다. 연구는 평생 할 수 있지만 환자 진료에 덜 신경 쓰면 곧바로 생명에 큰 위협이 되기 때문이다. 진 교수는 “연구를 많이 하거나 시술을 잘하는 의사도 좋지만, 무엇보다 환자를 안전하게 치료하는 의사가 되는 것. 그게 내 철학이다”고 강조했다.

▼ 심장 박동 불규칙하고 어지럼증 느낄 땐 의심… 걱정 많은 습관 고쳐야 ▼
진 교수가 말하는 부정맥 진단과 예방

부정맥은 심전도 검사를 통해 진단한다. 하지만 10초 정도 진행되는 이 검사만으로는 제대로 잡아내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증세가 나타났다 사라지기 때문이다. 한 달에 고작 한두 번꼴로 증세가 나타나는 사람도 있다.

따라서 면밀한 관찰이 필요하다. 병원에서는 심전도 검사를 ‘업그레이드’한 진단 기기를 활용하기도 한다. 이를테면 24시간 맥박을 체크하는 기기를 착용하거나, 심장 주변 피부에 진단 기기를 이식하면 더 정확한 진단이 가능하다. 진은선 강동경희대병원 심장혈관내과 교수는 일단 자가진단을 해 볼 것을 권한다. 두근거린다거나 맥박이 빨리 뛰는 것처럼 느껴진다고 해서 모두 부정맥은 아니다. 크게 놀랐거나 화가 났을 때, 혹은 그 밖의 감정적 문제로 인해 두근거림이 느껴질 때가 있다. 이 경우 심장 박동이 빨라지기도 한다. 다만 시간이 지나면 곧 정상 맥박으로 돌아온다. 손목 부위에 손을 대고 1분당 심박수를 재 보자. 규칙적으로 뛰고 1분에 60∼100회라면 크게 걱정할 필요가 없다. 다만 아무 이유 없이 박동이 빨라졌거나, 심장이 불규칙하게 뛰거나, 빠르기와 느리기를 반복하거나, 어지러움 증세가 나타난다면 부정맥을 의심해야 한다. 당장 병원에 가는 게 현명하다.

술은 부정맥을 악화시키는 음식이다. 카페인이 든 커피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다. 진 교수는 “과학적으로는 카페인과 부정맥의 상관관계가 명확하게 입증되지 않았다. 하지만 임상적 경험에 따르면 사람에 따라 커피가 부정맥을 악화시킬 우려는 충분히 있다”고 말했다. 커피를 마신 후 두근거림 증세가 나타나는 사람이라면 안 마시거나 줄이는 게 낫다.

진 교수는 평소 걱정하거나 불안해하는 습관도 고칠 것을 권했다. 진 교수는 “부정맥은 유전, 혹은 나이와도 크게 무관하며 누구나 걸릴 수 있는 질병”이라며 “긍정적으로 사는 것이 발병 확률을 낮추는 방법 중 하나”라고 말했다.

진 교수는 건강식품에 대해서는 ‘합리적 소비’를 권했다. 효과도 검증되지 않았고 부작용까지 생길 수 있는 건강식품을 너무 많이 먹을 경우 오히려 부정맥이 유발될 수도 있다는 것. 진 교수는 “꼭 먹고 싶다면 최소한 2, 3일의 간격을 두고 먹는 게 좋다”고 조언했다.


김상훈 기자 core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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