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연료 재활용 연금술 빗장 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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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2월 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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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3월 완료되는 한미 원자력협정의 개정 절차가 시작되면서 ‘파이로프로세싱’이라는 신기술이 뜨거운 감자로 떠올랐다. 새 원자력협정에 파이로프로세싱 기술을 담을지 말지가 쟁점이다. 이를 놓고 한미 간에는 미묘한 ‘과학적’ 신경전도 벌어지고 있다. 파이로프로세싱을 둘러싼 궁금증을 풀어봤다.》

처리과정서 플루토늄 나와 美선 핵무기 전용 우려
모의 연구시설 2011년 준공 목표

○ 파이로프로세싱은 왜 등장했나?

원자력발전소는 전기를 생산하기 위해 핵연료(우라늄)를 사용한다. 핵연료는 원자로에서 3년쯤 태우면 수명이 다한다. 그 뒤에는 ‘쓰레기’가 되기 때문에 버려야 한다. 이 쓰레기를 ‘사용 후 핵연료’라고 부른다. 그런데 사용 후 핵연료를 아무 데나 버릴 수 없다. 타지 않은 우라늄을 비롯해 플루토늄 넵투늄 아메리슘 퀴륨 같은 방사능 물질이 들어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지금까지 사용 후 핵연료를 버릴 쓰레기장을 마련하지 못했다. 방사능 유출을 막기 위해 원자로 내부에 물을 가득 채운 ‘수영장’을 만들고 그 안에 차곡차곡 쌓아두기만 했다. 한미 원자력협정에 따라 사용 후 핵연료에 손끝 하나 대지 않기로 약속했기 때문이다. 현재 국내에는 원전 20기가 있는데, 2009년 기준으로 사용 후 핵연료가 1만 t을 넘었다. 수영장에 쌓을 수 있는 사용 후 핵연료는 1만2561t에 불과하다. 지금 추세대로라면 2016년엔 수영장이 포화된다. 수영장을 대신할 새로운 쓰레기장을 짓거나 사용 후 핵연료의 양을 대폭 줄여야 한다. 전문가들은 파이로프로세싱으로 사용 후 핵연료의 양을 100분의 1로 줄일 수 있다고 말한다.

○ 파이로프로세싱은 어떤 기술인가?

파이로프로세싱의 핵심은 마치 종이나 캔, 유리를 재활용하듯 사용 후 핵연료를 재활용하는 것이다. 사용 후 핵연료에는 우라늄(93%)이 가장 많고 플루토늄(1.2%)을 비롯해 넵투늄 아메리슘 퀴륨(이상 0.2%) 등 30여 종의 원소가 들어 있다. 이들은 일종의 고체 상태다. 이들을 금속으로 바꾼 뒤 500도 이상의 고온에서 끈적끈적한 용융염에 넣고 전기를 흘려주면 금속이 전극에 붙어 나온다. 즉 우라늄과 플루토늄 넵투늄 아메리슘 퀴륨 등 방사능 물질을 다시 추출해 핵연료로 재활용한다는 것이 파이로프로세싱의 핵심이다. 가정에서 나온 쓰레기에서 종이 페트병 캔 등을 분리해 재활용하는 것과 비슷하다.

○ 정말 핵폭탄을 만드는 데 쓰이지 않을까?

좋은 기술인 것 같은데 미국은 왜 이 기술에 흔쾌히 동의하지 않는 걸까. 사용 후 핵연료에 들어 있는 플루토늄과 관계가 있다. 미국은 파이로프로세싱을 하는 과정에서 플루토늄을 따로 추출하지 않을까 우려하고 있다.

사용 후 핵연료에 들어 있는 우라늄(U238)은 핵분열을 하지 않아 핵무기로 바로 사용할 수 없지만 플루토늄은 가능하다. 하지만 한국원자력연구원 김호동 부장은 “열역학적으로 불가능하다”고 대답했다. 플루토늄은 사용 후 핵연료 안에서 넵투늄 아메리슘 퀴륨 등과 함께 초우라늄원소(우라늄보다 원자번호가 큰 원소)로 한데 섞여 있다. 이들은 전위차가 0.1mV(밀리볼트·1mV는 1000분의 1V) 이하로 거의 같아 파이로프로세싱 기술로는 하나씩 분리하기가 사실상 어렵다는 것이다. 김 부장은 “파이로프로세싱은 아직 개발 단계의 기술”이라면서 “세계 어디에서도 파이로프로세싱 시설을 지어 실험으로 검증한 사례가 없기 때문에 우려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은 핵연료를 사용하지 않고도 파이로프로세싱의 기술력을 검증할 수 있는 연구시설(PRIDE)을 2011년까지 지을 방침이다.

○ 사용 후 핵연료를 처리하는 다른 방법은 없나?

파이로프로세싱 대신 지하 500∼1000m 깊이에 처분장을 만들어 사용 후 핵연료를 묻을 수도 있다. 실제로 핀란드는 수도 헬싱키의 서북쪽에 있는 올킬루오토 섬에 2012년을 목표로 세계 최대 규모의 원전을 지으면서 사용 후 핵연료 처분장도 함께 건설하기로 했다. 스웨덴도 작년 6월 지하 처분장이 들어설 지역을 확정했다. 하지만 지하 처분장은 일시적인 방편일 뿐 완전한 해결책은 아니다. 지하 처분장도 언젠가는 포화되기 때문이다. 핀란드와 스웨덴의 지하 처분장은 1만 t 규모이며, 미국이 추진했던 유카 산 처분장은 6만3000t 규모다. 원자력연구원에 따르면 2100년경 우리나라가 배출할 사용 후 핵연료는 10만 t에 이른다.

늘어나는 사용 후 핵연료의 양을 줄이기 위해 재처리 기술을 사용할 수도 있다. 재처리는 사용 후 핵연료를 질산에 녹여 액체 상태로 만든 뒤 유기용매를 이용해 우라늄이나 플루토늄을 추출한다. 사용 후 핵연료를 다시 핵연료로 사용한다는 점에서는 파이로프로세싱과 같지만 재처리 과정에서는 핵폭탄의 원료가 되는 순수 플루토늄을 분리해낼 수 있다. 이 때문에 이 방법은 공식적으로는 미국 영국 프랑스 러시아 중국 일본에만 허용돼 있다.

사용 후 핵연료는 우라늄을 비롯해 플루토늄 넵투늄 아메리슘 퀴륨 등 30여 종의 원소로 구성된다. 이들 원소를 금속으로 바꾼 뒤
500도 이상 고온의 용융염에 넣고 전기를 걸어주면 금속이 녹아 전극에 붙는다. 이를 회수하면 원하는 원소를 얻을 수 있다.
우라늄이 가장 먼저 녹아 나오고, 플루토늄 등이 한데 섞인 초우라늄원소가 뒤이어 추출된다. 자료 한국원자력연구원
사용 후 핵연료는 우라늄을 비롯해 플루토늄 넵투늄 아메리슘 퀴륨 등 30여 종의 원소로 구성된다. 이들 원소를 금속으로 바꾼 뒤 500도 이상 고온의 용융염에 넣고 전기를 걸어주면 금속이 녹아 전극에 붙는다. 이를 회수하면 원하는 원소를 얻을 수 있다. 우라늄이 가장 먼저 녹아 나오고, 플루토늄 등이 한데 섞인 초우라늄원소가 뒤이어 추출된다. 자료 한국원자력연구원

이현경 동아사이언스 기자 uneasy7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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