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면역결핍 돼지’ 복제성공… 인간장기 이식해도 거부반응 없어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5월 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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韓美연구진 세계 첫 개발

건국대 연구진은 면역기능이 결핍돼 인간의 장기를 이식해도 아무런 거부반응이 발생하지 않는 ‘인간화된 돼지’를 세계 최초로 개발했다. 건국대 제공
건국대 연구진은 면역기능이 결핍돼 인간의 장기를 이식해도 아무런 거부반응이 발생하지 않는 ‘인간화된 돼지’를 세계 최초로 개발했다. 건국대 제공
인간을 이해하기 위해 동물을 실험 대상으로 삼은 연구의 역사는 오래됐다. 고대 로마의 의학자 갈레노스는 돼지, 원숭이, 염소를 해부해 심장과 뼈, 근육 등을 연구하는 데 사용했다. 인간을 대상으로 실험하기에는 위험이 따르고 윤리적인 문제도 있어 동물을 대안으로 선택한 것이다.

하지만 동물실험은 어디까지나 동물에서의 결과일 뿐 인간에게 적용하긴 어렵다는 한계가 있다. 동물은 인간과 유전자가 다르고 장기의 구조나 크기가 다르기 때문이다. 이러한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인간화된(humanized) 동물’을 개발하려는 연구가 세계적으로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최근 국내 연구진이 주도한 한미 공동 연구진은 ‘인간화된 돼지’를 세계 최초로 개발하는 데 성공했다.

○ 면역기능 없는 돼지, 최초 개발

김진회 건국대 동물생명공학과 교수팀은 미국 미주리대 마이클 로버츠, 랜들 프래더 교수팀과 공동으로 인간의 장기를 이식해도 아무런 거부반응이 발생하지 않는 ‘면역결핍 돼지’를 개발했다고 8일 밝혔다.

돼지는 사람과 식습관이 비슷하고 장기의 구조와 크기, 생리 특성도 유사해 이종간 장기이식 연구에 유망한 동물로 꼽혀 왔다. 다만 인간과 돼지의 면역 체계가 다르다는 문제가 남아 있었는데, 이번 연구는 마지막 문제도 해결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연구진은 돼지의 세포에서 병균이 침입했을 때 면역시스템을 활성화하는 유전자 RAG2를 제거하고, 핵을 없앤 돼지의 난자와 융합해 수정란을 만든 뒤 어미 돼지에 이식했다. 이 돼지가 낳은 새끼들은 면역기능이 결핍하도록 조작(형질전환)된 유전자를 그대로 지니고 있다는 점에서 ‘면역결핍 형질전환 복제돼지’라고 부른다.

새끼 돼지들은 초기 면역에 중요한 가슴샘(흉선)이 발달하지 않았고, 면역기능을 담당하는 비장의 발달도 저해돼 B세포나 T세포와 같은 면역세포가 전혀 만들어지지 않았다.

지금까지 면역결핍 생쥐가 개발된 적이 있지만 인간과는 진화적으로 거리가 멀어 활용가치가 크지 않았다. 2년 전 일본에서 면역 관련 유전자 IL2RG를 제거해 면역결핍 돼지를 개발했지만 B세포가 만들어지는 것으로 확인돼 완전한 면역 결핍에는 실패했다. 미국에서도 노스캐롤라이나대, 아이오와대 등 5개 연구팀이 경쟁적으로 면역 결핍 돼지를 만들고 있지만 번번이 돼지가 죽어 아직까지 성공하지 못했다.

○ ‘인간화된 돼지’로 임상시험 대체

면역 결핍 돼지는 인간의 질병치료 연구에 최적의 모델로 평가받고 있다. 돼지의 장기나 피를 인간의 것으로 바꾸면 인간을 대상으로 하는 실험과 비슷한 결과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연구진은 사람의 탯줄로 만든 유도만능줄기세포(iPSc)를 이 돼지에 이식한 결과 아무런 거부 반응 없이 모든 세포와 조직으로 분화할 수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인간의 어떠한 세포를 이식해도 정상적으로 자랄 수 있다는 뜻이다.

만약 이 돼지의 심장을 없애고 인간의 심장을 이식한다면 심장약 후보 물질의 효능을 확인할 수 있다. 인간을 대상으로 하는 시험 전에 실시하는 전임상시험의 정확도를 크게 높일 수 있는 셈이다.

또 인간의 암세포도 이 돼지에서 키울 수 있어 암세포가 어떻게 발달하고 전이되는지를 확인하는 데 활용할 수 있다. 인간의 조혈모세포를 이식하면 인간의 피도 만들 수 있다.

○ 경제적 가치는 수십조 원

전문가들은 면역 결핍 돼지의 경제적 가치가 막대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미국 국립보건원(NIH)은 신약 후보 물질의 전임상시험에서 생쥐 외에 원숭이처럼 큰 동물을 대상으로 한 결과를 요구하고 있는데, 돼지는 원숭이를 대체할 수 있다는 점에서 활용도가 생쥐 못지않기 때문이다. 면역 결핍 생쥐가 한 마리에 수십만 원을 호가하는 고가임을 고려하면 면역 결핍 돼지 시장은 연간 수십조 원 규모에 이를 것으로 예상된다.

김 교수는 “이번에 개발된 돼지는 암이나 후천성면역결핍증(AIDS·에이즈) 등 다양한 난치병 치료와 장기이식에 활용될 수 있다”며 “우리나라의 생명공학 기술을 세계적으로 알리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성과는 미국 국립과학원회보(PNAS) 5일자 온라인판에 실렸다.

이재웅 동아사이언스 기자 ilju2@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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