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치아픈 장마철 곰팡이-도로 위 안개… 벼 잎-이끼로 잡는다

습기 제거하는 자연모사 기술

특수 나노 소자로 만든 고효율 제습기의 모습(위). 물방울이 맺히면 즉시 흘러내리는 벼 잎의 돌기구조(아래)를 흉내 냈다. 물방을 제거가 빨라져 제습 효과가 뛰어나고 전기 사용량도 줄일 수 있다. 한국기계연구원·위키미디어 제공

지난해 인천 영종대교에서 발생한 106대 연쇄 추돌 사고, 천식을 포함한 알레르기 질환, 그리고 여름철 곰팡이까지.

이들의 공통점은 습기(濕氣)다. 안개가 짙게 끼면 교통사고가 발생하기 쉽고, 장마철 습도가 높으면 건강에 해롭다. 대기 중 습기는 없어서는 안 될 자연현상이지만 때로는 불청객이 되는 셈이다. 최근 과학자들은 습기를 제거하기 위해 자연으로 눈을 돌리고 있다. 척박한 자연환경에서 살아남기 위해 진화해온 동식물의 특수한 기능을 본뜬 자연모사 기술을 활용하는 것이다.

○ 벼 잎 구조 적용한 제습기 개발

장마철 적정한 습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제습기를 많이 쓴다. 일반적인 제습기의 원리는 냉매를 이용해 물기를 제거하는 것이다. 공기를 순환시키면서 차가운 냉매로 온도를 떨어뜨려 수증기를 물방울로 바꾼다. 에어컨의 원리와 동일하다. 제습 효과는 좋지만 소음이 크고 전기요금이 많이 나올 수 있다는 단점이 있다.

이와 반대로 열전식 제습기도 있다. 전기를 가해 차갑게 만든 금속판 위로 수증기가 모이게 만든다. 가격이 싸고 소음이 적지만 많은 양의 수증기를 한 번에 처리하기 어렵다.

김완두 한국기계연구원 영년직연구원은 벼 잎 구조를 빌려와 열전식 제습기의 효과를 냉매식 제습기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데 성공했다. 벼 잎에는 물방울이 맺혀 있지 않고 또르르 흘러내리는데, 이 구조를 제습기에 적용하자 맺혔던 물방울이 재빨리 제거되면서 효율이 좋아졌다.

김 연구원은 “곤충, 거미줄 등에서 습기 저감 효과가 있는 다양한 표면을 검토한 결과 벼 잎이 제습기에 가장 적합했다”며 “이 구조를 적용한 제습기의 제습 효과는 기존 제품의 2배 이상이며 에너지 효율은 70% 이상 올랐다”고 말했다. 현재 연구진은 이 기술을 적용한 시제품 개발을 마쳤으며, 웅진코웨이와 함께 상용화를 진행 중이다.

○ 도로변에 공작이끼 심어 안개 제거

안개도 ‘도로의 적’이다. 안개가 짙게 낀 날에는 가시거리가 대폭 줄어드는 만큼 안개의 농도를 떨어뜨리는 ‘안개소산장치’를 도로 주변에 설치하자는 주장이 최근 힘을 얻고 있다.

안개소산장치는 실제로 상용화돼 쓰이고 있다. 건조한 공기를 도로 방향으로 보내주거나, 안개가 물방울로 바뀌어 비로 내릴 수 있도록 응결핵(미세먼지)을 도로 쪽에 분사하기도 한다. 현재 경남 거제시 일부 도로에 설치돼 실제로 운영되고 있다.

기계연 연구진은 더욱 친환경적이면서 운영비가 들지 않는 신개념 안개소산장치를 개발하기 위해 이끼에 눈을 돌렸다. 도로변에 이끼를 적당량 심어 두면 자연적인 습기 제거 효과가 발휘된다. 이끼는 주변 수분을 끌어들여 물로 바꿔 머금고 있는 성질이 있다. 완전히 건조한 상태에서도 죽지 않고 수분만 공급되면 살 수 있는 만큼 도로 주변에 심을 경우 안개 저감 효과가 높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연구진은 톳이끼, 우산이끼 등 다양한 종류의 이끼를 이용해 실험을 진행한 결과 공작이끼가 안개 포집에는 가장 뛰어나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임현의 기계연 나노자연모사연구실장은 “외국에서는 안개를 포집하기 위해 폴리올레핀 소재로 된 특수 그물망을 설치하기도 한다”며 “공작이끼는 자기 몸무게의 830%가 넘는 수분을 흡수하는 만큼 폴리올레핀보다 제습 효과가 뛰어나다”고 말했다.

김 연구원은 “반도체 공장 등 첨단 전자기기 산업체에서는 습도 1% 때문에 제품의 불량률이 바뀌기도 하는 만큼 수분 조절 기술은 산업적으로도 가치가 크다”고 말했다.

대전=전승민 동아사이언스 기자 enhanced@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